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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칸 폐막 그후,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레드카펫의 ‘불편한 진실’
〔칸=이형석 기자〕축제는 저물고 일상의 시간만 남았다. 제 65회 칸국제영화제 폐막 다음날인 28일 아침, 세계적인 스타들이 밟았던 뤼미에르 극장 앞 레드카펫 위엔 아무도 없었다. 쿵쾅거리는 음악과 노천 카페의 손님들, 오고가는 관광객들로 분주했던 해안가도로 크로아젯엔 마릴린먼로의 초상이 담긴 칸 포스터의 깃발과 패션숍의 명품브랜드 로고만 축제의 마지막 잔상을 남기고 있었다. 마침 이날은 프랑스의 공휴일인 오순절. 이방의 방문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지중해의 바닷가엔 화창한 햇살을 즐기려는 칸 시(市) 인근의 가족단위 나들이객만 한가하고 여유로운 휴일의 일상적 풍경을 펼치고 있었다.

오스트리아의 거장 미카엘 하네케(‘아무르’)의 황금종려상 수상과 루마니아의 스타감독 크리스티안 문주 ‘언덕 너머’ (Beyond the hills)의 2관왕으로 칸영화제는 막을 내렸지만, 레드카펫엔 ‘불편한 진실’은 남았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세계 최고 영화축제에 숨겨진 비밀은 무엇이 있을까. 

▶레드카펫 위의 스타는 7번 손을 올린다…전쟁같은 레드카펫

“주연배우들에 앞서 바로 제가 입장해야 됐거든요. 그런데 어떤 외국의 영화제작자 분이 중간에 끼어들어 저를 확 밀치더라구요. 중간에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해야 하는데, 밀칠 수도 없고 난감한 상황이었어요. 그래도 끝까지 버텼습니다. 레드카펫이 전쟁이었죠.”

칸국제영화제 공식파트너 기업인 화장품 브랜드 로레알파리의 모델 자격으로 지난 25일 경쟁부문 초청작 ‘코스모폴리스’의 레드카펫을 밟아 카메라 세례를 받은 김윤진은 칸에서 기자를 만나 이렇게 토로했다. 칸영화제 본부인 팔레 드 페스티벌의 주 극장이자 경쟁부문 상영관인 그랑 뤼미에르 시어터 앞 레드카펫은 30m. 세계적인 스타와 VIP들은 공식 의전차량을 타고와 상영관 앞에서 하차 한 후 15m를 걸어들어가 24개의 계단을 오른다. 이 30m안에 배우들은 찍혀야 하고, 사진기자는 찍어야 한다. 여기서 촬영된 사진은 언론을 타고 전세계에 타전돼 각국 신문, 방송을 장식하게 되므로 배우들에게도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금쪽같은 기회지만 진짜 전쟁은 작품홍보를 위한 영화사와 협찬 의상 및 소품을 통해 브랜드를 알려야 하는 패션업체들 사이에서 이뤄진다. 여기에 더해 생애 한번 될까말까한 칸영화제 공식상영 관람객이 된 이들도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또 다른 전투를 벌인다. 그래서 우아한 레드카펫 사진 뒤로 삭제된 진실은 아수라장같은 스타들의 입장 전후 펼쳐지는 아수라장이다. 드잡이를 불사하는 수십명의 보디가드들과 “빨리 비켜요” “여기 보세요”를 외치는 사진기자들, 한 컷이라도 더 기념사진을 남기려는 관객들이 한데 섞여 밀고 밀린다. 칸국제영화제에 수년간 참석한 한국의 한 사진기자에 따르면 세계적인 스타들은 30m의 레드카펫을 밟는 동안 사진기자들을 위해 꼭 7번 멈춰서 손을 흔든다고 한다. 

▶‘오실 필요 없습니다’…‘수상자만 초청되는 더러운 폐막식’

칸국제영화제 시상식과 폐막식은 철저하게 수상자들을 위한 자리다. 65회 행사의 시상식은 지난 27일 오후 7시 15분에 시작됐는데, 임상수 감독과 홍상수 감독은 이미 오후 1시 전후에 영화사를 통해 “굳이 참석하실 필요 없습니다”는 칸영화제 사무국의 통보를 받았다. 경쟁부문의 배우와 감독, 제작자는 영화제 사무국이 마련해준 고급 호텔의 숙소를 보통 2박3일~3박4일 정도 배정받는데, 개막 초반 상영과 행사가 있는 공식 게스트는 방을 빼고도 인근의 숙소를 따로 잡아 며칠간을 이제나 저제나 기다려야 한다. 그러니 폐막 몇 시간을 앞두고 “오실 필요 없다”는 전갈을 받는 허탈한 그 마음이야 짐작도 하기 어렵다.

