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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있는 명소] 구례 산수유마을①--“산수유 먹으면 지리산 처녀와 입맞춤 한 것”
[헤럴드경제=구례]“지리산 산수유 입에 넣으면 지리산 처녀의 행기(향기)가 나네.

지리산 산수유 입에 넣으면 지리산 처녀와 입맞춘다네.

지리산 산수유 입에 넣으면 입맛이 시큼 춤(침)이 흐른다”

구례 산수유마을인 산동에 전해내려오는 산수유 노랫말이다. 산수유를 입에 넣으면 지리산 처녀 향기가 나고 또한 입맞춤을 한 것이라고 노래하고 있다. 산수유에 무슨 사연이 있길래…

지리산 자락에 봄소식을 알리며 온 마을을 노랗게 물들이는 구례 산동으로 향했다. 대한민국 대표 산수유마을이다. 전국 생산량의 70%를 차지한다. 전남 구례읍과 전북 남원시의 딱 중간 지역이자 지리산 노고단과 성삼재의 서쪽 산아랫 동네다.

산수유마을의 봄경치. 산수유 꽃말인 ‘불변의 사랑’을 대변하듯 나뭇가지도 하트모양을 하고 있다.

지리산 성삼재 고갯마루의 맑은 물방울들이 모여 이 산수유마을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며 서시천 개울을 이룬 뒤 구례읍으로 달려 섬진강 품에 안긴다. 겨우내 얼었던 개울도 녹아 세찬 물결로 내달렸고 주변엔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 노란 꽃들과 예쁘게 조화를 이뤘다.

3월 주말에 찾은 산수유마을은 지리산 줄기에 빙 둘러 겹겹이 에워싸인 채 그 안에 살포시 들어앉아 노란 물결을 발하니 더욱 더 아늑하게 느껴졌다. 온 마을을 뒤덮은 산수유 경치를 바라보니 저절로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이 경치 하나로도 충분히 힐링이 됐다. 전국민의 사랑받는 명소인 이유가 있었다.

산수유 꽃길 따라 데이트를 즐기는 남녀.

산동. 왠지 귀에 익은 지명이었다. 선뜻 중국 산동성이 떠올랐다. 설마 했는데 중국 산동성과 관련이 있었다. 약 1000년 전 중국 산동성의 한 처녀가 이 마을로 시집오면서 산수유나무 한 그루를 갖고와 지금의 산수유마을이 됐다고 한다. 그 때 갖고 왔다는 산수유 시목(始木)도 산동면 계척마을에 고목으로 자라고 있다. 공원으로 조성해 관리하고 있다. 이미 1000살이나 됐을 만큼 나무는 늙어있었고 지지대 부축을 받으며 힘겹게 가지를 가누고 있었다.

구례군 산동(山洞)면은 ‘지리산 골짜기 동네(산동네)’라는 의미지만 어찌됐건 중국의 산동(山東)성과 관련은 있었다.

구례~남원간 19번 국도 상에서 지리산온천 방면으로 진입하니 대단위 온천단지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뛰엄뛰엄 산수유꽃도 봄바람에 손짓하는 양 흔들흔들 거렸다. 지리산온천관광호텔과 지리산가족호텔 등 온천지대를 지나자 본격 산수유마을이다.

오른편 야트막한 동산에 노란 산수유꽃 대형 조형물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영원불멸의 사랑’ 산수유 꽃말을 상징하는 이 꽃과 하트모형들이 설치된 산수유 사랑공원이었다. 옆에 산수유문화관도 막 지어져 막바지 단장을 하고 있었다. 이번 산수유축제에 맞춰 처음 개장하게 되는데 가족, 연인, 친구들이 느긋하게 즐길 수 있는 새로운 명소로 떠오를 것 같다. 주변엔 대형 주차장과 행사를 위한 무대가 마련되고 있었다. 올해 산수유축제는 이달 29~31일에 열린다.

산수유마을의 여러 모습. 벌도 이 때를 놓치지 않았다. 산수유 숲에 파묻힌 사람들, 노란 산수유꽃 조형물과 산수유 문화관, 산수유 열매 조형물(사진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

이곳부터 저 산비탈마을까지는 산수유숲을 따라 긴 타원형으로 일방통행하게 돼 있다. 아예 주차하고 걸어서 돌아봐도 좋지만 좀 멀다. 하루종일 머물게 아니라면 차를 이용해 중간중간 세워서 즐기는 것도 좋다. 필자는 다시 차를 몰고 하위마을을 거쳐 맨 위 상위마을로 갔다. 다행히 일찍 갔기에 좁은 골목에 있는 몇 대의 차들 사이에 함께 몸을 비집고 세웠다. 산동면 위안리 상위마을이다.

