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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 - 정재욱> 불성실 경기가 전략이라고?
“리그 순위가 정해졌다고 남은 경기에 대충 임한다면 프로가 아니다. 오가는 돈만 없을 뿐 승부조작과 다를 게 없다. 프로선수와 감독은 어떤 상황에서든 최선의 경기력을 보여줘야 한다. 성적은 그 다음 얘기다.”




스포츠의 생명은 역동성이다. 팽팽한 긴장감과 승부를 점칠 수 없는 박진감에 팬들은 환호하고 기꺼이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 그러기에 선수와 감독은 시즌 내내 한순간도 긴장을 늦추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승부조작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최악의 행위다. 스포츠의 본질을 깡그리 부정하기 때문이다. 프로농구 원주 동부의 강동희 감독이 최근 승부조작 혐의로 구속됐다. 현역시절 국내 최고 가드였으며, 감독으로서의 능력도 출중했던 그이기에 더 충격적이고 안타깝다.

겨울 스포츠인 농구와 배구가 시즌 막판이다. 리그 순위는 대부분 확정됐으며 최종 챔피언을 가리는 결정전만 남겨 놓고 있다. 그런데 이맘때면 늘 한심하고 프로답지 못한 장면이 자주 목격된다. 경기에 임하는 자세가 완연히 느슨해지는 것이다. 이미 순위가 결정된 마당에 기를 쓰고 한 경기 더 이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그렇게 생각한다면 선수든 감독이든 당장 코트를 떠나야 한다. 그건 오가는 돈만 없을 뿐 승부조작과 하나 다를 게 없다.

며칠 전 프로배구 V리그 6라운드 삼성화재와 KEPCO 간 경기가 그랬다. 일찌감치 리그 1위를 확정한 삼성화재와 시즌 성적이 단 1승에 불과한 최약체 KEPCO가 붙었으니 결과는 대략 예측이 된다. 그러나 이날 경기는 KEPCO가 승리했다. 하긴 영국의 4부리그 소속 브래드포드 시티 축구팀이 내로라하는 프리미어리그 강팀들을 연파하고 전통의 ‘캐피틀 원 컵(리그 컵)’ 결승에 오르는 기적을 연출했다. 꼴찌팀이라고 1위 팀을 이기지 말라는 법은 없다. 또 그런 게 스포츠 경기의 매력이다.

하지만 이날 경기는 그런 감동과는 거리가 멀다. 삼성화재는 아예 2진으로 팀을 꾸려 경기를 치렀다. 포스트 시즌을 앞두고 주전선수들에게 휴식을 주기 위해서라지만 전략도 변명도 될 수 없다. 모처럼 휴일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을 그런 맥 빠진 경기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우롱당한 느낌에 다시 배구장을 찾고 싶은 마음이 싹 가실 것이다. 긴장감도 역동성도 없는 껍데기뿐인 경기에 시간을 낭비할 이유는 없다. 팬들의 눈에는 상대를 봐가며 완급을 조절하는 삼성화재의 6라운드 경기 모두가 그렇게 ‘조작’처럼 보였다.

승부의 세계는 냉혹하다. 승자와 패자의 차이는 하늘과 땅에 비교될 정도다. 하지만 그 속에도 나름의 질서와 원칙이 있다. 모든 판단의 기준은 팬이다. 팬은 프로 스포츠의 중심이며 절대 주인공이다. 성적이 아무리 중요하기로 팬들보다 우위일 수는 없다. 어떤 상황에서도 선수와 감독은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줘야 하는 까닭이다. 우리 인생도 그렇지 않은가.

팬들이 열광하는 것은 응원하는 팀의 성적이 아니라 배구든 농구든 스포츠 그 자체다. 이를 한시도 잊어선 안 된다. 주인도 없이 네이밍 스폰서에 의지해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러시앤캐시팀이 이번 시즌 감동의 투혼을 발휘, 인수 기업이 새로 나서는 등 프로배구가 어렵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그런데 눈앞의 유불리에 급급해 얄팍한 잔꾀를 부리며 불성실하게 경기에 임하는 것은 판을 깨는 것이나 같다. 성적이 감독의 수명을 연장시켜 줄지는 몰라도 성적 지상주의는 프로 스포츠가 경계해야 할 1순위 걸림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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