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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재곤의 스포츠 오딧세이-무명골퍼라고 꼭 인생의 조연은 아냐
‘황선영’ 프로골퍼를 알게 된 것은 10여 년 전 일이다. 국가대표 상비군을 마치고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의 정회원에 입문한 투어프로였다. 유복한 편임에도 검소했으며 타인에 대한 배려도 남달랐다. ‘그 아버지에 그 딸’처럼 아버지는 자수성가한 중소기업인이었다. 절약과 겸손이 몸에 배어 있었으며 대중교통을 즐겨 탈정도로 소탈했다.

자녀의 일을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했으며 무엇보다 독립심을 키우는데 역점을 뒀다. 일부 여자골퍼 대디들의 과도한 관심과 열정과는 사뭇 달랐다. “모든 선수가 박세리가 될 수 없잖습니까. 그보다 성숙한 골퍼가 되기를 더 바라지요. 외식을 하는데 딸아이 신발이 명품이어서 저녁 내내 핀잔을 줬어요. 한번 우승해주면 좋지만 아니어도 할 수 없지요. 못 치면 화가 날까 봐 아예 갤러리로 나가지 않습니다. 하체 근육을 좀 키우면 좋으련만 영 말을 안 듣네요.”

나름 강도 높은 훈련을 병행했으나 생각과 다르게 좀처럼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 부잣집 딸이라 헝그리 정신이 부족하다는 우려감이 나올 즈음 일본여자투어(JLPGA) 프로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당시 한국인 프로에게는 지역예선 면제 혜택이 없었다. 일본 아마추어와 똑같이 지옥의 144홀 스트로크 플레이를 펼쳐 당당히 공동 1위를 차지했다. 2세대 일본투어 프로쯤으로 보면 될 듯싶다. 스폰서 기업이 없어 더러 20㎏이 넘는 골프백을 메고, 기차를 타면서 투어 생활을 했으나, 노력에 비해 결과가 터무니없었다. 


깊게 숨어 버린 러프의 볼처럼 다음 목표점을 마주대하기가 두려웠다. 세월이 보약이라지 않던가. 정지한 만큼 깨달음이 있었다. 넘버원이 아니라 온리원의 인생 2막을 열어 보겠다는 다짐 말이다. 지금은 골프아카데미스쿨을 운영하면서 장차 컨트리클럽 CEO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스타 골퍼보다 더 중요한 진솔한 골퍼의 길로 가고 있어 박수를 보내고 싶다.

캐디에서 프로골퍼로의 변신은 낯설지가 않다. 프로골퍼가 캐디가 됐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KLPGA 정회원인 ‘이보연’선수의 사연이다. 든든한 후원자였던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오전에는 캐디, 저녁에는 연습장 생활을 꾸려가야 했다. 다행히 타이틀 스폰서 기업의 챌린지 프로그램에 1위를 해서, 지난 주 끝난 미국 LPGA 하나·외환 챔피언십의 추천 선수로 출전하게 되었다. 비록 최하위의 성적을 올렸지만 세상 사람들에게 그녀의 존재를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가정사를 말할 때 선수의 눈은 떨렸다. 미래를 설계할 때는 누구보다도 당차보였다.

내가 서 있는 그 자리가 타인에게는 꿈의 자리인 것을 알면 우리 내 삶이 풍성해질 텐데. 이 땅의 무명인들이여 힘냅시다. 


칼럼니스트/aricom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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