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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형석의 상상력 사전> 총 대신 악기 들고…이념의 벽 넘은 ‘기적의 하모니’
음악의 힘
살육·학살·전쟁·테러로 얼룩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청년들
오케스트라 무대서 화합의 장

대립관계 놓인 서로 다른 ‘타자’
음악 통해 진정한 소통 보여줘


“다니엘과 저는 우리가 태어난 고국의 역사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다니엘은 팔레스타인인과는 분명히 다른 견해를 가지고 역사를 조망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서로 다른 역사관을 하나로 뭉뚱그리지 않고 서로 다른 상태로 유지하는 것은 분명 가치있는 일입니다. 나는 서로 다른 견해에서 오는 긴장이 오히려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에드워드 W. 사이드)

“내가 놀라웠던 것은 우리가 ‘타자’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청년들은 시리아의 다마스커스와 요르단의 암만, 그리고 이집트의 카이로에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연주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시리아에서 온 소년들 가운데 하나는 전에 이스라엘 사람을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에게 이스라엘 사람은 자기 나라의 운명은 물론이고 나아가 아랍세계 전체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 나쁜 본보기를 대변하는 사람일 뿐이었어요. 그런데 바로 이 소년이 이스라엘 첼리스트와 함께 한무대에 서게 된 것이지요. 그들은 똑같은 강약으로, 똑같은 주법으로, 똑같은 음으로, 똑같은 곡을 연주했습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무언가를 함께했던 것이지요. 이렇게 간단한 것입니다.”(다니엘 바렌보임, 이상 대담집 ‘평행과 역설’ 중)

1990년대 초 영국 런던의 한 호텔 로비에서 한 아랍인과 유대인이 마주쳤다. 팔레스타인에서 한 사람은 아랍인의 피를 받고 태어났고, 또 한 사람은 유대인 집안의 후손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그들에겐 서로를 겨눈 총과 폭탄 대신 음악이라는 언어가 있었다.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저서와 개념으로 잘 알려진 팔레스타인 출신의 세계적인 석학 에드워드 W.사이드와 시카고 심포니 및 베를린필하모닉오케스트라 등을 이끌며 현존 최고의 지휘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다니엘 바렌보임이 그 주인공이었다. 

팔레스타인 출신 요르단 청년이 피아노를 치고 이스라엘의 젊은 연주자가 첼로를 켜며, 레바논의 바이올리니스트가 화음을 맞추고. 영화‘ 다니엘 바렌보임과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는 음악을 통해 타자와의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지적, 음악적 교류를 이어가던 두 사람은 1999년 독일 바이마르에서 열렸던 괴테 탄생 250주년 기념 행사에서 대담한 실험을 감행한다. 이스라엘과 시리아ㆍ요르단ㆍ이집트ㆍ레바논 등의 청년음악가들을 초청해 연주회를 갖는 것이었다. 세계적인 이목 속에 큰 성공을 거둔 ‘바이마르 워크숍’은 미국과 유럽을 거쳐 마침내 비극의 땅 팔레스타인까지 들어간다. 이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가 ‘다니엘 바렌보임과 서동시집 오케스트라’(감독 파울 슈마츠니, 6일 개봉)이다. ‘서동시집(West-Eastern Diva)’은 독일의 문호 괴테가 젊은 시절 쓴 시집 제목으로 ‘동서양의 시를 모은 작품’이라는 뜻이다. 에드워드 W. 사이드는 다니엘 바렌보임과의 대담집 ‘평행과 역설’에서 이렇게 떠올린다.

“이슬람에 대한 열정을 바탕으로 일련의 환상적인 시들을 쓴 괴테의 정신에 입각해서 바이마르에서 이 사람들을 한데 묶어 오케스트라를 연주하도록 하면 어떤 효과가 있을까를 살펴보자는 것이 처음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게 팔레스타인 출신 요르단 청년이 피아노를 치고 이스라엘의 젊은 연주자가 첼로를 켜며, 레바논의 바이올리니스트가 화음을 맞추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살육과 학살, 전쟁과 테러로 얼룩진 역사에 일으킨 음악의 기적이자 정치의 기적, 인류사의 기적이 단신의 지휘자와 제3세계 출신의 학자, 그리고 여리고 순수한 영혼의 젊은 연주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거슬러 올라가 1975년 베네수엘라의 경제학자이자 정치가였던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와 동료들은 어느 허름한 차고에서 전과 5범 소년을 포함한 11명의 아이들을 모아 음악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미약했던 시작은 베네수엘라의 젊은이들에게 총 대신 악기를, 갱단 대신 악단을, 살인 대신 감동이라는 무기를 주었다. 음악이 베네수엘라에서 일으킨 거대한 혁명은 다큐멘터리영화 ‘기적의 오케스트라-엘 시스테마’로 기록됐다. 


‘평행과 역설’에서 다니엘 바렌보임은 이렇게 말한다.

“한편으로 음악은 삶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면서, 다른 한편으로 어떤 분야보다도 훨씬 더 효과적으로 삶을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음악은 이렇게 말하지요. ‘이봐요, 이것이 바로 인간의 삶입니다’.”

그리고 에드워드 W.사이드는 서동시집 오케스트라에 영감을 준 괴테를 통해 예술의 궁극적인 지향을 전한다.

“괴테에 대한, 그리고 바이마르에서 우리가 경험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예술이, 특히 괴테에게 ‘타자’를 향해 가는 항해라는 것입니다.”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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