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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형석의 상상력 사전> 질 수밖에 없는 도박…시험하지 말지어다, 당신의 사랑을
영화속 사랑과 도박의 이중주
사랑의 열병 앓을 때 나오는
신경전달물질 도파민·세로토닌
도박에 빠졌을 때와 똑같이 작용

사랑게임 그린 소설 ‘위험한 관계’
동서양 넘나들며 수차례 영화화
이번엔 1930년대 상하이가 배경


사랑의 도박일까, 도박의 사랑일까.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 위험한 내기에 빠져든 걸까, 도박을 좋아해서 사랑을 ‘판돈’으로 걸었을까? “내가 알코올 중독이 돼서 아내가 떠났는지, 아내가 떠나서 알콜중독에 빠졌는지 모르겠다”며 병나발을 불던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 속 니콜라스 케이지의 말처럼 선후가 묘연하다. 사랑이 먼저일까, 도박이 먼저일까?

국내에는 공연 실황 영화로 먼저 선보인 ‘오페라의 유령2: 러브 네버 다이’에서 재미있는 장면 중 하나가 두 남자 팬텀과 라울이 크리스틴의 ‘사랑’을 놓고 내기를 거는 대목이다. 오페라 가수 크리스틴에게 음악 천재인 팬텀은 예술적 영감이자 열정이며 뜨겁게 불타는 사랑이다. 반면 귀족 청년이었던 라울은 크리스틴에게 남편이자 현실이며 안정감을 주는 사랑이다. 팬텀은 다시 크리스틴에게 무대에 서 줄 것을 요청하고, 라울은 이를 막으려고 한다. 크리스틴도 모르게 두 남자가 벌이는 내기는 단순하다. 크리스틴이 노래를 부르면 팬텀이 이긴 것이고, 무대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라울이 승리한 것이다. 전편에서 전도유망한 오페라 제작자였던 라울은 공교롭게 도박에 빠져 거액의 빚을 지고 있던 상황이었다. 라울과 팬텀은 내기를 사랑한 걸까, 크리스틴을 사랑한 걸까?


사랑과 도박의 이중주를 멋들어지게 그려낸 작품으로는 프랑스 영화 ‘러브 미 이프 유 데어’를 빠뜨릴 수 없다. 어린 시절 악동으로 만난 두 남녀의 평생에 걸친 ‘내기’를 그렸다. 두 남녀는 여덟 살 때는 운전기사 없이 스쿨버스 출발시키기, 교장선생님 앞에서 오줌싸기를 두고 내기를 걸었다. 열일곱이 되어서는 속옷만 입고 과제 발표하기, 체육교사 뺨 때리기, 킹(퀸)카 정복하기를 서로 주고받았다. 싸이도 아니면서 이들은 결국 갈 데까지 간다. 결혼과 성공, 사랑과 우정마저 내기의 ‘판돈’으로 걸길 마다하지 않았던 두 남녀는 마침내 죽음과 시간에 도전한다. 신과의 한 판 승부인 셈이다. ‘애들 장난’이었던 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러브 미 이프 유 데어’의 원래 프랑스어 제목은 ‘Jeux d’enfants’, ‘애들 장난’이라는 뜻이다.

‘사랑의 게임’에 관한한 독보적인 바이블은 1782년 피에르 쇼데를로 드 라클로의 프랑스 소설 ‘위험한 관계’다. 당시 10여명의 파리 사교계 사람들 사이에 오고간 175통의 편지를 엮어서 얽히고설킨 관계를 보여주는 서간소설로 발몽 자작과 메르퇴유 후작 부인이 중심 인물이다. 잘생기고 부유하며 지적이고 유머러스한 발몽은 상류층 여인들을 농락하는 걸 유일한 낙으로 삼고 있는 인물이며, 메르퇴유는 겉으로 신분에 맞는 기품을 지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성적 방종과 악마적인 유희에 빠진 여인이다. 메르퇴유는 발몽을 부추겨 무수한 여인들을 죽음과 절망 속으로 무너뜨려간다. 하지만 이들의 도박은 결국 파멸로 끝나고 만다.

이 소설은 몇 차례에 걸쳐 영화화됐다. 동명 영화로는 로저 바딤 감독, 잔 모로, 제라르 필립 주연의 프랑스영화와 스티븐 프리어스 감독, 글렌 클로스, 존 말코비치, 미셸 파이퍼 주연의 미국 영화가 유명하다. 밀로스 포먼 감독, 아네트 베닝, 콜린 퍼스 주연의 영화는 소설의 남자 주인공 이름을 제목으로 내세운 ‘발몽’이었으며, 현대 젊은이들의 이야기로 각색한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이라는 작품도 있었다. 한국영화로는 이미숙, 배용준, 전도연 주연의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가 이 소설을 원작으로 했으며, 배경을 조선시대로 옮겨왔다. 오는 11일 개봉하는 중국영화 ‘위험한 관계’는 소설을 원작으로 한 또 다른 작품으로 허진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장동건과 장바이쯔, 장쯔이가 주연을 맡았다. 정치적, 역사적 격변기였으며 상류사회가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도덕과 풍속이 급속도로 개방적으로 변하던 1930년대 상하이를 배경으로 위험한 사랑의 도박이 펼쳐진다. 


다시, 사랑이 먼저일까 도박이 먼저일까. 뇌를 연구하는 생물학자들에 따르면 사랑은 남성적인 매력의 근원인 테스토스테론과 여성 호르몬 에스트로겐의 화학작용으로 만들어진 ‘끌림’ 단계가 지나면 본격적인 ‘열병과 중독’의 시기가 시작된다. 이 때에 뇌에서 가장 중요한 작용을 하는 신경전달물질이 노르에피네프린, 세로토닌, 도파민이다. 이중 도파민과 세로토닌은 도박이나 마약 중독에도 관여된다. 결국 사랑에는 도박과 중독의 속성이 있다는 것일까.

그러나 저러나 내기 당구에서 최후의 승자는 선수가 아니라 당구장 주인이라는 말이 있듯, ‘러브게임’을 그린 영화들은 하나같이 사랑이란 모두가 패자인 도박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그러니 시험하지 말지어다. 당신의 사랑을.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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