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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있는 명소] 광양 매화마을②--30리 섬진강길 매화향에 취하고
(①편에 이어)

[헤럴드경제=광양]홍쌍리 여사는 아무도 쳐다보지도 않던 매실을 우리 식탁에 올린 장본인이다. 전남 광양시 다압면 ‘매화마을’의 대명사다. 호남의 명산 백운산 자락에 터를 잡고 섬진강 물기를 빨아들여 향기로운 매화꽃을 피워 봄바람에 날려보냈다. 이웃들도 따라 매화농장을 가꿔나갔다. 섬진마을 거리 마다 길게 줄지은 매화꽃길은 이제 섬진강 따라 10km를 넘게 수놓는다. 광양이 매화의 본향이 됐다.

매화는 남도에 봄이 도착했음을 알리는 전령사다. 이 매화를 보고싶어 필자는 또 새벽길을 떠났다. 필자는 매화와 뗄래야 뗄 수 없는 인연을 갖고 있다. 시골서 자라던 어린시절 매화초등학교와 매화중학교를 다녔다. 이들 학교가 있는 면소재지 마을이 매화리(梅花里)였고 5리(2km) 떨어진 필자의 고향마을은 한 술 더 떠 금매리(金梅里)다. 필자가 처음 대처로 나왔을 때 매화중학교라는 말이 좀 유치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건 순전히 아내의 놀림 때문이었다. “무슨 학교 이름이 매화냐”고. 지금은 ‘매화’하면 가슴이 뛴다. 미칠 만큼 사무친다. 자랑스럽다. 이젠 집에서 매화분재도 가꾼다. 활짝 핀 홍매를 보고 즐길 만큼.

따뜻한 봄날 매화꽃이 핀 동산에 상춘객들이 여유롭게 노닐고 있다.

새벽 3시에 출발한 차는 수도권 외곽순환고속도를 시작으로 남해고속도로까지 6개의 고속도로를 거쳐 아침 8시 조금 넘어 광양에 도착했다. 동광양IC를 빠져나오니 드디어 길 가에 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언뜻 봐도 매화다. 오랜만에 친구라도 만난 듯 반가웠다. 과연 남녘이었다. 서울에선 아직 꽃을 볼 수 없었는데. 남북으로 긴 한반도의 기온이 다양하게 차이 난다는 게 문득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양시내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압 매화마을로 향했다. 목적지가 가까워 오자 예쁜 매화 가로수가 도로 양 옆에서 멀리서 온 객을 맞이한다. 이 매화마을의 원조 ‘청매실농원’으로 가서 홍쌍리 대표와 정유인 부사장을 만날 기회를 얻었다. 단아한 모습에 모자를 쓰신 홍쌍리 대표님과 매실차를 놓고 한 시간 동안 이야기 나눴다. 너무나 유명하신 분이라 대화 중에도 계속 손님들이 찾아와 줄대기하고 있어 홍 대표님도 필자도 마음이 급해졌다. 그래도 운이 좋았다. 한 발만 늦었어도 이 귀한 시간을 가질 수 없었을 테니.

홍 대표님과 마주 앉아 “호칭을 어떻게 불러드려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했더니 “매실아줌마도 좋고예, 매실할매라 불러도 좋지예”라며 웃으신다.

청매실농원 전시판매장 외부와 내부 모습. 필자는 이곳에서 홍쌍리 대표와 면담했다.

홍 대표님은 매화동산이 이렇게 탄생하기까지의 숱한 얘기들을 들려 주셨다. 죽을 고비도 몇차례나 넘겼다. 홍쌍리의 삶은 ‘눈 속에서도 꽃망울을 터뜨리는 매화’ 그 자체였다. 홍 대표님은 시적 감각도 뛰어나셨는데 대화 중에도 그냥 시가 줄줄 흘러나왔다. 책도 여러 권 내셨다.

대화를 나누고 사진을 찍는데 홍 대표님은 필자의 허리춤을 감싸 안아주신다. 어머니 품 속 같은 느낌이었다. 면담하러 온 사람이 많아서 필자의 몫을 끝내는데 매실선물세트 하나를 건네신다. 아무리 안받을려고 해도 칠순을 넘긴 홍 대표님은 팔을 잡아당기며 “이건 받아야 한다”며 품에 안겨주신다. 명인이 직접 만든 ‘작품’을 선물로 받은 것이다. 매실원액과 잼, 매실장아찌가 든 세트다. 다음에 또 뵙기로 하고 본격적으로 농원투어에 나섰다.

