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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셀의 문경원,전준호 “이 시대,예술은 도대체 뭐니”
< 이영란 선임기자의 아트&아트= 카셀 ‘도쿠멘타13’ 현장탐방기① >

[헤럴드경제=이영란 기자]인구 20만명도 채 안되는 독일 중부의 소도시 카셀. 과거 군수산업으로 영화를 누렸던 이 도시는 요즘엔 쇠락의 기운이 완연하다. 별 다섯개짜리 하얏트나 힐튼 같은 특급호텔 하나 없고, 그 흔한 스타벅스도 만나기 힘들다. 그러나 카셀은 5년마다 세계현대미술의 ‘심장’으로 변한다.

이는 전세계적으로 가장 권위있고, 가장 진지하며, 가장 혁신적인 미술제인 ‘카셀 도쿠멘타(Kassel dOCUMENTA)’가 열리기 때문이다. 올해도 이 미술제를 보기 위해 뉴욕 현대미술관(MoMA), 런던 테이트 모던, 파리 퐁피두센터 등 세계 3대 미술관의 관장은 물론, 차기 베니스비엔날레 총감독 등 내로라하는 미술계 거물들이 총집결했다. 맑은 하늘에서 느닷없이 소나기가 쏟아지곤 해 6월에도 한기가 느껴지는 소도시 카셀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문경원, 전준호 작가의 작품전 현장을 찾아가봤다. 


▶문경원, 전준호 카셀에서 신비로운 영화를 상영하다= 세계적으로 국제비엔날레만 해도 200개가 넘고, 이런저런 국제미술제도 100여개가 넘지만 카셀 도쿠멘타는 유난히 진입장벽이 높은 미술제다. 한국작가는 지난 1992년 육근병(55,일본 동북예술대 교수)에 이어 꼭 20년 만에야 초청장을 받았다.

5년마다 열리는 탓도 있지만 그만큼 독창적이면서도 미래를 성찰한 ‘차별화된 작업’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올해로 13회를 맞는 카셀 도쿠멘타에 한국의 동갑내기 작가 문경원(43) 전준호(43) 팀이 화제작을 들고 입성했다.

문경원-전준호 작가는 카셀 도쿠멘타의 메인전시장인 도쿠멘타 할레에서 두편의 영화를 연속적으로 상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건축 패션 과학 분야의 국내외 전문가들과 협업 하에 완성한 설치작품과 각계 인사와의 인터뷰 등을 집적한 책 등 다각적인 프로젝트를 시현했다. 

프로젝트의 타이틀은 ‘뉴스 프롬 노웨어(News from nowhere)’. 오늘날 과연 예술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그 사회적 기능과 역할, 그리고 미래를 천착해본 지극히 방대하고 모험적인 프로젝트다. 타이틀은 19세기 영국의 전방위작가로 100년 후 미래사회로의 여행을 다룬 윌리엄 모리스의 소설에서 따왔다.

문경원, 전준호팀의 메인작업인 영상작품 ‘세상의 저편(EL FIN DEL MUNDO)’ 또한 윌리엄 모리스의 소설처럼 지구 종말을 눈 앞에 둔 시점의 예술가와 그 이후 새롭게 태어난 신인류 예술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 15분짜리 아트필름 두편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이 영상은 지구 환경변화로 생존을 위협받는 이 시대 마지막 예술의 모습과, 새롭게 탄생할 예술을 미묘하게 대비시킨 작품으로 배우 이정재와 임수정이 노개런티로 출연해 화제를 모았던 필름이다.


국내 미술계에서 각기 독립적으로 활동하던 두 작가가, 최근들어 공동노선을 달리게 된 것은 지난 2007년 타이페이비엔날레에 참가하고 돌아오던 비행기에서 나란히 앉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 서로의 작업에 대해 대화를 나두던 두 사람은 지금처럼 모든 게 가파르게 급변하는 사회에서 예술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지 묻기에 이르렀다. 그러며 이같은 질문을 미술 뿐 아니라 시각예술 전반으로 넓혀 보자는데 의기투합했다.