▶표는 매진인데, 객석은 텅텅…티켓 담당자의 환심을 사라?

예술의 나라, 오랜 민주주의 전통의 나라 프랑스라고 모든 규칙이 엄격한 것은 아니다. “칼 쥔 자 혹은 엿장수 마음대로”는 동서고금의 인지상정이다. 뤼미에르 극장에서 열리는 레드카펫행사 및 공식상영은 세계 최고의 영화계 VIP가 주로 초청되는 행사로 표를 얻기가 하늘의 별따기. VIP들도 계급과 등급에 따라 1층과 2층, 오케스트라석, 발코니석, 코르베이유석 등을 배정받는데, 가끔가다 표가 완전히 동나 관계자들의 발을 구르게 한 작품의 시사회에서 객석이 텅텅 비는 경우가 있다.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 오랜 경험이 있는 한국의 한 영화계 고위 인사는 “칸의 경우 티켓 담당자는 막대한 권력을 누린다”며 “지금은 그래도 많이 바뀌었지만, 각국 참석자들이 좋은 좌석을 확보하기 위해 담당자에게 각종 선물세례로 ‘관리’를 해놓지 않으면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라고 말했다. 

▶부산이나 칸이나…레드카펫만 밟고 사라지는 스타들

한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개막식 레드카펫만 밟고 정작 개막작 상영 때는 빠져나가는 스타들이 목격돼 비난을 산 적이 있다. 칸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레드카펫 위에서만 볼 수 있고 객석에선 증발하는 월드 스타들이 부지기수. 시차적응에 각종 인터뷰, 프로모션 행사, 파티참석에 바쁘고 힘든 몸들이시다 보니 영화제에서 영화관람이 맨 뒷전이 된다.

▶상영 중간에도 박수와 환호, 야유…마음에 안들면 성큼성큼 빠져나가는 영화전문가들

칸에서는 언론시사(press screening)-공식상영(official gala screenig)-사후 시사(after screening)로 나뉘어 영화가 선을 보인다. 이 중 기자와 평론가, 방송취재진이 참석하는 언론 및 사후 시사는 가장 반응이 확실한 행사다. 아무리 이름난 거장, 세계적인 스타의 작품이라도 때에 따라선 굴욕을 피할 길이 없다.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시작 5분도 안돼 객석을 박차고 당당히 걸어서 문을 활짝 열고 나가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일단 관람을 시작하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지키는 것이 영화제작진과 다른 관객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는 한국 영화관계자 및 기자들에겐 여전히 익숙치 않은 풍경이다. 때에 따라선 영화 중간 환호나 박수, 야유가 나오기도 한다.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의 ‘코스모폴리스’ 시사회 때는 시작 10분도 안 돼서 자리를 일어서는 기자들이 눈에 띄더니 줄잡아 40~50명이 보무도 당당하게 극장을 빠져나갔다. 극장에서 나가는 행위 또한 ‘평가의 일부’가 된 것이 칸국제영화제의 관습이다.

▶5분? 10분? ‘기립박수’의 분초를 세는 세계유일의 한국영화인들

한국영화가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받을 때마다 나오는 볼썽 사나운 기사나 보도자료가 바로 “○분간 기립박수”다. 그래서 일부 한국 기자들이나 영화사관계자들은 본편이 끝나기가 무섭게 시계에 눈을 고정하고 분초까지 정확하게 기립박수 시간을 재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기립박수 시간이 5분인지, 7분이지, 10분인지를 영화에 대한 반응 및 평가의 잣대로 삼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몇 편의 작품이 ‘기립박수’ 마케팅으로 흥행에 재미를 본 이후 수년간 계속되온 관행은 올해도 어김없이 이어져 아니나다를까 “한국영화, ○분간 기립박수” “기립박수의 진실은?”이라는 기사가 쏟아졌다. 기립박수에는 ‘진실’이랄 것도 없다. 특히 감독과 주연배우가 참석하는 공식상영회에선 작품이 좋든 나쁘든 일어나서 뜨거운 박수와 환호로 맞아주는 것이 영화를 만든 이들의 노고에 대한 예의이자 격려다. 기립박수 시간으로 평가를 하자는 것은 목소리의 크기와 굽히는 허리의 각도로 인사의 진정성을 재자는 것만큼이나 어이없고 미련한 짓은 아닌지?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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