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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탐라국화가 강요배…제주와 민중을 품되,이를 뛰어넘어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제주에서 나고 자란 화가 강요배(61)에게는 늘 두 개의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하나는 ‘탐라국 화가’, 또 하나는 ‘민중미술가’다.

제주 출신으로 서울대 미대를 나와 고교 교사를 하느라 잠시 서울생활을 했으나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22년째 제주에서 작업해온 그는 제주 풍광을 그리기 때문에 제주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작가다. 그는 또 지식인으로서, 예술가로서 ‘사회와 밀착하는 예술’을 꿈꿔왔다. 누구도 선뜻 시도하지 못했던 ‘제주 4ㆍ3민중항쟁사’를 끈질긴 투혼 끝에 50점의 연작으로 완성해냈다. 이는 한국 현대역사화의 빛나는 한 성취다. 고향 제주를 속속들이 체험하고, 제주의 결을 그리는 그가 ‘제주화가, 민중미술가’의 고정된 틀을 뛰어넘어 보다 깊은 세계로 나가려하고 있다

강요배의 새로운 면모를 만날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3월 27일부터 4월 21일까지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대표 우찬규)에서 열리는 개인전을 통해 작가는 제주와 민중을 품되, 그 모두를 뛰어넘은 세계를 드러내고 있다. 5년 만에 갖는 이번 개인전의 출품작 40여점은 보다 추상 쪽으로 다가가 변화를 읽게 해 준다. 때문에 신작들은 적잖이 신비롭고, 명상적이다.


그간 강요배는 제주의 풍경을 차분하고 상징적인 어법들로 화폭에 담아왔다. 이번에도 칼바람이 부는 백록담, 잔설이 남은 한라산, 막걸리를 마시며 쓰다듬던 늙은 호박, 바위 틈에 수줍게 핀 문주란, 노란 꽃등불을 찰지게 형상화했다.

특히 ‘파도와 총석’ ‘풍천’같은 대작에서는 완숙미가 느껴진다. 검은 돌기둥들 사이로 힘차게 솟구쳐 오르는 파도의 포말은 그 생동감이 압권이다.

색채미가 돋보이는 작품들도 눈에 띈다. 푸른 명주실처럼 넘실대는 바다를 서정적으로 그린 ‘명주바다’를 비롯해 ‘자청비’ ‘암 중 홍’ 등이 그 예다. 바닷바람을 맞아 주홍빛 꽃잎이 부드럽게 찰랑이는 칸나를 전면에 배치한 ‘해 풍 홍’은 경쾌하면서도 사랑스럽다.

이렇듯 다채롭고 풍성한 작품들 사이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작품은 회화의 본질에, 자연의 근원으로 파고든 그림들이다. ‘움부리-백록담’이 바로 그 예다. 마치 겸재가 그러했듯 높은 부감의 시선으로 산의 형상을 그리고, 그 형상 위에 흰 바람결이 활개치도록 한 그림에선 신령한 바람소리가 들릴 듯하다. 형(形)과 상(象) 위의 활개치는 바람결은 제주의 신화와 온전히 합일을 이룬 강요배가 추는 신명난 붓춤이다. 움부리 깊숙한 구멍에서 움움 움트는 바람은 제주의 온갖 생명을 일깨우는 소리다.


제주시 인근 한림읍 귀덕리에 살며 작업하는 강요배는 “제주는 한반도에서도 가장 변방이죠. 하지만 저는 제주를 ‘우주의 배꼽’으로 생각해요. 환갑이 넘으니 유난히 고향을 더 타는 것 같아요”라고 했다. 강요배는 아름다운 제주의 변화무쌍한 자연, 곧 청풍월해를 화폭에 불러들여 제주의 신화·전설·역사와 버무려낸다.

그림들은 비록 풍경화이지만 수천수만 탐라 사람들의 삶과 궤적이 녹아들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자연에 인간의 숨결과 혼을 불어넣으며 제주만의 결을 오롯이 드러낸다는 점에 강요배 회화의 남다른 맛이 있다.

작가는 “제주 북쪽 먼바다로부터 하늬바람이 불어오면 바다가 일렁이죠. 맵찬 칼바람에 살점을 깎인 팽나무가 검은 가지로 당당히 버티는 모습이며, 돌팍에 얽히고설킨 덩굴, 돌담 밑의 수선, 청보리 싹 등에서 느껴지는 다양한 풍광은 그야말로 황홀하죠”라고 했다. 이어 “요즘에는 대상의 형상을 조금씩 지우고 있어요. 그래야 거대한 파도와 출렁이는 물빛이 살아나더군요. 제 그림의 핵심을 이제 ‘없다’에 두려고요. 구구이 설명하는 그림은 재미 없잖아요”라고 밝혔다.

미술평론가 김종길 씨는 “강요배의 작품은 문득문득 선의 화두를 보여준다. 눈 앞에 보이는 풍경(前景)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않는 풍경(後景)에 집중한 그림”이라고 평했다. 1990년대부터 제작한 드로잉 10여점도 함께 선보인다. (02)720-1524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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