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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걸어서 지구 한바퀴…이해준의 ‘희망가족’> 히말라야 영봉 끼고 돌때마다 풍경은 한대·온대·아열대로…
<4>‘ 지구의 지붕’히말라야를 넘으며
해발 4500~5000m 넘나드는
세계에서 가장 험한 루트

숙소 난방 안돼 떨며 밤샘
물사정 나빠 양치질도 못해

ABC 가는 길위 쏟아지는 별들
내가 별인지 별이 나인지…


[카트만두(네팔)=이해준] 드디어 모험의 시간이 왔다. 티베트 라싸(拉薩·Lasa)에서 출발해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네팔 카트만두로 가는 대장정에 나설 때가 된 것이다.

가족은 모두 건강하다. 2개월여에 걸친 중국 여행에 이어 24시간의 칭창열차, 포탈라 궁을 비롯한 라싸 여행을 ‘무사히’ 마쳤다. 라싸에서는 혹독한 밤 추위로 감기 기운에 시달리고 두통 등 고산병 증세가 나타나기도 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이제 갈수록 험악해지는 지형과 함께 중국 여행도 하이라이트로 치닫고 있다.

라싸~히말라야~카트만두로 이어지는 총 연장 865㎞의 길엔 ‘우정의 고속도로(Friendship Highway)’라는 멋진 이름이 붙어 있다. 하지만 2011년 7월에 완공된 라싸 외곽의 왕복 4차선 도로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1~2차선이라 고속도로라고 부르기 어렵고, 도로 사정도 취약하다. 해발 4500~5000m의 고개를 수없이 넘어야 하고, 협곡을 지나가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을 달리며 가장 웅장하고 황홀한 풍경을 선사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험하고 척박한 루트로 여행자에게 강한 체력을 요구하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길을 이용해 라싸 남부의 주요 도시들을 거쳐 네팔로 가되, 중간에 이 길을 벗어나 험한 비포장 산길을 달려 세계 최고봉 등산의 기점인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ABC)까지 가 히말라야를 최대한 즐기기로 했다. 이를 감안해 일정을 3박4일로 잡았다. 결국 이 일정은 코피까지 쏟는 ‘고행길’이었지만, 힘든 만큼 가슴 뭉클한 환상과 감동을 선사했다.

그동안 우리를 한가족처럼 따뜻하게 대해줬던 티베트 호텔 가족과 뜨거운 작별인사를 나누고 호텔을 나섰다. 첫째 날엔 티베트인들의 신성한 호수인 얌드록초 호수(Yamdrok-Tso Lake)와 간체(江孜ㆍGyantse)를 거쳐 티베트 제2의 도시 시가체(Shigatse)까지 가기로 했다. 직선거리로는 멀지 않지만, 험난한 고개를 여러 개 넘어야 했다.

해발 4488m의 고원 한복판에 자리 잡은 얌드록초 호수로 가는 길엔 4700m의 캉팔라 고개(Gangbala Psaa)가 자리 잡고 있었다. 굽이굽이 끝없이 이어진 고개에 올라가자 앞이 탁 트이면서 짙푸른 하늘과 멀리 설산을 배경으로 큰 호수가 그림처럼 펼쳐졌다. 바다를 볼 수 없는 티베트인들이 ‘하늘 아래 호수’인 얌드록초를 신성시하는 데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들른 작은 오지마을 랑카스에서 우리를 보고 반가워하며 얼굴을 붉히던, 순수하고 소박한 티베트의 어린 학생들, 간체로 가는 도중에 있는 5020m 고개에서 우리 가족이 시짱(西藏ㆍ티베트)TV에 출연한 것 등 잊을 수 없는 일도 많았다. 실제 우리가 방송에 나왔는지 확인하진 못했지만, 오지를 여행하면서 겪은 즐거운 경험이었다.

둘째 날에는 시가체에서 해발 4300m의 라체(拉孜ㆍLhaze)와 오지마을 팅그리(定日ㆍTingri)를 거쳐 에베레스트 산 아래까지 비포장도로로 이동하는 험난한 날이었다. 황량하고 척박한 티베트의 고원과 함께 깎아지르는 듯한 산들이 숨막힐 듯 절경을 이뤘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생명력 역시 끈질겼으며, 그런 만큼 영적인 존재에 대한 갈망도 커보였다.

시가체에서는 티베트불교의 6대 사원인 타시룸포 사원(Tashi-lumpo Monastry)를 돌아봤다. 사원을 돌고 나오자 아침에 한둘 보이던 걸인이 입구에 죽 앉아 있었다. 아주 남루한 이들은 순례자들이 지나칠 때마다 ‘옴마니반메흠’을 외면서 손을 내밀었다. 이런 오지에 왜 저런 사람들이 생겼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왠지 모를 슬픔이 몰려왔다.

티베트 라싸와 네팔 카트만두를 잇는, 지구상 최고 오지의 도로가 마치 히말라야 산맥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다.

뉴팅그리를 지나 히말라야 보호지역으로 접어들자 해가 넘어가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갈 길은 아직 멀었다. 게다가 뉴팅그리 이후부터는 비포장도로였다. 3시간여 동안 털털거리며 달려 밤 10시 가까이 돼서 ABC 인근의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우리가 머문 곳은 에베레스트 아래 작은 마을의 전통가옥을 개조해 만든 여관이었다. 하지만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물 사정이 좋지 않아 세수는 물론, 양치질을 할 수도 없었다. 날은 추운데 난방은 안 되니 소파를 겸해 사용하는 침대에 들어가 잔뜩 웅크리고 자야 했다. 화장실은 재래식인 데다 침실과 떨어져 있어 손전등으로 불을 밝히고 가야 했다.