전준호 작가는 “그동안 내 작업에만 몰두하다가, 과연 내가 펼치는 예술이 지금 이 시점에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되묻게 됐다. 예술의 본질을 찾아 타 예술과의 접점을 찾아나서고 싶었는데 너무 방대한 프로젝트라 회의적인 시선이 많았다. 그런데 문경원 작가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됐고 서로 작업을 전개 중이던 지난 2010년, 서울을 찾았던 ‘카셀 도쿠멘타13’의 예술감독 캐롤린 크리스토프-바카르지예브(Carolyn Christov-Bakargiev)가 큰 관심을 보이면서 도쿠멘타에 초대해 작업에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결국 두 사람의 길고 험난했던 장기 프로젝트 ‘News from Nowhere’는 이번 카셀을 통해 최초로 공개됐다. 이 프로젝트는 ‘과연 이 시대 예술의 의미와 역할은 무엇인가’ ‘우리의 발언이 이 시대 속에서 역류하고 있지는 않나’라는 질문 아래 건축가, 디자이너, 패션디자이너, 과학자 등 각 분야 전문가들과 손잡고 작업을 거듭한 끝에 예술의 지향점과 사회 전반을 성찰하며, 다가올 미래를 조망한 ‘News from Nowhere’가 완성된 것.

‘News from Nowhere’는 2개 채널의 영상작품 ‘세상의 저편’과 설치 작품인 ‘Voice of Metanoia(공동의 진술)’, 프로젝트의 전 과정과 각 분야 석학들과의 토론과 인터뷰를 담은 영어판 단행본’ News from Nowhere’의 세파트로 구성됐다. 


이들은 프로젝트의 이론적 얼개를 구축하기 위해 고은 시인, 이창동 감독, 최재천, 정재승 교수 등과 다각도로 대화를 나눴다. 10여명의 각계 전문가와 협력한 설치작업 ‘Voice of Metanoia(공동의 진술)’은 ▷네덜란드의 건축그룹 MVRDV, The Why Factory와 제작한 ‘미래 도시사회’ ▷일본 건축가 이토 도요와 만든 ‘일본 도호쿠지진 이재민을 위한 공동주택’ ▷일본 디자인 엔지니어링그룹 타크람(TAKRAM)과 제작한 ‘수분 공급 인공 장기세트’ ▷한국 패션디자이너 정구호의 ‘미래의 옷’ ▷일본 패션디자이너 츠무라 코스케(이세이 미야케 소속)의 ‘미래의 유니폼’ 등으로 짜여졌다. 또 한국의 안과전문의 정상문, 뇌 과학자 정재승의 자문 아래 문경원, 전준호 작가는 ‘마인드 라이트’라는 미래 조명도 만들었다.

영화는 이를 기반으로 완성됐는데 여러 장르를 넘나든 입체적인 실험과 신선한 내용, 완성도 있는 결과물들이 카셀 도쿠멘타및 비평가그룹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문경원 작가는 “두 사람의 의문에서 출발했던 갖가지 질문을 타분야 전문가들과 공유하는 과정 자체가 큰 보람이었다. 물론 누구도 시도해보지 않았던 타분야와의 협업 프로젝트인데다, 방대하고 예민한 작업을 끝없이 소화해야 해 어려움은 필설로 다 표현하기 힘들지만 작가로써 훌쩍 성장한 느낌이다”고 했다.

전준호 작가 또한 “고은 시인, 이창동 감독, 정재승 교수를 비롯해 교육 정치 과학 문화 종교계 석학들과 가진 컨퍼런스와 토론은 지금의 현실을 돌아보고, 미래를 그려볼 탐구의 장이자 플랫폼으로써 매우 의미있었다. 결국 이를 통해 인류와 예술의 미래 모습을 표현해낼 수 있었다”고 했다.

카셀 도쿠멘타 오픈에 맞춰 두툼한 단행본에 그간의 작업과정과 토론내용을 담아낸 두 작가는 “이 프로젝트는 이제 겨우 1막이 끝난 것”이라며 “인간은 제대로 살고 있는가, 우리의 태도와 행동은 어떻게 달려져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앞으로도 계속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카셀(독일)=글, 사진 이영란 기자/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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