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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파파로티의 학교, 그리고 우리들의 학교
지난 11일 경북 경산에서 친구라고 믿었던 또래 학생들의 폭력과 학대, 모욕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학생이 또 나왔다. 극단의 선택을 결심하기까지 그가 겪었을 가없는 분노와 공포, 외로움을 생각하면 슬픔이 북받쳐 오른다. 그리고 분통이 터진다. 우리 사회는 또 얼마나 많은 학생들, 우리 아이들, 우리 미래의 비극을 지켜봐야만 하는가.

정부는 이번에도 역시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긴급 차관회의를 열고 대책을 내놨다. 학교폭력 감시의 사각지대가 없도록 학교주변에 폐쇄회로(CC)TV를 추가ㆍ보완해 설치하고 학생보호 인력을 확충하는 등의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는 2011년 12월 대구의 권모(당시 14세) 군이 학교폭력을 비관해 투신자살하자 2개월여 뒤 내놓은 대책이나, 지난해 11월 교과부가 발표한 학교안전 강화 방안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날짜만 바뀌었을 뿐이다. 탁상행정의 전형이다. 근본적인 치유책이 없다. 그저 국민정서와 여론의 눈치만 살핀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

학교에 폭력이 난무하는 이유는 참교육이 없기 때문이다. 지식 전수의 장(場)을 넘어 학생들에게 가치 있는 삶을 안내하는 길잡이가 돼야 할 학교는 언제부턴가 그 기능을 잃고 말았다. 뒤늦게나마 일부 학교가 인성교육을 기치로 내걸고 한데 뭉쳤지만 대다수 학교는 여전히 입시성과주의에 매몰돼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지식 전수를 고집하는 학교도 실상 부지기수가 사설학원에 밀려 뒷방신세다.

이런저런 사정을 감안하면 무엇보다 교사의 책임이 크다. 학교를 바로 세우고, 참교육을 실천해야 할 책무가 있지만 이를 외면하는 교사가 적지 않다. 특히 학생들 간 폭력을 목격하고도 괜한 말썽에 휘말릴까봐 못 본척하고, 문제가 불거지면 사후 책임이 두려워 이를 축소ㆍ은폐하는 일부 교사의 행태에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일각에서는 교권이 무너져 도리가 없다고 항변하기도 한다. 잘잘못을 가려 문제있는 학생들을 체벌하게 되면 외려 학생과 학부모의 폭언과 폭행으로 낭패를 본다고 하소연이다. 그러나 교권 부재 책임의 일부도 교사가 짊어질 일이다. 교권은 학생과 교사 간 인격적 관계가 형성돼야 바로 설 수 있다. 존경받는 교사에게 교권이 없을 리 없다.

지난주 말 조직폭력배에 몸담았던 한 청소년이 성악가로 변신하기까지 실화를 소재로 다룬 영화 ‘파파로티’를 봤다. 깡패를 경멸했지만 노래(성악)에 천부적인 소질을 타고난 ‘깡패 제자’를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던져버리는 스승의 헌신적인 사랑은 줄곧 눈물샘을 자극했다. 특히 경연은 끝났지만 “다시는 주먹을 쓰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깡패들에게 몰매를 맞고 만신창이가 된 채로 경연장에 도착한 제자를 위해 “상을 주지 않아도 되니 (제자가) 무대에서 노래만 부를 수 있게 해달라”며 심사위원들에게 애원하는 스승의 절규는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입시위주 교육을 강요하는 조변석개(朝變夕改) 교육제도와 이런 제도를 만들고, 바꿔치면서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교육수장이 있었던 탓에 교사의 어깨가 가볍지 않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 모든 문제를 제도와 정부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 이제 우리 학교에도 파파로티에 등장하는 음악선생님처럼 헌신적인 사랑을 베푸는 스승이 필요하다.

i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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