그런 상태에서 잠이 들었는데, 눈을 떠보니 새벽 5시였다. 아직 밖은 한밤중이다. 베이징 기준 시간이 5시이므로, 티베트의 실제 ‘자연시간’으로 따지면 3시도 안 된, 한밤중이다. 손전등을 비추며 아이들을 깨웠다. 험한 잠자리에 힘든 여정이지만, 군소리 하나 하지 않고 주섬주섬 일어난다. 각자 짐을 챙겨 집채만 한 배낭을 다시 둘러메고 숙소를 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칠흑같이 어두운 하늘에 별들이 쏟아질 듯이 총총히 박혀 있었다. 환상적이었다. 추위에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던 아내와 아이들도 하늘을 보고는 탄성을 지른다. 고원이어서 그런지 별들이 더 가까이 있는 것 같았다.

차는 어제저녁에 달린 것과 같은 비포장도로를 다시 달렸다. 깜깜한 어둠을 2시간 정도 달려 에베레스트에서 가장 가까운 해발 5150m의 롱북 사원(Rongbuk Monastry)에 도착, 뜨거운 물을 받아 중국 컵라면으로 몸과 속을 풀었다.

롱북 사원에서 다시 20분 정도를 더 달려 ABC에 도착했다. ABC는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전진기지 역할을 하는 곳이다. 작은 분지처럼 이뤄진 곳에 산악인과 세르파들을 위한 간이 막사와 화장실, 비상대피소 등이 갖춰져 있었다. 이 분지 한가운데에 있는 등성이로 올라갔다. 특별한 시설은 없지만 에베레스트에서 가장 가까운 전망대다.

그 등성이에 올라가자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하는 고원의 계곡 사이로 해발 8844m의 에베레스트가 영험한 자태를 드러냈다. 중국식으로 말하면 코모랑마 봉(珠穆朗瑪峰ㆍMt. Qomolangma)이었다. 뾰족뾰족한 바위 위로는 만년설이 하얗게 덮여 있었다. 손에 잡힐 듯했다. 티베트인들은 물론 저 산너머 네팔인들이 신성시하는 세계의 지붕이었다.

전망대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20여분을 기다리자 드디어 에베레스트에 해가 비추기 시작했다. 그 영봉을 바라보며 우리 모두 손을 잡고 기원을 했다. ‘우리 가족의 이번 여행이 순탄하게 이뤄지길, 티베트인들이 더 행복한 날이 오길, 모두에게 평화와 행복이 넘치길….’ 찬 바람이 매서웠지만,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여행하는 게 행복했다.

ABC에서 감격스러운 해맞이를 한 다음 광활한 고원의 평원을 4시간 달려 팅그리에 도착했다. 포장도로에 다시 들어온 것이다. 자동차를 보니, 우리가 얼마나 험한 길을 달려왔는지 고운 먼지를 흠뻑 뒤집어쓰고 있었다. 팅그리에서 점심식사를 한 다음 히말라야를 넘는 마지막 환상의 코스로 들어갔다.

히말라야 영봉들을 옆에 끼고 팅그리에서 1시간30분 정도 달려 마지막 고개인 해발 4950m의 통라 고개(Tong-la Pass)를 넘어가자 갑자기 풍경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깊은 협곡에 놓인 길을 한 구비 돌 때마다 한대에서 온대로, 아열대로, 풍경이 확확 달라졌다.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티베트에선 볼 수 없었던 푸른 나무들이 듬성듬성 보이더니 어느새 숲을 이뤘다. 건조하고 차갑던 공기도 달라졌다. 싱그러우면서 따뜻했다. 조금 더 내려오자 중국의 마지막 마을 장무(樟木)가 나타났다. 히말라야를 무사히 넘은 것이다. 모두 흥분했다. 아이들도 신이 났다. 둘째아들 동희는 세수를 하면서 얼마나 심하게 코를 풀었는지 코피를 쏟고 말았지만, 여전히 싱글벙글했다.

마지막 날인 넷째 날엔 오전 일찍 장무(樟木)를 떠나 중국~네팔 국경을 넘었다. 협곡 아래에 놓인 ‘우정의 다리’는 모양은 평범하지만, 큰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다리 가운데 그어진 선이 국경선이었다. 그 선 이쪽에는 중국 군인이, 저쪽에는 네팔 군인이 통행하는 사람들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는 그 선을 넘는 순간, 동작을 일시 정지함으로써 국경 통과를 자축했다. 한쪽 발은 중국 땅에, 다른 한쪽 발은 네팔 땅에 있다는 ‘짜릿한’ 경험의 순간이었다.

따지고 보면 국경선은 자연의 원리와 관계없이 ‘국가’라는 통치 단위가 등장하면서 인위적으로 만들어놓은 ‘경계’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인위적인 경계가 인간의 삶을 지배하면서 지금은 의식의 깊은 곳에 내면화돼 있다. 따라서 그 ‘선’을 직접 밟고 넘어가는 행위는, 국가라는 ‘의식의 경계’를 뛰어넘는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가장 신선한 경험의 하나인 것이다. 육로 여행의 가장 깊은맛 중 하나는 바로 이런 ‘선’과 ‘경계’를 넘나드는 경험이다.

라싸에서 히말라야를 넘어 네팔로 온 3박4일은 우리 가족에게 잊을 수 없는 진한 추억을 남겼다. 티베트와 히말라야의 숨막힐 듯한 풍경을 보는 즐거움은 물론, 힘든 상황에서도 서로 배려하는 여정을 통해 어디서도 느낄 수 없었던 강한 가족애를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의 파란만장했던 중국 여행을 히말라야를 넘으며 마무리한 것은 그야말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자유기고가/hj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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