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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가 김다은, 청와대 터의 비밀을 풀다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소설가란 언어로 상상의 집을 짓는 이다. 외부로부터 어떤 사소한 자극이, 혹은 내면의 알 수 없는 욕구가 씨앗이 돼 자양분을 빨아들이며 형태를 갖추기 시작해 어느 때, 제 무게와 용틀임에 못 이겨 쏟아져 나오고야 마는 게 소설이다.

‘훈민정음의 비밀’ ‘이상한 연애편지’로 추리와 역사를 넘나드는 통 큰 글쓰기를 보여온 소설가 김다은(추계예술대 교수)의 신작 장편 ‘금지된 정원’(곰 펴냄)은 소설의 건강한 탄생을 알리는, 생명이 꿈틀대는 토양의 싱그러운 흙내를 전해준다.

소설 ‘금지된 정원’은 조선과 대한민국의 심장인 경복궁과 청와대를 둘러싼 풍수의 비밀과 이를 이용해 영원한 정복의 야욕을 불태운 일제와 조선 지관들의 명운을 건 싸움을 그려낸다.

금지된 정원은 한마디로 현직 대통령 관저인 청와대 터를 말한다. 조선시대 경복궁의 왕의 후원으로, 일제 총독관저가 있던 자리를 포함한다. 총독관저는 1993년 민족정기를 되살리기 위해 철거됐고 현재 수궁터라 불린다.

소설은 일제 총독이 조선총독으로 부임하던 날 경험한 신비한 하나의 계시로부터 시작된다. 조선의 푸른 하늘에서 붉고 거대한 둥근 알이 검은 점을 품고 태어나면서 ‘이것으로 생명의 집을 지으면 조선을 발 아래 두고 영원히 지배할 것이다’는 계시를 듣는다.

새로 부임한 조선총독은 칼과 총 대신 문화총독을 자임한다. 부임하던 날 폭탄 테러를 당한 총독은 생명의 집을 짓는 데 혈안이 된다. 경복궁 근정전 앞에 총독부 건물을 세웠지만 전임 총독의 과업이라 경복궁 안 명당 중의 명당에 총독관저, 살림집을 차리려 한다. 조선의 내로라하는 지관들을 불러모아 명당을 꼽으라 하자 낌새를 눈치 챈 김 지관과 양 지관은 머리를 굴린다. 김 지관의 아버지는 도참 지관 출신. 한 나라의 생명을 잉태할 도읍을 찾아내는 격이 다른 지관이었으나 나라를 빼앗긴 울분에 스스로 망가진다. 그는 아들을 위해 일본의 책략을 예견하고 경복궁 생명의 급소를 알려주는 글을 남긴다. 총독의 생명의 집에 대한 집착은 집요해지고 김 지관은 이를 피해 경복궁의 후원을 추천하기에 이른다. 여성의 자궁을 닮았다는 후원은 명당이면서 흉지이기도 하다. 손 지관은 집현전 자리를 명당으로 제시하면서 총독이 김 지관을 신뢰하도록 명 지관인 그 아비가 뭔가를 남겨놓았다고 총독에게 운을 뗀다.
 
작가 김다은                                                                                                                    [사진=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소설은 당시 문화말살정책이 왕실의 태를 묻은 태항아리를 파내고, 생명 파괴의 상징으로 명기의 자궁을 적출하는 등 생명이 움트는 자리마다 짓밟아 파괴한 역사적 사실들을 발굴해 재구성해냈다. 소설의 재미는 인물들의 얽히고설키는 데 있다. 연극단체의 청소부에서 태화관 선교사들로부터 영어를 배워 통역사가 된 세린, 환상적인 인물로 설정된 ‘미프헬’과 한순간 미프헬에 매료돼 그녀를 만나겠다는 일념에 혼이 나간 총독부 문화조사과장 하루키, 성공과 출세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지바 형사와 카케노 형사 등 서로 다른 갈망으로 뫼비우스의 띠처럼 생명의 집 싸움에 얽힌다.

풍수에 대한 일반의 생각은 이중적이다. 미신으로 치부하면서도 일상에서는 강하게 끌리기도 한다. 그러면서 드러내놓고 얘기하면 무시하기 일쑤다. 작가는 이 터부를 소설적 공간에서 깨고 거뜬히 넘어선다. 바람과 물의 길, 땅의 얘기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 아래와 위, 생명과 정신, 문화와 역사로 확장해 보여준다.

김 교수는 “사람들이 청와대에 간 대통령들의 말년이 좋지 않다고 말하는데 담론의 진실을 제대로 밝혀 우리 사회에서 불행의 언어를 걷어낼 수 있기를 바랐다”고 소설의 의도를 밝혔다. 그는 “나라를 빼앗고 우리 혼의 심장부를 함부로 강탈해 총독관저를 지은 일본의 진짜 속셈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지도 모르지 않는가”며 청와대 구 본관을 허물고 새 본관을 짓듯 우리의 의식도 새로운 집을 짓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희망했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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