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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대도시 서울, 새로운 미디어아트에 물들다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거대도시 서울이 미디어아트(Media Art)에 물들었다. 서울 덕수궁 옆의 서울시립미술관(관장 김홍희)은 미술관 전체에 참신한 미디어아트가 가득 차 역동적인 파장을 뿜어내고 있고, 서울역 앞 대형빌딩(옛 대우빌딩)과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빌딩, 을지로 한빛거리 등에선 현란한 영상작품이 상영되고 있다.

▶너에게 주문을 걸테니 미디어아트에 빠져봐=서울을 대표하는 비엔날레인 ‘미디어시티서울’은 올해로 7회째로 17개국 작가 50명이 ‘너에게 주문을 건다(Spell on you)’를 주제로 영상, 설치, 미디어아트 작품을 내놓았다.
작품들은 오늘날 지구촌 사람들의 삶과, 저들의 삶의 조건에 대해 비평적 담론과 다양한 인문학적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유진상 총감독과 일본의 미디어아트 비평가 유키코 시카타, 네덜란드 미디어아트 인스티튜트의 디렉터 올로프 반 빈든, 미국 ‘제로원(ZERO1) 비엔날레’의 공동 큐레이터 최두은 씨는 이 시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슈들을 다룬 작업을 선정해 관람객에게 제시하고 있다. 


그동안 ‘미술’하면 그림과 조각만 떠올렸던 이들에겐 예술에 과학을 결합한 ‘미디어 아트’가 어렵고 낯설게 마련이다. 현대 커뮤니케이션의 주요수단인 대중매체를 미술에 도입한 미디어아트는 컴퓨터, 동영상, 영화, TV 등 대중에의 파급효과가 큰 의사소통 수단을 활용하는 미술이다. 최근에는 컴퓨터그래픽, 레이저광선, 홀로그램같은 입체적 테크놀로지는 물론이고 트위터 등 SNS까지 폭넓게 이용되고 있다. 그러니 회화나 조각에 비해 난해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미디어아트도 마음의 문을 열고, 즐기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신나게 소통할 수 있다. 특히 지난 9월 개막돼 서울시립미술관과 상암DMC 갤러리 등에서 열리고 있는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미디어시티서울2012)는 의외로 쉽고 흥미로운 작품들이 많은 데다, 설명자료가 풍부해 시민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참여작가의 면면은 그 폭이 매우 넓다. 제니 홀저(미국), 로베르 르파주(캐나다), 아크람 자타리(레바논) 등 내로라하는 미디어 아티스트에서부터 이제 막 작가로 촉망받는 신예들이 두루 참여했다. 한국에서는 홍승혜, 최재은, 정연두 등 10여 명이 참가했다.

주제인 ‘Spell on you’는 미국의 대중가수 스크리밍 제이 호킨스의 1950년대 노래에서 차용한 것이다. ‘Spell(주문)’은 날이 갈수록 초월적 지위에 오르고 있는 테크놀로지와, 끝없이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을 통해 개인과 개인, 개인과 집단, 집단과 집단간 작용하는 힘의 관계를 은유하는 키워드다. 


특히 오늘날 SNS, 대중소통,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의한 사회적 소통에서도 ‘Spell’에 근거한 힘의 관계가 드러나고 있어, 이번 비엔날레에선 이같은 사회현상이 집중적으로 다뤄지고 있다. 이제껏 미술은 미술가만의 영역이었던 것과는 달리 과학, 인문학, 동시대 테크놀로지와의 융합을 통해 탄생한 미디어아트는 지금의 우리의 모습을 비추는 것은 물론 미래 또한 예측하게 한다.
흥미로운 것은 각종 첨단기기와 인터넷상 이미지를 비롯해 와이파이,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활용한 미디어아트가 그 어떤 미술제보다 풍성하게 등장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관람객들은 ‘아니, 이런 것도 미술의 기법이 될 수 있다니’하고 경이로움에 빠져들 수 있다. 영상 컴퓨터세대는 물론이고 그런 것들과 담을 쌓고 지냈던 이들조차 빠져들게 하는 작업이 여럿이다.

▶놀이하듯 즐기며 감상하면 작품이 더 잘 이해되거늘= 전시는 층마다 스토리가 연결되는 소주제를 설정했으며,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작품을 곳곳에 설치했다. 관객이 놀이하듯 참여할 수 있는 작품 중에는 바르셀로나에서 온 블라블라브랩의 작업이 가장 인기다. 관객의 모습을 석대의 3차원(3D) 스캐너로 측정한 뒤, 플라스틱 입체인형으로 만들어준다. 모델처럼 작업에 참여해 스스로 기념품이 되는 기회를 즐길 수 있는 프로젝트다.

