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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책>움베르트 에코, ’장미의 이름’ 이후 30년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우리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움베르토 에코의 최근 문제작 ‘프라하의 묘지’(열린책들)는 에코 특유의 해박함과 역사와 허구를 넘나드는 도발성, 생생한 디테일이 어우러져 읽는 맛을 준다. 권력의 거짓말에 관해 연구해온 에코는 ‘세계 문학사상 가장 혐오스러운 주인공’으로 불리는 시모니니를 통해 정교한 날조가 때로는 진실보다 위력적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이야기의 출발은 에코 식이다. 모든 것은 문서 한 장에서 시작된다. 훗날 나치에 의해 유대인 박해의 근거로 이용돼 세계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문서, 즉 ‘시온 장로들의 프로토콜’이다. 유대인이 세계 지배를 획책하고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어마어마한 증오를 불러일으킨 문서. 이 문서가 어떤 시대, 어떤 과정을 거쳐 날조됐는지가 소설의 뼈대다. 유대인을 증오하는 시모니니 입을 통해 쏟아져 나오는 인종적ㆍ종교적 편견의 말은 차마 듣기 거북할 정도다.

출간 이후 전 유럽이 들끓은 건 당연하다. 이탈리아에선 출간 직후 65만부, 스페인어판은 초판만 200만부를 인쇄할 정도로 파장이 컸다. 진실게임에서 에코는 후기에서 허구의 인물은 시모니니 한 명 뿐이고, 모든 주요 인물은 실존했던 인물이라고 밝혀 놓았다.

이 문서는 1921년 ‘런던타임스’에 의해 허위임이 이미 밝혀졌고, 이후에도 수차례 완전 날조임이 재증명됐음에도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진짜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믿기로 작정하면 믿게 돼 있다는게 에코가 보여주고자 하는 이면이다.

실존인물을 만나는 건 소설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기억을 잃은 시모니니가 과거를 되살리기 위해 찾아간 프로이트는 자신감도 없고 코카인에 중독된 한낱 풋내기였다. 또 시칠리아로 가는 배에선 ‘삼총사’의 작가 뒤마를 만난다. 뒤마는 엄청난 미식을 자랑한다. 소설 곳곳에 배치된 59점에 이르는 삽화는 고전의 맛과 풍부한 책읽기를 유도한다. 한편으론 등장인물이나 사건이 허구가 아니라 실재임을 보여주는 기표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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