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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책>美 서바이버 게임 우승자, 권율 “나는 지금도 두렵다”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나는 사실 지금도 사람들 앞에 서는 게 두렵고 겁이 난다. 그러나 하나씩 도전하면서 극복해 나가고 있다. 성공이냐 실패냐보다 중요한 건 도전했다는 거다. ‘실패해도 세상이 끝나지 않는구나’ 깨달을 때 다시 도전하게 되고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다.”

미국 CBS 리얼리티 프로그램 ‘서바이버’의 최초 아시아인 우승자이자 변호사, 컨설턴트, 방송진행자로 차세대 리더로 우뚝 선 권율(37) 씨의 고백이다.

공황장애를 극복하고 아시아인의 롤모델이 되기까지 과정을 담은 자기계발서 ‘나는 매일 진화한다’(중앙북스) 출간과 관련해 방한한 그는 15일 프레스센터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미국 중ㆍ고등학교와 대학 등에서 강의를 하면서 멘토링 활동을 하고 있지만 한국 젊은이와는 소통할 기회가 없어 책을 통해 경험을 들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서바이버’ 우승을 거머쥔 후 권 씨의 활약은 그야말로 눈부시다. 미국 내 소수인종을 위한 골수 기증 캠페인을 비롯해 하버드ㆍ스탠퍼드ㆍ골드만삭스ㆍ야후ㆍIBMㆍAT&Tㆍ매킨지 등 100여곳 강연, 위안부 결의안의 미국 의회 통과, 아시아의 빈곤 퇴치 등 사회문제에 적극 참여해 차세대 오피니언 리더로 주목받고 있다. 
미 서바이벌게임 우승자 전율 출판기념 기자회견./ 안훈기자 rosedale@

오바마 정부 출범 이후 연방통신위원회(FCC) 소비자보호국 부국장으로 실무를 챙겼으며, 지금은 CNN과 LinkAsiaㆍPBS 앵커로 활약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활동은 한편으로는 두려움과의 정면승부,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점에서 ‘권율 신화’는 극히 인간적이다.

어린 시절 그는 폐쇄된 공간에 갇혀있는 겁먹은 아이였다.

“어린 시절은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끊임없이 몰려오는 두려움 뿐이었다”고 그는 기억한다.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도, 대화하는 것도 두려웠다. 정서적 불안에서 비롯된 빈뇨증과 폐쇄공포증에 시달렸지만 부모님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다. 정상이 아니란 걸 다른 사람이 알아차릴까봐 늘 두려웠다. 그때 충격적인 일을 경험한다. 형의 절친한 친구가 자살한 것이다. 그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떻게 앞날이 창창한 사람이 자살할 수 있나”“나만 이런 고통을 겪는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하나씩 자신의 생활을 바꿔 나가기로 결심하고 목록을 써 나갔다. 가령 오늘은 친구와 말하기, 또 선생님이 질문할 때 손들기…. 처음엔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지만 자신을 향상시켜 나가면서 몇 년 후엔 정상적인 삶을 회복했다.

그는 “미국사회에선 동양계 미국인을 ‘영원한 이방인’으로 부른다”며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어릴 때부터 내 피부색을 부끄러워하며 자랐다”고 고백했다.

부모님이 공공장소에서 한국어로 이야기하면 몹시 부끄러웠고, 어머니가 점심 도시락으로 김밥과 같은 ‘이상한 음식’을 싸주는 것도 싫었다.

그가 서바이버에 나가기로 결심한 것은 스스로의 자존심 회복 선언이자 심적 고통에 시달리는 소수의 목소리를 대변하자는 생각에서였다. 서바이버 게임 최종 면접 과정에서 그는 제작진의 질문과 태도에서 한국인, 아시아인에 대한 노골적이고 뿌리 깊은 편견을 경험하게 된다.

그는 용케 면접을 통과하고 결심한다. “동양인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하자.”

서바이버 촬영을 기다리는 마지막 두 주는 그에게 악몽으로 다가온다.

그는 “매일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죄수처럼 커져가는 불안과 공포 속에서 보내야 했다”고 고백했다.

설상가상으로 하루 전날 수영장에서 렌즈를 낀 채 수영 훈련을 한 뒤 렌즈를 떼내려다 각막의 일부를 뜯어내는 사고를 치게 된다. 그는 다시 공황장애에 빠졌다.

그러나 이내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물러선다면 그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쉬운 길을 택하기로 한 나 자신 탓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는 더 이상 과거로 퇴보하고 싶지 않다. 내 삶의 방향이 긍정적으로 진화하기를 원한다”며 출발하기 전 무릎 꿇고 마지막 기도를 했다고 털어놨다.

책은 서바이버 게임에서 겪은 일을 소상하게 적었다.

그는 우승 비결로 어릴 때부터 자기통제와 자기절제를 배운 것을 첫 손가락에 꼽았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훈육방식이 정반대였다. 아버지는 규율과 원칙ㆍ공부를 강요했다면, 어머니는 자유와 자신감을 주는 게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그는 두 분에게서 좋은 것만 취하기로 했다.

양육방식에서 어느 한 쪽만 옳은 경우는 없다는 게 그의 입장이다.

현재 워싱턴DC 중ㆍ고등학교 멘토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청소년과 많은 대화를 나누는 그는 “과거에는 학생의 고민이 좋은 학교와 좋은 직장이었다면 요즘은 외로운데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왕따를 당하는데 어찌하면 좋은지 조언을 구하는 얘기가 많다”고 들려준다.

그의 해법은 명쾌하다. “대인공포나 강박에서 벗어나는 건 스스로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혼자서는 벅찰 수 있다. 부모님을 신뢰하고 털어놓는 게 좋다. 또 스포츠클럽 등을 통해 친구를 사귀면 도움을 얻을 수 있다. 무엇보다 도전하는 게 중요하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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