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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의 제작비밀…더듬더듬 말해도 진실은 통한다
[헤럴드경제=한지숙 기자] “딸이 결혼식에 오지 말라고 합디다. 시댁에 아버지가 안계신다고 했다더군요. 가장 믿었던 아내와 아이에게 버림받았단 생각이 저를. 지금도 괴롭습니다.”

KBS1 ‘강연 100℃(도씨)’ 무대에 선 용답동 정육점 사장 신칠하씨가 토막토막 말을 잇는다. 5초에 한번 꼴로 고개가 손에 든 큐카드를 향해 떨어진다. “딸애가 손녀를 낳았단 소식을 들었습니다. 손녀 사진을 구했습니다. 그렇게 예쁠 수가 없습니다.” 드라마와 똑같은 실제 이야기를 전하는 목 맨 소리가 방청객과 시청자의 가슴을 파고든다.

강연프로그램 ‘강연 100℃’가 잔잔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시청률도 금요일 오후10시 시간대 교양물 치고는 높은 8~9%를 유지한다.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내세운 이 프로그램은 지난 7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으로부터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으로 지상파TV 부문에서 선정됐고, KBS 사내에서도 최우수 프로그램으로도 뽑혔다.


연출가인 KBS교양국 안진 PD는 13일 “인공 조미료를 넣지 않은 투박한 맛”이라고 프로그램의 인기 이유를 소개했다.

‘강연 100℃’에는 달변, 능변이 없다. 일반인 강연자 대부분이 눌변이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린다고 고백한다. 얼굴엔 긴장한 표정이 역력해 보는 이 조차 조마조마하다. 더듬더듬 말하는 10여분의 짧은 사연은 “이것이 진짜 인생이다”라며 웅변한다. 노총각 야채상, 노숙자 출신 창업교육가, 태국서 성공한 남성 헤어디자이너 등 다양한 계층의 인사가 각자 삶의 변곡점을 날 것 그대로 들려준다. 방송을 시작한 지난 5월18일부터 매주 3명씩, 12일 현재까지 모두 72명이 이렇게 무대를 거쳤다.

어떻게 찾아서 카메라 앞에 불러 세웠을까. 안 PD가 공개하는 ‘투박한 맛’의 레서피는 이렇다. 작가, 연출자를 포함한 제작팀 10여명은 매주 각자 20~30명씩 강연자를 발굴한다. 신문 사회면의 한 꼭지, 책방, 철지난 TV프로그램을 뒤진다. 매주 아이템 회의에는 200~300명의 후보가 쏟아진다. 이를 20%로 줄인다. 40~60명에게 전화를 걸어 인터뷰를 해보고, 방송할 만한 ‘주제’가 잡히면 PD와 작가가 직접 대면 인터뷰를 시도한다. 2~3시간 인터뷰를 진행하며, “진실한 사람인지, 이야기가 특별한 지, 사연에서 시청자와의 접점을 찾을 수 있을 지” 등 여러 검증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제작진의 당초 기대를 빗나가는 이도 있고, 출연을 마다 하는 사람도 허다하다. 또 어떤 이는 녹화 한 시간 전에 “도저히 못하겠다”며 촬영을 고사해 제작진의 애를 먹이기도 했다.


안 PD는 “인터뷰를 하다보면 놀랄 때가 더 많다. 남 앞에서 내 이야기를 하는 게 우리문화에선 쉽지 않은데, 각자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들이 있다. 흔히 ‘내 얘기는 책한권으로 모자르다’고 말하듯, 누구나 삶의 비밀을를 갖고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칠하씨는 ‘2002년 구제역 파동과 2003년 광우병 사태 당시의 사람들은 요즘 어떻게 지낼까’란 의문에서 출발해, 육가공단체, 신용회복위원회 등 각종 기관과 단체에 문의해 찾은 사례다. 서울역을 오가면서 본 노숙자 도우미는 현장에서 직접 섭외했다.

이렇게 ‘모신’ 강연자는 연습 한번 없이 600여명의 청중 앞에 선다. 제작진의 스피치 코칭은 따로 없다. 소위 ‘짜고 치는 고스톱’이란 없다. 작가가 써 준 큐카드의 대본은,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으려는 진정성 앞에선 쓸모가 없다.


안 PD는 “출연자도 방송이 끝나면 만족스러워한다. 그동안 묻어놨거나 억울했고, 미워했던 얘기를 털어놓으며 용서를 구하기도 하고 자책하면서 출연자 스스로도 위로를 받는다”고 했다.

‘강연 100℃’는 다음달 중 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으로도 나온다. 바쁜 직장인이나 학생이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에서 보면서 공감하고 위로받으라는 취지에서다. 내년 1월에는 강연자의 사연을 묶은 책도 발간될 예정이다.

/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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