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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장 국제결혼’에 우는 한국 남자들
친정 갔다온다던 외국인 아내, 아이는 두고 혼자 재입국해 연락끊고 잠적…가정파탄에 아이잃고 건강잃은 남편들 시름의 나날…
불쌍한 아버지들
국제결혼피해센터에
사연만 천 건 넘어

아이 찾아 달라며
브로커에게 거액 지불
돈만 날리는 경우 허다

상담센터 대부분
이주여성 위주 운영
피해남성에도 귀 기울여야


# 1. 이채문(43ㆍ무직) 씨는 가슴에 심박기를 달고 생활한다. 악화된 지병인 부정맥 때문이다. 열두 살 차이 나는 베트남 아내가 “친정에 다녀오겠다”며 일곱 살짜리 아들과 베트남에 갔다가 아이만 두고 몰래 한국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이 씨의 증세는 악화됐다. 결혼생활 중 하던 막노동도 할 수 없게 됐다. 기초생활수급자가 돼 생계도 막막하다.

# 2. 이현철(43ㆍ농업) 씨는 인천 계양구 다문화센터에서도 인정한, 자타 공인 ‘잉꼬부부’였다. 하지만 이 씨의 행복도 오래가진 못했다. 결혼한 지 4년째 되던 해 열여덟 살 어린 캄보디아 아내는 “친정에 다녀오겠다”며 캄보디아로 떠나 아이만 놔두고 한국에 몰래 들어왔다고 들었다. 어디 있는지도 몰라 한 달간 생업도 포기한 채 전국을 떠돌며 찾아다녔다. 그러던 중 뇌경색이 왔다. 1년간 꼼짝 못하고 병석에 누워 있다가 최근에야 회복됐다.

# 3. 김순우(44ㆍ제조업) 씨는 불안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언제 아이를 데리고 잠적할지 모르는 베트남 아내 때문이다.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김 씨는 궁여지책으로 딸과 아내의 여권을 ‘압수’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김 씨는 생업도 포기한 채 가족찾기에 나서야 할 판이다. 아내가 자기와 아이의 여권을 다시 가져갔기 때문이다.

해외 이주 여성과 결혼한 남성들이 자기의 아이를 찾아 헤매고 있다.

해외 이주 여성, 즉 어머니가 아이들을 자기 나라에 데려간 뒤 돌려주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어머니인 이주 여성들은 애초 사랑해서 한 결혼이 아니었다. 이들은 결혼을 통해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 결혼생활 중 낳은 자녀와 함께 “친정에 다녀오겠다”고 한 뒤 아이를 고향 땅에 남겨둔 채 남편 몰래 홀로 한국에 돌아와 일을 한다.

남편과 이혼을 하더라도 ‘어머니들’은 불법체류자가 아니다. 친정에서 기르고 있는 아이를 다시 데려오면 한국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다. 인천에서 국제결혼피해센터(이하 ‘피해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안태성 대표는 “이 같은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안 대표는 “우리가 운영하는 인터넷카페에 올라온 ‘불쌍한 아버지’들의 사연만 1000건이 넘는다”고 말했다.

▶해외 이주 여성과 결혼한 불쌍한 아버지들= 아이를 잃은 아버지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이를 찾아주겠다”고 나서는 브로커들에게 거액을 지불했다가 돈만 날리는 경우도 있다. 소위 이중 사기를 당하고 있는 것.

실제 이채문 씨는 지난 2011년 9월 한 브로커에게 180만원을 주고 베트남에 있는 아이를 찾아 달라고 의뢰했지만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현지에서는 아무런 소식이 없다.

이 씨는 “어떤 사람들은 아이를 찾기 위해 1000만원, 심지어 2000만원을 쓰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내 형편을 보라. 나에게 180만원은 정부에서 주는 기초생활수급을 한푼도 안 쓰고 4개월 동안 모아도 모자라는 큰돈”이라며 “그래도 못 찾게 되면…”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순우 씨는 1000만원을 주고 베트남 현지에 있는 아이를 되찾아온 경우다. 하지만 “그렇게 하느라 모아놓은 돈을 모두 써버렸다”고 한숨을 쉬었다.

▶아버지들이 불쌍한 아버지가 된 이유는= 그동안 다문화가정의 파탄을 야기한 빌미는 주로 한국 남편이 제공한 바가 컸다.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 사고방식을 가진 한국 남성들의 인식이 유발한 결과임을 부정할 수 없다.

여성가족부 이주여성긴급지원센터(이하 ‘지원센터’)에서 2011년 12월 발간한 ‘이주여성 상담 분석과 인권 실태’ 자료집에 따르면 베트남 여성의 경우 10명 중 약 3명이 한국 남성에 의해 발생하는 가정폭력을 이혼 및 가정파탄의 가장 큰 이유로 들고 있다. 그러나 이런 상담센터 대부분이 이주 여성 위주로 조직ㆍ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권미경 긴급지원센터 팀장은 “간혹 피해자 남성들이 사연을 호소하러 찾아오기도 하지만 통계를 내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그 수가 적다”며 “피해 남성만을 위한 곳 혹은 국제결혼에 대한 한국 남성들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기 위한 시설이나 기관은 아직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주 여성 아내에게 속고, 아이까지 빼앗기고= 기약없이 아이를 찾아나서며 정신적ㆍ육체적ㆍ경제적 피해를 감내해야 하는 아버지들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여성부 관계자는 “국제결혼 피해 남성들은 한국소비자원이나 각급 지자체 등에 호소할 수 있다”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이 같은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사전에 남성들이 알아서 피해를 예방해야 하는 셈이다.

안태성 피해센터 대표는 “다른 피해자 단체의 경우 4월 총선을 앞두고 ‘반다문화 정당’인 민생당 창당에 협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심지어 외국인 혐오증까지 보이는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이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기존에 설치된 지원기관들이 피해 남성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며 이주 여성들에게처럼 전문적이고도 일원화된 도움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궁극적으로는 우리 같은 단체가 더는 필요 없어져 사라지는 게 가장 좋은 것 아니겠느냐”며 반문했다.

윤현종 기자/factis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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