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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통의 거리 인사동에 더이상 전통은 없다?
중저가 화장품 브랜드·커피숍 등
각종 프랜차이즈 매장들이 잠식
한식당·공예품점은 뒷길로…

한국 고유문화 찾아 온 외국인들
“미샤도 전통상점인가요?
명동·동대문서 이미 다 본건데…”


# 대로 양 옆에 줄지어 자리 잡은 화장품 매장. 산뜻한 유니폼 차림으로 매장 앞에 나온 직원은 연신 유창한 일본어와 중국어로 손님을 끌어모았다. 그러나 정작 외국인들은 어색한 표정으로 화장품 매장을 지나쳐 대로변을 두리번거리다 결국 샌드위치 가게로 들어갔다. 가게 안에는 이미 많은 외국인들이 빵으로 요기를 하고 있었다. 번화가라면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풍경이다. 단, 이 같은 모습에 만족하려면 이곳이 전통이 살아 숨쉬는 거리, 서울 인사동이라는 기대감을 제외해야 한다.

화장품과 커피전문점 등 각종 프랜차이즈 매장이 ‘전통의 거리’ 인사동을 잠식했다.

일요일인 지난 17일 헤럴드경제 취재진이 찾은 인사동의 모습은 거리의 절반을 프랜차이즈 매장에 내어준 상태였다. 지하철 1호선 종각역 방면부터 시작하는 초입에는 토니모리, 스킨푸드, 이니스프리 등 10개의 화장품 매장들이 줄지어 있었다. 웬만한 브랜드는 모두 자리 잡은 모습이 시중 가두점 화장품 브랜드를 전부 모아놓은 듯했다. 간혹 화장품 매장 중간에 파리크라상 등 커피전문점이나 베이커리 카페가 끼어 있기도 했다.

인사동이라면 자연히 머릿속에 떠올릴 법한 전통 찻집, 전통 공예품 판매점 등은 거리의 절반을 훨씬 지난 뒤쪽에서나 볼 수 있었다. 그나마 방문객의 발길이 닿기 쉬운 1층은 프랜차이즈 매장에 내주고, 2층으로 밀려난 전통 찻집들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화장품 매장의 인사동 진출은 한국 고유의 문화를 찾아 인사동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노린 포석이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뷰티 한류에 열광하면서 중저가 가두점 화장품 브랜드의 ‘큰손’으로 떠오르자, 이들의 발길이 닿는 곳에 매장을 집중적으로 내게 된 것이다.

인사동 거리 곳곳에 자리 잡은 화장품 매장과 베이커리, 카페 등 프랜차이즈 매장들. 외국인들은 현대적인 모습보다 한국 전통문화를 엿볼 수 있는 기념품 등에 더 관심을 보인다.                                  사진=서지혜 기자/gyelove@heralmd.com

물고기가 모이는 곳에 그물을 치듯, 잠재 고객이 오가는 곳에 매장을 낸다는 기업의 논리는 명확했다. 그러나 정작 외국인 관광객들은 인사동 내 화장품 매장 안에서 그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한창 손님이 많을 일요일 오후였지만 인사동 내 화장품 매장 안에는 두세 명 정도의 손님만이 들었다. 그것도 외국인이 아닌, 국내 소비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몇 걸음만 더 가면 볼 수 있는 종로의 화장품 매장과 비교해봐도 손님이 확연히 적었다.

인사동에서 만난 외국인들은 화장품 매장은 명동이나 동대문 등에서 이미 방문했기 때문에 굳이 인사동에서 화장품 매장을 들를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입을 모았다. 일본인 L(23) 씨는 “어제 명동 관광을 할 때 이미 미샤나 에뛰드하우스 같은 화장품 가게는 다 구경했다”며 “인사동에서는 한국적 특색이 있는 물건을 구입하고 싶어서 전통 공예품 가게를 찾아다니고 있다”고 전했다.

외국인의 눈에도 전통의 거리에 프랜차이즈 매장이 가득 들어찬 것이 이상하게 비춰졌다. 일본에서 온 H(27ㆍ여) 씨는 한글 간판을 내건 화장품 매장을 보고 “미샤도 한국 전통 상점이냐”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H 씨는 “전통문화 거리라고 알려진 인사동에도 이런 화장품 가게가 많은 것을 보고, 처음엔 미샤도 한국 전통문화 중 하나인가 보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한국 고유의 문화를 보고 싶은 외국인들은 거리를 헤매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간단한 먹거리조차 길 뒤쪽으로 밀려난 인사동에서 외국인들이 발품을 팔며 한국적인 문화를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일본인 N(65ㆍ여) 씨는 “지도를 보고도 한참 찾아야만 한국 음식점을 볼 수 있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여의도에 3년째 거주하며 금융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영국인 J(45ㆍ여) 씨는 “인사동에 화장품 가게나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많아지면서 점점 한국적인 모습을 잃어가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칠레에서 온 R(35) 씨는 “한국 음식을 먹고 싶었지만 한국 음식점을 찾기가 어려워 결국 샌드위치를 사 먹었다”며 “눈에 잘 띄는 곳에 한국적인 가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도현정ㆍ서지혜 기자/kate01@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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