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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새로운 예술의 시작’ 꿈꾸던 국립미술관.. 그러나
[헤럴드경제= 이영란 선임기자]대낮 광화문 일대를 검은 연기로 뒤덮었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화재 현장은 13일 오후 불길이 잡힌 후로도 매캐한 연기로 가득했다. 시민들은 목을 조이듯 파고드는 기분 나쁜 연기를 손수건으로 막아가며 종종걸을 쳤다. 공사현장에 세워진 거대한 흰 가림막은 잿빛으로 얼룩져 참혹했던 화마의 순간을 웅변하고 있었다.

13일 오전 경복궁 바로 건너편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공사현장 화재는 우리의 아픈 기억을 건드렸다. 국보 1호 숭례문이 불에 탔던 ‘트라우마’ 탓에 시민들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평소에도 극심한 교통체증을 빚던 삼청동 길은 때아닌 화재로 아수라장이 됐다.

이번 화재 사고는 인재(人災)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완공을 서두른 정황이 여러 군데에서 포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당초 서울관 계획이 발표된 것은 지난 2009년 1월 15일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기무사 부지를 미술계의 오랜 숙원인 현대미술관으로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같은 날 오후 유인촌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기무사 내 10개 건물을 리모델링해 서울관을 2012년께 완공하겠다”고 밝혔다. OECD국가 중 도심에 제대로 된 현대미술관이 없는 나라는 한국 뿐이기에 문화계는 이 프로젝트를 크게 반겼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급히 먹는 밥은 체할 수 밖에 없다. 

사진=이상섭 기자/batong@heraldcorp.com


건립계획이 발표되자 거의 속사포처럼 설계당선작이 발표되고, 20개월 만에 ‘한국의 얼굴’이 될 새 미술관을 완공한다는 일정이 나오자 ‘너무 촉박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많았다. 총사업비 2460억원, 시공비 1039억원을 투입해 연면적 5만2627㎡(1만5920평)의 매머드한 건물을 짓는데 말이다.

더구나 미술관은 한나라의 문화적 수준을 보여주는 척도인만큼 천천히 공들여 지어야 할 ‘특별한 건물’이다. 현대의 미술관은 단지 미술관만이 아니라 아카이브 야외데크 극장 등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으로써 일반 사무실과는 격이 달라야 하는 것이다.

건립을 발표한 이명박 대통령은 착공식만 하겠다고 했으나 아랫사람들이 무리를 하며 ‘임기 내 완공’을 독려했다는 비판 또한 파다하다. 이에 대해 서울관 건립담당 관계자는 ‘공기는 적절했다’고 맞서고 있다. 사고 직후 문화부는 중앙사고수습지원본부를 서둘러 설치했다. 정밀 안전진단을 거쳐 공사 연기여부와 개관일정 등을 판단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화재 원인을 규명하고, 일정을 재점검하는 것 못지않게 꼭 필요한 것은 문화예술기관을 건립한다면서 가장 비문화적인 수순을 밟았던 건 아닌지 찬찬히 살펴봐야 한다는 점이다. 

‘새로운 예술의 시작’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런던, 뉴욕처럼 도심에 멋드러진 현대미술관을 만들려고 했던 국립미술관은 이번 화재로 건립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따라서 이제라도 신중할 필요가 있다. 국민들은 급하게 만든 미술관 보다, 제대로 만든 미술관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정성껏 만든 미술관에서 공들여 큐레이팅한 전시를 감상하고 싶은 것이다.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 한 이들을 위해서라도 미술관은 차제에 문화예술을 중심에 놓고 난제를 풀어가야 할 것이다. 

/yrlee@heraldcorp.com 사진=이상섭 기자/bat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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