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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 - 전창협> 투표, 해야 할 만 가지 이유
정치에 대한 국민적 불신 反정치주의로 이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투표불참 17대엔 1391만표가 기권표 투표는 국민의 고유 권리 소중한 한표 행사해야…


1981년 2월 6일 서울 동작구 제5선거구 합동연설회. 2명의 무소속 후보자가 똑같은 연설문을 읽는다. 어이없는 일이 생긴 것은 2명 모두 같은 웅변학원에서 연설원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청중들이 웃는 건 당연한 일. 같은 날 충북 청원군 문의면 선거구 합동연설회에서 민주정의당 황건주 후보는 “당선되면 대통령과 악수할 기회가 있을 텐데 그때 지역의 숙원사업을 쪽지에 적어 악수 순간에 꼭 전달하겠다”고 말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1981년 늦겨울, 사실상 대통령을 뽑는 선거였지만 국민들의 관심이 별로 없었다. 직접선거가 아닌 대통령선거인을 통해 대통령을 뽑는 간접선거인 데다 전두환 대통령이 사실상 ‘내정’상태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선거인단이 뽑혔고, 형식적인 대선은 2월 25일 전국 77개 투표소에서 열렸다. 투표마감시간은 오후 2시. 5277표밖에 안 된 탓에 30분 뒤에 모든 개표가 마무리됐고 기호 4번 민주정의당 전두환 후보가 예상(?)대로 90.2%의 높은 득표율로 당선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펴낸 ‘대한민국선거사’에 실린 내용이다.

지금 보면 어이없어 보이는 일이지만 불과 30년 전 일이다. 그때만 해도 국민들이 직접 대통령을 뽑는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6월 항쟁’이란 대규모 시민혁명과 희생을 겪은 1987년에 가서야 비로소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됐다.

투표를 해야 할 이유는 수없이 많다. 무엇보다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투표권이 그 어느 것보다 소중한 권리이기 때문이다. 재산이나 성별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투표를 할 수 있는 보통선거의 역사는 1세기가 채 되지 않았다. 미국만 해도 초기에는 재산이 있는 백인 남성만 투표권이 있었고 인디언까지 포함된 실질적인 보통선거는 1930년에 가서야 시행됐다. 여성이 참정권을 갖게 된 것은 영국이 1918년, 일본은 1945년의 일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여성의 투표권을 주겠다고 약속한 게 지난해이고 2015년이 돼야 여성들이 처음으로 투표를 할 수 있게 된다. 적절한 예가 아닐지 몰라도 사우디아라비아에 비하면 우리는 엄청난 권리를 갖고 있는 셈이다.

정치에 대한 불신이 정치허무주의, 정지혐오주의 같은 ‘반(反)정치주의’로 이어지면서 많은 사람들의 투표 불참을 이해할 구석이 있다. 그러나 ‘고작 1표’ 불참의 누적이 민주주의의 붕괴를 가져올 수도 있다. 선거는 최선(最善)이 아니라 차악(次惡)을 뽑는 의식이란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대통령 선거가 눈앞이다. 거리에 후보자들 플래카드보다 더 많이 보이는 게 있다. 꼭 투표를 하자는 투표 독려 플래카드다. 정치권이나 언론에선 투표율에 따른 대선 결과 셈법에 골몰하고 있지만 어쨌든 여야를 가리지 않고 투표 독려에 나서고 있다.

지난 2007년 17대 대선 득표수다. 투표를 하지 않은 ‘기권’표가 1391만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 1149만표,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 617만표다. 이명박 후보가 정동형 후보를 500만표가 넘는 표차로 대승을 거뒀지만 가장 많은 표는 기권표였던 셈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지난 대선에 이어 최다 득표자가 또다시 ‘기권자’가 된다면 한국 민주주의 앞날은 어두워질 수 있다. 권력의 근원은 국민에게 있다는 민주주의의 상식을 확인하기 위해서도 투표장에 나가야 한다.



전창협 디지털뉴스센터장/jlj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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