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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블록버스터엔 없는 잔잔함을 전하는 뮤지컬 ‘심야식당’
“달이지면 지는대로 바람불면 부는대로 인생흘러흘러 흘러가네 흐르는대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밥에 살아 움직이는 듯한 가츠오부시, 간장 한 방울. 젓가락으로 한 입 물으면 어느새 귓가엔 엔카 가수 치도리 미유키의 한 섞인 노래가 들려온다. ‘두고가면 가는대로, 떠나자면 가는대로’ 미유키의 흘러가는 인생처럼, 머문자리에 반도 먹지 못하고 두고 간 ‘고양이밥’엔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이 녹아있다.

해가 저물고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갈 때쯤 시작되는 ‘심야식당’의 하루. 밤 12시부터 아침 7시까지 영업하는 이곳에는 지친 심신을 달래고자 꽤 많은 손님들이 이곳을 찾는다.


뮤지컬 ‘심야식당’의 음식 속엔 삶에 지친 각자의 애환이 녹아들어 있다.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한 음식들은 때론 잔잔하게, 때론 가슴아프게 우리 마음을 파고든다.

은은한 조명 아래 무대 한가운데 ‘마스터’가 운영하는 식당이 있다. 10명이 채 앉지도 못할 조그만 공간속에 낡은 벽시계, 나무재질의 테이블,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빛을 잃지 않는 아름다움이 전해진다. 조그만 골목길과 희미한 빛을 발하는 가게의 간판, 화려하진 않지만 극과 잘 어울리는 무대다.

마스터는 야쿠자 켄자키 류의 문어소시지, 게이바를 운영하는 코스즈의 계란말이, 오차즈케 시스터즈의 녹차밥, 치도리 미유키의 고양이밥을 직접 조리해준다. ‘촤~’하고 지글지글 소시지를 볶는 소리는 무대밖을 나서면 당장이라도 소시지를 먹어야 할 듯한 기분.


작품은 원작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으려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등장인물 각각의 개성은 무대 위에서 생생히 살았다. 마스터는 큰 소리 내어 많은 말을 던지지 않지만 무대를 꽉 채운듯한 무게감을 그대로 유지했고 코스즈의 여성스런 말투와 행동, 켄자키 류의 과묵함, 오차즈케 시스터즈의 “그치, 그치, 네~”라고 외치는 발랄함은 원작을 그대로 베껴온 듯하다.

원작의 에피소드를 다 전할 수 없기에 내용은 수정작업을 거쳐 인상적인 몇 가지 이야기를 한데 묶었다. 아이돌 가수 카자미 린코와 아버지의 사랑, 타다시와 어머니의 이야기, 남자 에로배우 일렉트 오키의 어머니 이야기는 유연하게 잘 이어진다. 야키소바 위의 계란후라이와 시만토 강의 파래, 감자 샐러드의 짭짤함 등 디테일한 부분도 놓치지 않았다.

정의욱과 최호중, 박정표의 1인 다역은 숨겨진 백미. 켄자키 류의 부하 겐 역을 맡은 최호중은 대머리 남자 모리, 안마사 키미, 카자미 린코의 팬클럽 남자, 린코의 아버지, 일렉트 오키의 수제자 등을 능청스럽게 연기한다.


뮤지컬 ‘심야식당’은 대형 블록버스터급 뮤지컬들이 가지지 못한 무언가를 지녔다. 마스터가 전하는 음식엔 삶의 희노애락, 추억, 인생이 담긴 소박한 감성이 있고 다른 뮤지컬들이 주지 못한 긴 여운을 남긴다.

사람들이 잠든 사이, 삶에 지친 이들이 잠시 머물렀다 떠나는 이곳. ‘심야식당’의 주인장 마스터는 내년 2월 17일까지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음식에 담긴 삶의 향을 객석에 전한다.

문영규 기자/ygmoon@heraldcorp.com

[사진제공=컴퍼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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