미술관 3층 한켠에선 달콤한 꿀내음이 진동한다. 뉴욕과 예루살렘을 오가며 활동 중인 로미 아키투브는 사뮤엘 베케트의 단막극 ‘크라프의 마지막 테이프’의 영상을 틀어놓고, 영상 속 대사의 파장에 따라 3m 높이에서 꿀의 낙하를 조종하는 작업을 시행하고 있다.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 중인 작가 최재은은 미술관 옥상에 카메라를 설치해 5분 간격으로 서울의 하늘을 찍는다. 청명한 하늘은 물론, 새떼가 나는 하늘, 구름 낀 하늘, 비 내리는 하늘 등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도심 하늘을 찍은 사진들을 출력해 이를 전시장 바닥에 잔뜩 쌓아놓았다. 원하는 이들은 이 다양한 빛깔의 하늘 사진을 가져갈 수도 있다. 하늘이야말로 추상성의 상징인 동시에 수없이 많은 정보의 흐름을 드러내는 대상이라 믿는 작가는 하늘의 변화를 살펴보는 시간을 통해 우리 스스로의 좌표와 존재이유를 돌아보게 하고 있다.


미국 작가 데이비드 보웬은 움직이는 파리 50마리를 원형의 투명 아크릴통 속에 넣고 그들이 움직일 때마다 키보드 자판에 찍힌 140자의 글을 트위터로 전송하는 ‘파리 트윗’이란 작품을 시행 중이다. 또 엑소네모의 ‘데스크톱밤’이란 작품은 사람 대신 컴퓨터 커서가 자동으로 움직이며 각종 소리와 화면 파일을 실행해 보여준다. 인간만이 컴퓨터 작업의 주체가 아님을 드러내는 작업이다.

벨기에 작가 데이비드 클레어바우트의 37분짜리 영상작품 ‘알제의 행복한 순간의 단면들’은 알제의 어느 바닷가 건물옥상에 모인 사람들의 모습을 찍은 것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한 명씩 따로 촬영돼 나중에 하나의 이미지로 조합됐다. 인물과 함께 하늘을 나는 갈매기들까지 모두 저마다의 시간과 시점을 지니고 있는데, 각각의 톱니바퀴들이 하나의 이미지 속에서 잘 조율된 운동처럼 변주되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잠재적 시간의 추상성을 반추케하는 작업이다.

홍승혜의 투(2)채널 플래시 애니메이션(1분43초)은 이번 ‘미디어시티서울’ 출품작 중 가장 군더더기 없고, 가장 세련된 작품이다. 작품 제목 ‘더 센티멘탈8_보족적 인스톨레이션’은 더없이 난해하지만, 전시장 바닥과 벽에 번갈아 투사되는 기하학적 도형의 움직임을 센티멘탈한 음악과 함께 즐기면 된다. 마침 예배당 의자처럼 만들어진 의자도 준비돼 있다. 흑백으로 도치된 두개 채널에서 순차적으로 구동되는 영상은 이미지와 음악이 어긋나면서 미묘한 불협화음을 일으킨다. 이는 곧 ‘우리네 인간의 엇갈리는 삶’을 은유하는 듯하다.


흰색과 빨간색의 발광다이오드(LED)볼이 컴퓨터 신호에 따라 8자 형상으로 지어진 5m 높이의 기다란 트랙을 순환하는 다이토 마나베-모토이 이시바시(일본)의 ‘입자들’이란 설치 작품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어둠 속에서 허공을 빙빙 도는 LED볼은 우주 속 행성의 움직임을 보는 듯하다.

서울시민에게 ’당신은 행복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조합해 그때 그때 다른 표정의 얼굴을 스크린에 투사하고 있는 이준&김경미의 작업도 눈길을 끈다.

1층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틸 노박의 작품 ‘원심력 체험’은 기이하다. 놀이공원에서 언제든 만날 수 있는 각종 놀이기구들을 디지털 테크놀로지로 엉뚱하게 변형시켜, 현실로부터 잠시 떠나 신비로운 유영을 해보게 한다. 7개의 비디오 클립 및 드로잉으로 이뤄진 이 작업은, 장난감처럼 장식된 거대 로봇공학적 기계들이 중력에 반하는 경험을 만들어낸다. 

작가는 단순한 아마추어용 카메라로 녹화한 영상을 디지털 기술로써 조작하고, 증강했다. 특이한 것은 각각의 영상에 너무나 정교한, 그러나 허구 그 자체인 기계공학적 도면들을 짝을 이뤄 곁들였다는 점이다. 


이밖에 독일 작가 니나 피셔-마로안 엘 사니가 일본 대지진 후 일본인의 일상을 차분한 톤으로 담은 영상, 현대음악과 시각예술을 넘나들며 혁신적 미디어아트를 선보여온 료지 이케다의 작품 ‘data.matrix[nº1-10]’도 놓쳐선 안될 작품이다.

이처럼 이번 비엔날레는 소통과 표현이 날로 가속화되는 작금의 시대에서 새로운 유형의 공동체와 네트워크를 보여준다. 동시에 첨단기술의 비가시성으로 인해 기술의 표면밖에 감지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불안한 내면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번 비엔날레의 총감독인 유진상 교수(계원예술대)는 “미디어는 날로 신속하고 강력하게 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시를 통해 실시간으로 순간마다 재구성되는 미디어환경 속에서 미디어아트의 현재와 미래 비전을 두루 살펴봤다”고 밝혔다. 

예술과 산업, 예술과 과학이 조우함으로써 일상 속으로 더욱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미디어아트의 다채로운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미디어시티서울2012’는 오는 11월 4일까지 계속된다. 사진제공=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 무료관람.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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