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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겨운, 선 굵고 다면적인 배우가 됐다
정겨운(29)이 확실하게 연기 변신을 했다. 그런데 극과 극의 역할을 맡아 연기 변신을 한 게 아니다. 드라마를 계속하다 보니 조금씩 이미지가 쌓이고 바뀌면서 어느덧 배우로서 제법 확고한 자리를 잡은 것이다. 이제는 선악을 겸비한 반전 캐릭터로도 어울린다.

정겨운은 연기 초기 계속 드라마에 출연했고, 운 좋게도 주연도 자주 맡았다. 하지만 ‘행복한 여자’(2007) ‘태양의 여자’(2008) ‘미워도 다시 한번’(2009) ‘천만번 사랑해’(2009년) 등 초기작에서는 주연급이어도 잘 보이지 않았다. 당시 정겨운이 맡은 역은 주로 ‘실장님’ 캐릭터였다. 파탄 난 가정의 아들 전담역이라고나 할까. 이런 배역을 단선적으로 연기한 탓인지 연기선이 얇은 것 같았다.

그러던 정겨운이 2010년 ‘닥터 챔프’에 출연하면서 연기선이 굵어지기 시작했다. 비운의 2인자 유도선수 박지헌을 맡아 섬세함과 디테일도 놓치지 않았다. 정겨운은 “박형기 감독이 저에게 힘이 들어갔던 연기를 편하게 할 수 있도록 풀어주니까 정교함이 보였다. 힘도 빼고, 운동도 하다 보니까 일석이조였다”고 회상했다.



정겨운은 이후에도 ‘싸인’(2011년) ‘로맨스 타운’(2011년) 등 쉬지 않고 드라마를 찍어 독립적인 캐릭터로 성장한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최근 종영한 SBS 월화극 ‘샐러리맨 초한지’에서는 그 절정을 맛봤다. 천하그룹 본부장 최항우 역을 맡아 다면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업에서는 냉혹한 모습을 보이지만 사랑 앞에서는 순수한 모습을 잘 연기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미워할 수 없는 악역이었다.

“나는 실장 이미지다. 실장 역을 정말 많이 했고, 마지막 실장, 새로운 악역을 하고 싶었다. 이번 드라마의 항우가 역사에 나온 항우와 가장 비슷하다. 머리도 좋고 힘도 산을 옮길 정도로 세다. 현대물에서 역사적 인물과 이름도 똑같은 이런 드라마를 또 할 수 있을까 하면서 열심히 했다. 자기 힘만 믿고, 부하를 믿지 못하는 항우의 매력을 표현하려고 했다.”

정겨운은 초기의 연기에 대해 “지금 나이에 했으면 조금 더 잘했을 것이다. 더 절절해야 했는데. 남자는 나이가 들어야 내면 연기를 더 잘할 수 있다”면서 “당시는 생김새 때문에 캐스팅됐겠지만 모자라지 않았나 하고 생각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초한지’에서는 준비를 철저히 했다. 미리 출연진과 스태프가 리조트에 가서 리딩을 했고 출연자들과는 홍대앞에서 1박2일간 술을 마시며 호흡을 맞췄다.

“범중 역의 이기영 선배가 내게 연기를 가르쳐 주려고 끈질기게 불렀다.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몇 번씩 맞춰보고 6시간 연기수업을 받기도 했다. 이런 과정이 필요한 때였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 캐릭터를 연구한 게 도움이 많이 됐다.”

철저한 준비를 한 덕분에 정겨운이 맡은 항우는 더욱 생생하게 살아났다. 굳이 감정을 잡지 않아도 강하고 차가운 캐릭터가 일정 부분 잡혀 있으니까 효과가 배가됐다. 정겨운이 항우를 연기하는 데 가장 신경쓴 부분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첫 번째가 대사톤. 평소에는 굵직하게 가슴에서 나오게 했고, 차우희(홍수현 분)와 있을 때는 원래 제 목소리로 차이가 나게 했다. 그다음은 비주얼인데, 항우의 자신감 때문에 올백을 하고 운동하거나 집에 있을 때는 머리를 내려, 있을 법한 샐러리맨처럼 보이게 했다.”



정겨운은 항우가 처음에는 악역이었지만, 단순 악역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후반에는 한국 사회의 모든 모순과 폐단을 한 캐릭터 안에 응집시킨 모가비(김서형 분)가 강력한 악역으로 등장하면서 항우는 또 다른 면모, 코믹한 모습까지 보일 수 있었다.

“우희는 내가 이길 수 없는 자존심 강한 캐릭터라, 오히려 그녀 앞에서는 나사 빠진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했다. 코믹한 모습도 시도했다. 멜로에서 아쉬웠다는 시청자들도 있었지만 우희와의 특이한 ‘밀당’은 좋았다.”

정겨운은 솔직하고 직설적이다. 착하게 포장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인터뷰한 내용을 모두 옮기면 ‘인기검색어 1위’에 오를 만한 것도 있었다. 본인은 ‘무릎팍도사’ 같은 곳에 나가서 속에 있는 이야기를 다하고 싶다는 말도 했다. 하지만 그의 솔직한 모습이 연기력을 쌓아나가는 데 좋은 재료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병기 선임기자> wp@heraldcorp.com, 사진=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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