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남동의 삼성미술관 Leeum(관장 홍라희)은 올해 첫 전시로 고미술과 현대미술을 함께 볼 수 있는 두개의 기획전 ‘금은보화(金銀寶貨):한국 전통공예의 미’와 ‘미장센-연출된 장면들’을 3월 28일부터 6월 2일까지 동시 개최한다. 리움은 서화 도자기 금속공예 목기 등 전통미술 전(全) 장르에 걸쳐 명품급 수작들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국내외 근현대미술 또한 폭넓게 보유한 흔치않은 미술관으로, 이번에 과거와 현재, 미래 미술을 아우르는 특별전을 나란히 선보인다.
▶화려함의 극치 보여주는 금은보화전, 디테일이 살아있네=우리 선조들이 남긴 고미술은 그간 소박, 여백 등으로 대별돼 왔다. 그러나 리움이 이번에 야심차게 준비한 ‘금은보화’전의 출품작들을 보면 비록 중국 등에 비해 한국 고미술이 비록 스케일은 작아도 화려함과 정교함에 있어선 충분히 정점에 도달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섬세한 디테일을 살린 한국 고미술 명품들을 찬찬히 살피다 보면 그 우아한 예술성에 탄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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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은보화’전에 출품된 신라 5세기 ‘서봉총 금관’(보물 339호,국립경주박물관 소장). 높이 30.7㎝. 땅과 하늘을 잇는 신령한 존재인 나뭇가지와 사슴뿔을 장식하고, 최상급 곡옥을 달았다. 여성 왕족의 것으로 추정된다. |
전시는 고대에서부터 대한제국기까지 금, 은, 옥, 수정, 호박 등 값비싼 재료로 제작한 다양한 공예품을 통해 한국미술의 화려한 면모를 살펴보는 자리다. 리움이 소장 중인 명품을 필두로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경주박물관, 미국 보스턴미술관 등 국내외 주요 박물관에서 대여한 국보 9점과 보물 14점을 비롯해 모두 65점의 한국 전통공예품이 전시됐다. 출품작들은 격조 높은 미감과 장인의 섬세한 솜씨에 있어 우리 명품이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않음을 보여준다.
이번 기획전은 ‘금은보화: 권위와 화려함을 새기다’ ‘불법의 빛,장엄의 미’ ‘금은보화: 가장 귀한 재료’ ‘금은보화: 빛으로 그리다’ 등 4개의 소주제로 짜여졌다. 재질의 특징, 재료를 세공한 장인들의 앞선 기술, 유물에 나타나는 화려한 장식과 기법 등 다양한 관점에서 우리 전통공예의 우수성을 조망하기 위한 구성이다.
신라와 가야의 대형 고분에서 출토된 금관은 왕족의 권위를 상징하듯 그 화려함과 장식미가 압도적이다.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 상류층들은 금과 은, 보석류로 화려한 금속공예품을 만들고, 무기와 마구를 장식해 신분과 계급을 과시했다.
멀리 미국 보스톤미술관에서 대여해온 고려시대 ‘은제도금 주자와 승반’도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에 해당된다. 화려한 연꽃 무늬와 봉황 장식으로 뚜껑을 장식한 이 주전자는 고려 금속공예의 정수를 보여주는 명품이다. 주자와 짝을 이룬 승반에선 현대적 세련미가 느껴진다.
평양 대동강면 석암리 9호분에서 출토된 낙랑 1세기 ‘금제 교구’(국보 89호)도 눈길을 끄는 작품이다. 처음엔 중국의 영향을 받았으나 이후 우리 장인들은 금을 좁쌀처럼 작은 알(球)로 만들어 장식품에 촘촘히 이어붙이는 누금기법에 있어서 뛰어난 역량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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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14세기 ‘금동 대세지보살 좌상’(보물 1047호,호림박물관 소장). 아미타불의 오른쪽에 위치하는 대세지보살은 지혜문을 상징한다. |
불교를 숭상하고 귀족가문을 중심으로 고상하고 기품있는 문화를 형성했던 고려시대 공예품은 화려하면서도 일상에서 즐겨 사용할 수 있도록 실용성도 갖췄다. 불보살상을 조망하는 특별 전시공간은 마치 경주의 석굴암처럼 장엄하게 꾸며졌다. 통일신라시대 금동여래입상과 좌우측에 협시 보살상을 비치한 전시실은 차분한 가운데 경배를 하며, 작품을 음미할 수 있도록 했다.
또 통일신라시대 ‘금동 사리외함’(보물 1359호)은 현존하는 사리기함 중 가장 연대가 앞선 것으로, 사방에 서로 다른 형상의 사천왕상을 생생하게 조각해 넣은 명품이다.
오색의 빛나는 주옥으로 만든 ‘유리 주옥’(보물 570호)과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나전칠기인 통일신라시대 ‘나전 단화금 수문거울’(국보 140호) 등은 여성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공예품이다. 이 밖에 피카소의 작품을 연상케하는 가야시대 은제 조익형 관식(머리장식), 정교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고려시대 ‘감지금은니 대방광불화엄경’(국보 215호) 등도 만날 수 있다.
리움 측은 맨눈으로 잘 보기 어려운 세밀한 장식기법과 문양을 상세히 감상할 수 있도록 전시장 곳곳에 갤럭시 노트2와 DID 고해상도 모니터를 비치했다. 특히 이번에는 영상이 360도 회전하는 디지털 신기술이 새로 개발돼 감상의 묘미를 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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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려한 연꽃 무늬와 봉황장식이 고려 금속공예의 정수를 보여주는 ‘은제도금 주자와 승반’(보스톤미술관 소장). |
▶영화와 미술의 영향관계 조명한 ‘미장센’전=2000년대 현대미술품 중 영화적 장면 연출 기법을 활용한 작품을 모은 ‘미장센-연출된 장면들’에는 국내외 작가들의 영상, 영상설치, 사진 등 15점이 전시됐다. 영화및 연극에서 ‘화면에 보이는 시각적 구성요소’를 가리키는 단어인 ‘미장센’은 현대미술에서는 일상과 무의식을 탐구하거나, 미술과 영화의 함수관계를 재해석하는데 널리 차용되고 있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양푸동, 진기종, AES+F, 정연두, 아나드 하나, 그레고리 크루드슨, 토마스 데만트 등 8명의 작가도 이를 색다르게 활용해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펼쳐 보인다.
이브 수스만/루퍼스 코퍼레이션은 스페인 17세기 바로크미술을 대표하는 벨라스케스의 명화 ‘시녀들’을 영상으로 알쏭달쏭하게 재해석해 흥미를 준다. 바로크 시대 궁정을 배경으로 한 무대극처럼 표현된 모호한 영상은 그 결말이 궁금해진다.
정연두는 이번 전시를 위해 ‘태극기 휘날리며’ ‘도쿄스토리’ ‘새’ 등 국내외 유명 영화의 장면을 재구성한 독특한 이면화 작품을 제작했다. 또 캐나다 작가 아다드 하나는 김기영 감독의 영화 ‘하녀’(1960)에 등장하는 피아노방 장면을 12개의 모니터 영상으로 재현해 눈길을 모은다. (02)2014-6900
[사진제공=리움］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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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장센’전 중 캐나다 작가 아다드 하나의 영상설치. 김기영감독의 영화 ‘하녀’(1960) 속 피아노방 장면을 12개의 모니터로 재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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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작가그룹 ‘AES+F’의 사진 ‘트리말키오의 연회’. 로마의 환락적인 연회에, 현대의 고급리조트를 교차시킨 작품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