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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재곤의 스포츠 오딧세이> ‘피터 노먼’이 남겨둔 시상대 빈자리
스포츠 사회학자 리처드 줄리아노티의 지적처럼 과거 유럽 축구지도자들의 인종 편견은 대단했다. 백인선수는 우월하지만 흑인선수는 열등하다로 귀결됐다. 골키퍼 스위퍼 센터포드 미드필더는 지혜롭고 책임감이 강하다고 여긴 백인이 독차지하고, 지능이 떨어지지만 스피드와 유연성이 좋다는 흑인에게는 윙의 자리만 주어졌다. 축구 안에 사회계급이 고착되었으며 지역과 종교와 인종 간 날 선 갈등은 사회통합의 저해요소였다.

흑백간의 반목과 대립의 악순환이 이어지자 영국은 1991년 ‘축구폭력법’을 제정하고 단속에 나섰다. 선수들도 팬과 함께 1993년 ‘축구에서 인종차별을 금지하자(Let‘s Kick Racism Out of Football)’는 캠페인을 전개했다. 이웃 독일도 ‘외국인이 없는 독일은 검은 건반이 없는 피아노다’라는 배너를 경기장에 내걸고 자정 노력을 함께 했다. 아쉽게도 오랜 세월동안 내재되고 학습된 우월감은 극단의 순간 아낌없이 분출되곤 했다.

지난 시즌 수아레스(리버풀)가 에브라(맨유)에게 ‘네그로스(negros·흑인)’라는 인종차별을 의미하는 언사와 함께 악수를 청하는 에브라의 손을 뿌리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해서 중징계를 받았다. 존 테리(첼시)도 안톤 퍼디낸드(QPR)에게 인종을 들먹이는 욕설을 했다는 의혹과 함께 악수를 거부당했다. 이들은 인종차별주의자의 속내를 확연히 드러냈으며 개인 소양의 한계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이정도 되면 축구장에서 퇴출시켜야 마땅하지 않은가. 누가 그들을 용인하고 있는가?

얼마 전 ‘피터 노먼(1942~2006)’의 사연을 듣고 숙연해졌다. 1968년 멕시코올림픽 남자 200m 결승에서 호주의 피터 노먼은 은메달을 차지했다. 금, 동메달은 미국 국적의 흑인 두 명에게 돌아갔다. 시상식전 미국의 흑인 인권상황을 전해들은 피터 노먼은 시상대에서 그들의 ‘블랙 파워 살루트’ 인권운동에 기꺼이 동참했다. 항거의 표시로 ‘검은 장갑’을 나눠 끼라는 아이디어까지 제공하면서 위험을 담대하게 감내했다. 당시 호주는 철저한 백호주의 사회였다. 이 일로 노먼은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멸시와 천대를 끊임없이 받아야 했다.

미국 육상협회가 그들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동상을 제막하려 했으나 그는 끝까지 자신은 빼고 흑인 두 명의 모습만 세우라며 자신은 빈자리로 남아 있기를 바랐다. 그는 영원한 자유인이었다. 명예나 부(富)보다 신념을 앞세운 그를 우리는 너무도 오랜 세월 몰랐었다. 그 빈자리는 숭고한 인류애의 표석인 것을. 언젠가 그의 무덤을 찾아 목련꽃 한 송이를 헌화하고 싶다.

칼럼니스트/aricom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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