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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책> 소설가 신경숙에게 유머란?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소설가 신경숙이 유머가 깃든 짧은 소설,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문학동네)로 새로운 얼굴을 내밀었다. 그의 이전 소설이 삶의 균열, 깊은 그늘을 드러내는 데 모아져 왔다면, 이번 소설집은 슬몃 웃음짓게 하는 동화처럼 맑고 밝다. 26편의 짧은 이야기는 모두 일상에서 건져올린 것이다. 팽팽한 긴장과 팍팍한 삶에서 명랑한 유머의 힘은 신선한 솔바람 한 줌처럼 공기를 가르고 일상을 살짝 흔들어 놓는다.

평소 말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던 K 시인이 들려준 이야기 하나. 옛날에 과부가 살고 있는 집에 스님이 시주를 왔다. 과부는 거들떠 보지도 않고 방을 지켰다. 그러다 가겠거니 했는데 스님은 꼼짝 않고 계속 염불을 외웠다. 시주를 하지 않으니 스님의 염불소리가 “안~주면 가나봐라~”로 바뀌었다. 예쁜 과부, 이에 질세라 “그~칸다고 주나봐라~”로 맞불을 놨다. K의 이 이야기는 몽골로 뻗어갔다. 푸른 초원에 자리를 깔고 술을 마시던 일행이 심심해 6명씩 갈라져 젓가락 두드리며 한 놀이가 “안~주면 가나봐라~” “그~칸다고 주나봐라~”였다. 이 염불소리가 밤새도록 초원을 울리며 외국 관광객들을 불러모아 원더풀을 터져나오게 했다는 얘기다.

깨알 같은 재미가 가득하지만 만들어낸 억지스런 우스갯소리들이 아니다.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일어난 잔잔한 감동을 주는 소박한 유머들이다.

고양이의 밥그릇을 뺏어간 까치떼들의 싸움, 아침마다 혼자 사는 엄마를 위해 연속극 수다를 떤 J의 동생이야기, 매일 커피를 볶고 내리고 쓰레기를 버리며 즐거워하는 카페주인 등 일상의 소소한 풍경을 작가 특유의 세심한 손길로 그려냈다.

작가는 어느 밤, 문득 “달에게 우리의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짧은 형식의 글을 쓰고 싶어졌다”고 했다. 달에게 안부하듯 편안한 그리움을 담은 이야기는 느른한 행복으로 이끈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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