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덧 데뷔 10년차를 맞은 김강우. 결코 짧다 할 수 없는 세월 동안 쉼 없이 달렸지만, ‘누군가를 넘어서기 위해’ 욕심을 부리지는 않았다. 오롯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늘 최선을 다해서일까. 그에게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임상수 감독의 신작 ‘돈의 맛’을 통해 배우로서 빛을 발하는 순간이 다가왔다.
하지만 ‘돈의 맛’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안전한 길’을 걷고픈 배우들은 선뜻 출연하기 힘들 수도 있다.
“저는 원래부터 임 감독님의 팬이었어요. 감독님의 사회를 바라보는 특유의 시각이 너무 좋았어요. 감독님 작품들도 너무 재미있게 봤고요. 그렇기 때문에 출연을 할까 말까 고민한 적은 전혀 없었고요. 오히려 영광이라고 생각했죠.”
이번 영화에서 주영작으로 분한 김강우의 비중은 상당히 크다. 영화는 주영작의 시선을 따라 흘러간다. 그의 시선을 따라 재벌가의 ‘쌩얼’이 낱낱이 드러난다. 때문에 영화 안팎으로 김강우에 대한 대중들의 시선은 뜨거울 수밖에 없다. 세간의 뜨거운 관심이 부담스럽지는 않을까.
“부담이요? 그만큼 영화가 잘 됐으면 좋겠어요. 관심만 받고 끝나버린다면 속상하겠죠. 영화가 관객들에게 호소력 있게 다가갔으면 좋겠네요. 저는 ‘돈의 맛’을 보면서 ‘우리나라에 이런 영화가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사회에 대해 고민을 하게 하는 영화 말입니다.”
주영작은 그동안 김강우가 작품들을 통해 선보인 강렬한 캐릭터와는 거리가 멀다. 백씨 집안에서는 가장 인간적이지만, 그렇다고 멋있지는 않다. 그는 최대한 “돈에 현혹되는 평범한 샐러리맨의 모습을 그려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주영작은 백씨 집안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캐릭터죠. 초고속 승진을 하고, 똑똑하고..재벌들의 모습에 위축이 되기도 하지만요.”
실제로 직장생활을 해본 적이 없는 그지만, 주영작의 심리를 이해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고 한다.
“샐러리맨들이 영화 속 주영작의 모습을 보고, 많이 공감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영작의 눈으로 제 마음같이 따라와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렇다면 김강우가 관객들에게 가장 보여주고 싶은 주영작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
“영작이 백씨 집안에 오면서 느낀 당혹스러움, 수치심, 분노 등 이런 감정들을 그대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사실 제 대사는 많지 않아요. 그런데 감정을 세밀하게 표현해야 되니 힘들더라고요. 이제 막 백일 된 제 아들만 봐도 ‘말을 못해 얼마나 답답할까’ 생각하는데 말이죠. ”
이번 영화에서 단연 돋보였던 것은 윤여정, 김효진과의 파격적인 애정신이다. 극중 주영작은 백금옥과 그의 딸 나미로부터 유혹을 당한다.
“윤여정 선생님과 김효진 두 분 다 이번 영화에서 기가 센 캐릭터에요. 저는 끌려가는 입장이죠.(웃음) 그동안 선보인 모습과는 색달랐기 때문에 재미있었어요.”
실제로 김강우에게 어마어마한 선배인 윤여정과의 파격적인 베드신. 제 아무리 재능 있는 배우라 해도 촬영하는 데 있어 쉽지는 않았을 터.
“선생님은 굉장히 당혹스러우셨을 거예요. 저마저 그렇게 행동했다면 선생님이 더 민망하셨을 것 같아요. 그래서 일부러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했죠. 하지만 막상 감독님의 촬영 사인이 시작되니까 모든 게 일사천리로 끝났어요.(웃음)”
평범한 영화가 아닌 만큼, 주변인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하지만 그는 “작품 이야기를 업계 사람이 아닌 친구들과는 나누지 않는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의 아내 역시 마찬가지라고.
“제 아내요? 아마 영화에 대해서는 보통 사람들보다 더 모를 거예요. 아내에게 저는 이미 결혼한 순간부터 ‘자기 것’이 된 거잖아요. 그리고 제 친구들 역시 저에게 제가 나온 영화 이야기를 하지 않아요.”
자신의 ‘일’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간섭하는 것을 참지 못하는 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타인에게 관심이 없는 ‘무관심한’ 사람은 아니다.
“남의 일에 관심이 없는 건 아니에요. 사회의 평범한 사람들과 세상일에도 관심 있고요. 하지만 제 인생이 아닌 남의 인생에 참견할 필요는 없잖아요.”
오로지 자신의 선택과 의지로 차곡차곡 필모그래피를 쌓은 김강우. 과연 그는 대중들에게 어떤 배우로 남기를 원할까. 그는 굳이 자신에게 꼭 어울리는 ‘옷’을 입기 위해 노력하지는 않겠다고 했다.
“이번 영화의 영향일 수도 있겠지만 백윤식, 윤여정 선생님같은 길을 걷고 싶어요. 이 분들은 3,40년 동안 연기를 해오셨잖아요. 저도 그런 연기자가 되고 싶이요. 굳이 저에게 어울리는 역할을 찾으려고 하지는 않을 겁니다. 꾸준히 연기 생활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제가 하고 싶었던 캐릭터도 만날 거고요.”
양지원 이슈팀기자/ jwon04@ 사진 송재원 기자 sunn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