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파릇파릇한 캠퍼스 배경
아련한 첫사랑의 주인공 열연

‘드림하이’때 혹독한 연기 신고식
매일 일기쓰며 연기자 꿈 다짐


영화처럼 ‘90년대식’으로 말하자면 ‘마지막 승부’의 심은하 이상이다. 따스한 봄볕을 뒤로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실루엣을 타고 온 그녀, 모든 남자에게 첫사랑이고픈 로망이다. ‘건축학개론’의 주연 수지(본명 배수지ㆍ18)다.

아이돌 걸그룹 미쓰에이의 보컬이자 ‘드림하이’로 배우 경력을 시작한 10대 스타. 수지는 영화 속에서 1990년대 중반 봄햇살이 드리운 정릉의 옛 골목과 파릇파릇 잔디 돋은 교정, 그리고 대학 신입생의 아스라한 첫사랑 풍경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90년대 감성에 21세기 아이돌 스타가 들어앉은 그림이 근사하다. 시대를 넘은 이 어울림이야말로 온전히 수지와 상대역의 이제훈 몫이다. ‘건축학개론’은 지난 22일 개봉해 첫 주 압도적인 흥행 1위를 기록했다.

“그 시대를 잘 모르기 때문에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는 이해도 안 되고 재미도 없었어요. 삐삐도 몰랐고, 포터블 CD플레이어는 본 적만 있어요. 하지만 읽을수록 가슴 한편이 설레어 왔죠. 그 시절 대학생활을 했던 분이라면 흥미진진하겠구나 생각했죠. ‘진짜 내 첫사랑 같다’는 말, ‘서연(극중 이름)에 빙의된 것 같다’는 평이 기분 좋아요.”

영화 개봉 후 수지가 보여준 매혹적인 이미지와 연기에 대해 호평이 자자하지만, 배우 경력의 시작은 얼떨결이었다.

드라마 ‘드림하이’ 촬영 중에는 PD가 헤드셋을 던지며 “그렇게 하지마. 니가 그래서 무슨 주인공이야”라고 혹독한 타박을 하기도 했다. 음반 녹음 때도 소속사 JYP의 박진영 대표로부터 “넌 가수도 아냐. 애절함이 없어”라고 나무람을 들은 적도 있었지만, 연기엔 재능이 없는 것 아니냐는 자괴감 때문에 더 서러웠다. 돌아서서 끝내 울음을 터뜨렸고, 그때부터 매일 일기에 “난 연기를 다시 할 거야, 영화도 찍을 거야”라고 썼다. 오기가 팔할이었지만 운명처럼 ‘건축학개론’의 시나리오가 들어왔다. 

걸그룹 미쓰에이 멤버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수지가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빼어난 연기와 이미지를 보여주며 호평을 받았다. 수지는 인터뷰에서 10대 스타로서 고민과 포부를 털어놨다. 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수지는 “집어삼킬 것처럼, 씹어먹을 것처럼 시나리오를 읽고 또 읽었다”고 했다.

어린 시절 수지의 꿈은 오로지 가수였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부모님 몰래 노래방과 ‘춤학원’을 다니면서 용돈을 쏟아부었다. 길거리 댄스팀에서 활동하던 중 ‘슈퍼스타K’ 광주 오디션에 응했다. 현장에서 잠깐 화장실에 가는 길에 관계자 눈에 띄어 미쓰에이 멤버가 됐다.

지금도 힘들 땐 무조건 노래방행. ‘최신 히트곡’의 맨 위부터 번호를 누르기도 하고, 에이브릴 라빈에서 셀린 디온 등의 팝송을 부르기도 한다.

연기는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지만 자꾸 욕심이 생기고 잘하고 싶다. 수지의 솔직담백함과 청초한 외모, 경직되지 않고 유연한 몸과 말이 배우로서 매우 훌륭한 자질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수지는 지금 고3이다. 최근 서울 압구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수지는 “내년이 되면 빨리 19금 영화를 당당하게 보고 싶고, 드라마에 등장하는 장면처럼 힘든 일이 있을 때 친한 이들 불러서 포장마차에 가고 싶다”고 했다. 또 “대학에선 심리학을 전공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