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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현정, “표정 가증스럽게 보일까 걱정…이번 영화는 제 2의 성인식”
[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미녀와 야수 커플이요? 다른 여자들은 모르겠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완전히 가능하다고 봐요. 정말로 정말로 외모는, 진짜, 개들에게나 줘버리라고 하세요. (외모는) 진짜 지루한 게 될 수도 있어요. 제가 미스코리아(출신)라서 이런 얘기하는 거 그렇지만, 살아보니 안(내면)의 내용이 중요한 거지…. 여성들이여! 정신차리세요!”

고현정(41)이 농담 섞어 말했다. 그녀는 타이틀롤을 맡은 영화 ‘미쓰고’에서 상대역 유해진과 서로 애틋한 연정을 나눈다. 극중 고현정은 극심한 대인기피증과 공황 장애에 시달리는 여인 ‘천수로’를 연기한다. 우연히 거액의 마역 거래에 휘말려 500억원의 돈가방을 나르게 되고 앙숙인 두 범죄조직과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된다.

“언제 이 작품 아니면 바스라질 듯한 연약한 역할을 해 볼 수 있을까 생각했죠. 그런데 이미 많은 분들에게 인식돼 있는 내 모습이 있으니까, 가증스러워 보일까봐, 설득력이 떨어질까봐 고민을 많이 했어요. 치기처럼 보일까봐 걱정됐죠. ”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고현정을 만났다. 솔직하고 파격적인 발언이 많았던 컴백 직후나 영화 ‘여배우들’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선뜻 선뜻 질문을 받아쳤던 예전과 달리 말을 끊고 곰곰히 생각에 잠기기도 했고, 뜸을 들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기도 했다.

“센 역할을 할 때는 제가 센 사람인 줄 알았고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 역을 할 때에는 (기분은) 천하도 호령하겠더라구요. 이번 천수로 역을 맡으니까 집에 혼자 있을 때도 여성스러운 몸짓이 나오는 것에요. 여러가지 표정을 지으면서도 혹시 공황장애를 앓고 계신 분들에 대한 편견을 심어주진 않을까 조심스러웠어요.”


스타는 이른바 ‘픽쳐 퍼스낼러티’라는 작품으로 구축된 이미지와 한 개인으로서 카메라 바깥의 삶과 사생활을 통해 형성된 또 다른 상(常)이 중첩된 존재다. 그 사이에 배우로서 고현정의 고민이 있다.

“이번 영화 마지막에는 제가 맡은 인물이 카리스마있게 변화하는 장면이있는데 제 발성과 몸근육, 얼굴근육에서 연습하지 않은 티가 나는 거죠. 천수로가 변해서 강해진 소리(음색과 억양)가 나와야 하는 건데, 제가 그동안 연기했던 인물의 발성이 묻어나온가 하는 것들이죠. 제가 게을렀다는 증거죠. 반성이 되요. 메소드니 하는 연기의 기술적인 부분들이 다양하게 있지만 과연 대한민국에서 연기를 하는 저에게 대중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라는 점이 사실 피해갈 수 없는 문제죠. 스타성을 포기하고 기능적인 훈련에만 치우쳐서도 대중의 기대를 저버릴 수 있다는 고민도 들어요.”


고현정은 이번 작품을 “성인식같은 계기”라고 했다. 이제 자신의 과거 삶을 연상케 하는 설정의 작품도 할 수 있겠다고 말했다.

“제가 지금까지 제의받은 작품을 보면 모정에 호소한다든가 이혼했다던가, 결혼 후 10년간 대중을 떠나있었다든가 제 실제 삶이 소재로 들어가 있지 않은 경우가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왠지 그런 작품을 하면 묻어가는 듯하고 반칙하는 것 같아 하지 않았죠. 이제는 기회를 준다면 그런 작품에 마음이 훅 동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해요.”


‘드세고 배포있고 강한 여자’. 다른 이들에게 비친 자신의 모습을 이야기하다가 고현정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목에 메었다. “주책바가지, 배우 아니랄까봐”라며 겸연쩍음을 달랬다.

“제가 서른 두 셋에 이혼했죠. 사실 무척 어리다고 볼 수 있는 때인데, 제 나이를 생각하지 않고 주위에선 항상 어른 대접해주시고, 강자다, 되게 많이 가졌다고 생각들 하시죠. 제가 ‘아니다’라고 하면 또 다른 오해의 여지가 생기니까 ‘그래, 나는 강자야’라고 (오해를) 떠맡고 가는 게 쉬울 때도 있어요. 어찌됐든 물리적으로 한 조직을 상대로 나혼자서 뭘 하고 나오는 상태로는 강자일 수 없는데…”

그렇게 말문이 막혀 한동안 카페의 천장만 바라봤다.

고현정은 ‘미쓰 고’ 촬영을 위해 8개월간이나 부산에 머물렀다. 그러면서 아픈 기억 하나를 덜어냈다. 

여름은 무르익었고, 여배우는 한결 성숙했다. 영화 ‘미쓰 고’의 고현정이 스타로서, 배우로서 허심탄회한 소회와 소망을 털어놓았다.

“해운대는 어떤 기억때문에 다시는 밟지 않으리라 마음 먹었던 곳이었어요. 그런데 해운대를 다시 걸으면서 트라우마를 깼어요. ”

관객에게도 영화는 위안이지만, 배우로서도 연기는 하나의 정신적 치유다. 고현정은 “시나리오를 받으면 배우는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고, 그것부터가 치유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고현정은 “아직까지도 탤런트, 방송인이지 배우 소리를 못 듣는다”며 “마지막에는 어떤 수식도 불필요한, 그냥 배우라는 소리를 듣고 싶다, 그게 소망이자 의무”라고 덧붙였다.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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