필자와 홍쌍리 대표. 임권택 감독의 ‘천년학’ 세트장, 백매화, 홍매화(위 왼쪽부터 시계방향)

넓은 마당은 매실을 담아둔 옹기가 2000여 개 줄지어 있다. 이른 시각인데도 관광객들이 구름떼 처럼 몰려들었다. 필자가 찾은 이 날(16일) 매화(백매)는 산비탈 아래쪽에선 절반 이상 핀 상태고 고도를 높여 올라갈수록 아직 피지않았다. 같은 땅 약간의 고도 차에도 꽃망울은 섬세한 차이를 드러냈다. 반면 홍매는 활짝 피어 마을을 온통 붉게 물들였다. 그 붉은 홍매 사이로 섬진강이 멋진 풍경을 그려줬다.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사진을 얼마나 많이 찍었는지 모를 정도다.

대나무숲길을 지나고 농원 가운데쯤 이르니 임권택 감독이 촬영한 ‘천년학’ 초가집 세트장이 운치있게 자리하고 있다. 수많은 상춘객들이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다. 남녘은 완연한 봄날이었다.

매화향에 취해 동산을 거닐며 사진을 찍고 즐기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옹기와 상춘객들, 매화에 반한 여심, 섬진강에서 바라본 매화마을, 청매실농원의 산책길(위 왼쪽부터 시계방향)

이 농원에서는 점심도 가능한데 때마침 광양국제매화문화축제 준비에 여념이 없는 광양시청 박인수 주무관을 만나고 박양자 해설사 선생님, 정 부사장님 그리고 홍 대표님의 따님과 어울려 점심할 기회가 생겼다. 비빔밥으로 즐겼다.

식사를 하며 정 부사장과 매화에 대해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눴는데 매화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 보다 아직 밝혀내야 할 게 더 많은 열매라고 했다. 상춘객이 많아서 이 야외식당도 발 디딜틈없이 붐볐다.

청매실농원 아래쪽 도로변 광장에는 조만간 있을 매화축제 준비에 한창이었다. 매화축제는 지난 95년 홍쌍리 대표가 마을사람들과 함께 동네축제로 시작해 이후 광양시가 주도하기에 이르렀고 지난해부터는 국제적인 행사로 격상시켰다. 올해 축제는 이달 23일부터 31일까지 열린다. 매년 매화꽃 축제기간 관광객은 10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매화마을 1호 나무. 홍쌍리 대표의 시아버지 김오천 옹이 1917년 심은 매화나무 시목(始木)으로 농원에 보호, 관리되고 있다.

정 부사장은 동네 아이들이 길이 막혀 학교 가기도 힘들지만 주민들은 이 축제를 즐긴다고 했다.

매화가 피는 약 한 달 가량 지역주민 수 십명이 청매실농원에 몰려 농산물 좌판 장사를 벌인다. 여기서의 한 달이 논 1000평 1년 농사 보다 수입이 많다고 한다. 홍 대표님은 문을 활짝 열고 주민들을 받아들여 농가소득을 올려주고 있는데 자신은 ‘인간 울타리 백만장자’가 되었다며 웃으셨다.

은은한 매화향은 시골마을 지역경제도 살리고 있었다.

매화꽃송이 너머 섬진강이 유유히 흐른다.

이 매화향은 ‘문화의 향기’로도 퍼져나갔다. 영화와 드라마 촬영장소로 유명세를 톡톡히 치렀는데 첫사랑, 북경반점, 청춘, 매화연가, 흑수선, 취화선, 다모, 매화연정, 바람의 파이터, 풀밭 위의 식사, 노래여 마지막 노래여, 천년학, 날라리 종부전, 돌아온 일지매 등이 이 마을을 담아갔다.

매화향을 잔뜩 머금은 섬진강은 오늘도 말없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글ㆍ사진=남민 기자/suntopi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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