과연 명소는 명소인가보다. 먼저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많은 사진작가들이 삼각대를 세워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고 있었다. 하긴 1년에 딱 한번 기회이니 꼭두새벽부터 찾을 만 했다. 더군다나 이곳은 작은 계곡물 사이로 노랗게 핀 산수유 경치가 일품이니 탐이 나지않을 수 없겠다. 필자는 아직 전문가가 아니어서 삼각대 없이 찍고 산책을 더 즐겼다. 오전부터 관광객들이 많이 몰렸다.

계곡물 따라 조금 오르니 까서 말린 산수유와 각종 산나물, 고로쇠물을 판매하는 주민이 있었다. 산수유와 관련된 궁금한 질문들을 쏟아냈다. 강순금(64) 여사는 친절하게 이야기를 해주셨다. 남원에서 이곳으로 시집 오셨다. 필자는 우선 ‘산수유 처녀’ 얘기가 궁금했다. 강 여사님은 예전의 산수유 까던 얘기를 꺼내면서 몹시 지긋지긋해 했다.

산수유는 수확 후 건조시키면서 속의 씨를 발라내야 하는데 주로 여자들이 이빨로 깨물어서 깠다고 했다.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인데 턱 아래 그릇을 받치고 산수유 한 알 한 알 입에 물고 앞니로 까서 그릇에 뱉는 작업이다. 그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만 했다. 산더미 처럼 쌓인 산수유를 어떻게 다 그렇게? 그래서 이 산동마을 처녀들은 일생을 산수유 까느라 앞니가 다 닳아 보기 흉한 모습이 됐다고 한다. 

산수유에 대해 재밌는 이야기를 해주신 강순금 여사님(왼쪽). 산수유를 즐기는 사람들.

이로 인해 옛날부터 산동아가씨는 전국 어디를 가도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고 한다. 앞니가 망가진 치아만 보면 산동아가씨라는 것. 그러다 보니 남 앞에서 제대로 웃을 수도 없었다고 한다. 강 여사님은 당시 일이 연상되자 몸서리 치듯 얼굴을 찡긋거렸다. 그래도 금방 웃으시면서 “산동아가씨는 치아만 가리면 제일 예쁘다”고 했다. 왜냐고 하니 “산수유를 먹어 예쁘지”라고 했다.

필자는 강 여사님께 “그럼 예전에는 우리가 이곳 아가씨 입에서 나온 걸 먹은 셈이네요” 했더니 “그러지(그렇지)” 라고 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산수유를 먹으면 지리산 처녀의 향기가 나고 입맞춤을 한 것이라는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강 여사님은 한마디 더 했다. “옛날에 인물로 보면 산동아가씨 보다 더 예쁜 아가씨는 없었어”라고. 또 몸에 좋은 산수유를 평생 입으로 까온 산동처녀와 입맞춤하는 것은 보약을 먹는 것보다 좋다고 소문이 나 이웃인 남원과 순천 등지에서 며느리 삼으려 경쟁이 치열했다고도 한다.

깨물어 까다보니 산동아가씨들은 나이가 들면 제일 먼저 치아에 탈이 났다. 그래서 의치에 많이 의존한다. 이가 아프면 손으로 까는데 손작업이 더 어렵다고 했다. 요즘엔 기계가 나왔지만 100만원 하던 기계 한 대 값만도 500만원으로 올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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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생길’ 산수유 농사 : 산수유 수확은 11월말까지 얼기 전에 수확해야 하는데 나무 밑에 멍석 등을 깔고 털어서 모은다. 나무와 나뭇잎이 몸에 다으면 껄끄러워 사람을 괴롭히기도 한다. 수확한 열매는 햇볕에 말리거나 온돌방에 3~4일 반건조한 다음 손이나 기계로 씨를 발라낸 후 다시 건조시켜야 한다. 과육의 수분함량이 15~19% 정도가 있어야 적당하다.

과육은 술과 차, 한약재로 쓰였지만 요즘은 다양한 상품으로 확대되고 있다. 적자색이 강하고 윤택이 나며 신맛이 강한 산수유가 우량품으로 꼽힌다. 씨는 몸에 유해한 렉틴(lectins) 성분이 있어 절대로 먹어선 안된다.

중국 산동성에서 시집올때 갖고와 심었다는 산수유 시목. 1000살이 넘었다.

■ 계척마을 산수유 시목 : 지금으로부터 약 1000년 전 중국 산동성에서 가져와 우리나라에 가장 먼저 심은 산수유 나무 시조다. 달전마을의 할아버지나무와 더불어 할머니나무라고 불리기도 한다. 여기서 시작된 이 산수유 나무는 구례는 물론 전국으로 보급됐다고 한다. 

(내용 ②편으로 계속)

글ㆍ사진=남민 기자/suntopi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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