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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과가 좋으면 거짓말 해도 된다?
‘런치타임 경제학’ 쓴 랜즈버그 교수
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
마이클 샌들 ‘정의란 무엇인가’
공리주의 철학 바탕 대담하게 비판


“전차 1대가 선로를 따라 급속도로 달려가고 있다. 정신 나간 철학자 하나가 선로에 5명을 묶어 놓았다. 당신은 전차 앞에 서 있는 사람 1명만 밀면 전차를 멈추게 할 수 있다. 그 사람을 미는 행위는 도덕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가?” ( ‘경제학자 철학에 답하다’ 중)

‘런치타임 경제학’으로 교양 경제학 시대를 연 스티븐 랜즈버그 미국 로체스터대 교수가 도덕적 딜레마를 설명하는 유명한 ‘전차 딜레마’를 다시 논쟁의 중심에 세웠다. 랜즈버그는 이에 대해 망설임이 없다. 스위치를 움직이고 선로 앞에 선 사람을 미는 것이 도덕적 의무라고 말한다. 설사 다른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도 전차 앞의 사람을 미는 행위는 잘못된 행위라고 여기는 게 일반적인데, 랜즈버그는 이는 시야를 심각하게 왜곡시키는 ‘도덕적 착시 현상’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윤리학의 목적은 바로 그 도덕적 착시를 깨부수는 것이라는 것.

랜즈버그는 ‘경제학자 철학에 답하다’(부키)에서 마음을 어지럽히는 딜레마들을 쾌도난마로 풀어낸다. 도덕의 문제뿐만 아니라 실재와 허구, 믿음의 문제, 불완전한 사고와 지식의 한계, 옳고 그름의 문제 등 주전공인 경제학을 넘어 수학ㆍ물리학ㆍ철학까지 멀리 나아간다. 특히 리처드 도킨스, 마이클 샌델 등 당대 대가들의 오류를 수학적 통찰로 하나하나 지적해 나가는 논리가 대담하고 발칙하다.

랜즈버그의 철학적 바탕은 ‘최대 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공리주의다. 결과로 행동을 판단하는 결과주의 철학이라는 점에서 랜즈버그는 마이클 샌델의 행동 자체의 정당성에 주목하는 의무론적 철학에 맞선다. 랜즈버그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의무론적 철학은 한마디로 모호하다는 입장이다. 도대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정확한 한계 범위란 게 있을 수 있느냐는 말이다.

그가 복잡한 문제를 풀어내는 마스터키로 쓰는 것은 ‘경제학자의 황금률(Economist’s Golden RuleㆍEGR)’. 생산성을 기준으로 삼지만 그 뜻은 좀 넓다. 즉 자신을 비롯한 모두가 부담하는 비용보다 자신을 비롯한 모두가 얻게 될 편익이 크다면 생산적인 행위로 보는 것이다.

EGR를 적용하면 혼란스런 것들이 명쾌해진다. 가령 국내 체류 외국인 범죄자 수가 급증하며 국민혐오증이 커지고 있는 문제의 경우, 반이민론은 설 자리가 없다.

오래전부터 결과론에서 선행을 두고 내세우는 법칙이 있다. 어쩌면 이것이 도덕적 직관을 대부분 아우를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대강 요약하면‘ 내가 숨을 거두기 전의
세상이 내가 처음 태어났을 때보다 더 나빠져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이를 통해 귀중한 시간과 열정을 비생산적으로 쓰지 마라는 추론을 당연히 할 수 있다. (본문 중)

즉 미국의 멕시코 이주민의 가치는 미국인의 5분의 1보다 못할 때에만 이주민의 입국을 반대할 만한 정당한 사유가 된다. 쓰레기 투기는 괜찮은가, 하이브리드 자동차처럼 연료 효율성이 높은 차를 사야 하는가, 기부를 전혀 하지 않아도 될까, 변호사가 돼도 괜찮을까 등 크고 작은 사안들이 EGR에 대입하면 간단하게 답이 나온다.

랜즈버그는 우주와 생명체가 지적 존재에 의해 설계됐다는 지적설계론도 논리적으로 간단히 해결한다. 지적설계론자들의 논리대로 우주가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복잡하므로 지적설계자가 필요하다면 모든 복잡한 것에는 설계자가 있어야 하고 수학은 어떤 생명체보다 복잡한 것이므로 수학 또한 설계자가 있어야 한다는 논리로 귀결되지만 그런 것은 없다. 그런 측면에서 지적설계론자들에 맞서 과도한 검증을 시도한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은 불필요하다는 말이다.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 역시 결과론에 기대면 애매하지 않다. 행위의 결과가 좋으면 거짓말을 해도 괜찮지만, 결과가 나쁘다면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광자가 사람에게 거의 무해하다면 행인의 몸에 광자를 쏘아대도 문제는 없다.

현재 학계에서 첨예하게 논쟁이 오가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를 비롯해 양자 얽힘, 괴델 등을 관통하며 랜즈버그가 말하려는 것은 자신의 갇힌 시선을 열어두고 세상을 보라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추론 능력과 사고습관이 생겨나면 세상을 좀 더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고 복잡하고 혼란스런 세계에서 줏대를 갖고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이다.

그 역시 철학적 고민, 세상의 문제들에 정색하고 답을 내놓으려 쓴 책은 아니다. ‘우리는 수학적 패턴 안에 있다’, ‘파스칼의 도박에서 주장하는 신은 마치 나이지리아 스팸메일 사기단 같은 존재다’, ‘도덕은 진화의 산물이다’, ‘시간과 공간은 우연이다’ 등 물리학ㆍ철학을 넘나들며 펼쳐내는 재치와 유머가 지적 여행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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