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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글을 쓰냐고 묻거든…
고은 명시 240편 담은 ‘마치 잔칫날…’ 공지영 작품중 명글귀 모은 ‘사랑은 상처…’ 출간…두 작가 문학인생 한눈에
“왜 시를 쓰느냐고 묻는다면 아직도 그 대답을 마련하지 못하였다. ”(고은)

“내가 작가가 아니었다면, 내가 글을 쓰지 않았다면 …이라는 가정을 한번도 하지 않고 살아왔다는 것.”(공지영)

우리 시대 대표 시인 고은은 시력 55년 삶을 이렇게 간명하게 정리했다. 단행본 1000만부의 우리 시대 베스트셀러 작가 공지영은 글을 쓰지 않았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을 거”라고 했다.

고은 시인과 소설가 공지영의 특별한 책이 책상에 도착했다. 홀리듯 꿈꾸는 시어를 건져올려 시의 탑을 쌓아올린 고은 시인, 상처를 헤집고 시퍼렇게 살아있는 말들을 끄집어내 한권 한권 소설을 낳은 공지영 앤솔로지(선집)가 같은 시점에 나왔다. 고은 시선집 ‘마치 잔칫날처럼’(창비)은 시인이 평생에 걸쳐 쓴 작품들 중에서 240편을 가려 뽑은 명시선이다. 이시영 김승희 고형렬 안도현 박성우 등 다섯 시인이 시기별로 나누어 일차로 수록작을 뽑고 문학평론가 백낙청 씨가 최종 선정한 공동작업이다,

2002년에 나온 시선집 ‘어느 바람’ 이후 두 번째다. 어느 바람에는 첫 시집 ‘피안감성’(1960년)에서부터 2002년 시집 ‘두고 온 시’까지 추린 150편의 시가 실려 있다. 10년 만에 나온 개정ㆍ증보판인 이번 시선집은 최초 발표작 ‘폐결핵’ 등 친숙한 초기 작품을 비롯해 ‘어느 바람’에서 추린 30편, 2002년 이후 지난해까지 출간된 근작 시집 5권에서 54편을 새로 정선해 모두 240편으로 짜였다. 고은 시인의 시 세계를 총망라한 대표 시선으로 손색이 없다.

“누님이 와서 이마 맡에 앉고/외로운 파스ㆍ하이드라지드 병(甁) 속에/들어있는 정서(情緖)를 보고 있다./뜨락의 목련(木蓮)이 쪼개어지고 있다./한번의 긴 숨이 창 너머 하늘로 삭아가버린다./”(‘폐결핵’)

시인의 초기 시는 ‘폐결핵’을 포함해 탐미적ㆍ허무주의적 색채가 짙다. 이는 1970, 80년대를 거치며 사회와 역사에 대한 적극적인 발언으로 바뀐다. 선(禪)적인 깨달음의 순간을 빛나는 시어로 잡아챈 시어, 히말라야 고행을 비롯해 해외에서의 경험을 녹여낸 시편들 등 거칠 것 없이 우주로 뻗쳐있는 고은 시의 세계를 한눈에 만날 수 있다.
 
55년 시 편력을 짚어볼 수 있는 대표 시선집을 펴낸 우리 시대의 거목, 시인 고은(왼쪽), 25년 치열한 문학과 삶의 자리를 증거하는 글귀를 모아 앤솔로지를 펴낸 소설가 공지영.                                                      [헤럴드경제DB사진]

고은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장차 내 부재의 어느 날도 존재이기를 누추하게 꿈꾸지 않는다. 나에게는 오로지 현재가 내 꿈의 장소이다. 허나 현재란, 꿈이란 얼마나 천년의 가설인가”고 썼다.

공지영의 앤솔로지 ‘사랑은 상처를 허락하는 것이다’(폴라북스)는 1988년 계간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 단편 ‘동트는 새벽’을 발표하며 등단한 지 25년 동안 그가 쓴 모든 작품들에서 작가 스스로 뽑은 사랑과 상처, 치유의 글이다. 어느 한 귀절 사랑에 닿아있지 않은 것이 없는 만큼, 그는 사랑에 치열하다. 그건 삶, 소설의 태도이기도 하다.

“그 여자로 말하자면, 그 여자는 글을 쓰고 싶어했다. 소설,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소설. 한 문장 한 문장 읽을 때마다 가슴에 손톱으로 긁는 것처럼 붉은 상처자국이 주욱주욱 그어질 것같이 아픈,”(‘별들의 들판/섬’)

“그럼 작가가 계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고통과 고독과 독서, 세 가지가 거의 필수적인 것 같아요.”(‘괜찮다, 다 괜찮다’)

“J, 성장에는 고통이 뒤따른다는 사실이, 인간이 성숙해지기 위해서는 필히 물레방아처럼 많은 눈물이 필요하다는 것이 내게는 여전히 달갑지 않았지만 이제는 볼멘소리로 그냥, 예, 하게 되었습니다.”(‘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데뷔 25주년을 기념해 펴내는 이번 앤솔로지는 작가의 문학인생을 중간 결산하는 차원에서 작가가 길어올린 365가지 글귀를 모은 것. 하루에 하나씩 1년치의 위로와 공감을 주는 글이다.

머리에 닿기도 전 펄떡거리는 가슴에서 막 터져나온 듯 생생한 언어들은 상처투성이라고 느끼는 이들, 외롭고 힘든 이들에게 낮게 다가간다.

공지영은 작가 서문에서 “이 책은 무엇보다 나에게 주고 싶다”고 했다.

‘도가니’와 ‘의자놀이’를 집필하던 서재와 오래된 흑백사진들, 성모마리아와 예수의 초상, 아이와 반려견들, 양초 등 생활의 풍경 23컷도 넣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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