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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형석의 상상력사전> 인력거 혹은 자전거
인도의 캘커타에선 아직도 인력거가 자동차만큼이나 요긴한 이동 수단이다. 인도 돈으로 많아야 몇십루피, 우리 돈으로 몇백원만 내면 교통체증으로 꽉 막힌 도로를 요리조리 뚫고 나간다. 인력거는 마치 매달려 날아가듯 인력거꾼들이 손잡이를 잡고 있다. 눈가에 주름이 자글한 노인네도, 갓 스물이 될까 하는 건장한 청년도 지역 70도의 아스팔트 도로를 맨발로 달리고 또 달린다. “신발을 신으면 미끄러져서 뛸 수가 없어요.” 찢어지고 아물고 허물 벗기를 몇 번이나 했을까. 발바닥의 굳은살이 나이키 운동화 밑창 저리가라다.

이성규 감독의 다큐멘터리영화 ‘오래된 인력거’(15일 개봉)의 주인공인 중년의 인력거꾼 ‘샬림’의 이야기다. 작품에 따르면 캘커타에는 몇년 전만 해도 십만여대의 인력거가 돌아다녔으나 교통과 도시 미관 문제로 이제는 1만대도 남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가난한 이들, 특히 대부분 엄격한 신분제인 카스트 아래 최하위계층, 이른바 불가촉천민이었던 사람들은 여전히 인력거의 손잡이를 잡는다.

‘샬람의 인력거’에서 누군가는 당연한 것처럼 ‘안토니오의 자전거’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인력거나 자전거는 여전히 사람의 동력을 이용한다. 산업혁명이 ‘동력의 혁명’이라고 했을 때 인력거나 자전거가 표상하는 건 수공업 시대의 후진성과 낭만성이다. 인력거나 자전거가 때론 추억 속에서만 불러내지고, 늘 낭만적 연가를 연주하는 건 그 때문이지 않을까.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 인력거나 자전거는 여전히 피곤한 노동의 무게이고, 절박한 삶의 증명이다. 이탈리아 네오 리얼리즘의 고전 ‘자전거’에서 자전거를 도둑맞았다는 건 삶, 곧 노동뿐 아니라 정체성을 상실했다는 의미다. 그래서 흔히 아버지와 아들이 등장한다. 오직 노동으로만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아버지, 안토니오는 자전거를 도둑맞음으로 해서 생존의 위기와 함께 아버지로서의 정체성에 위기를 맞게 된다. 아버지와 아들이 손을 꼭 잡고 가는 눈물겨운 뒷모습은 이 위기를 겪는 당시의 모든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따뜻하지만 쓸쓸한 위로다. ‘오래된 인력거’도 기어이 아버지와 아들을 불러낸다. 아버지 ‘샬림’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의사가 되기를 그토록 소망했던 10대의 아들은 결국 가난을 이기지 못하고 축구공을 붙이는 어린 소년들 틈바구니에서 재봉틀을 잡는다.

빌린 영업용 시클로(자전거로 끄는 운송 수단)를 도둑맞아 결국 갱이 된 베트남의 소년( ‘시클로’), 택배용 자전거를 잃어버린 베이징의 소년( ‘북경자전거’). 그들에게도 자전거 혹은 인력거는 곧 노동이고 생존이었으며, 자신의 존재 증명이었다.

‘오래된 인력거’는 잊혔던 많은 자전거를 떠올리게 했다. 아련하게 잊혔던 김소진의 소설 ‘자전거도둑’, ‘첨밀밀’에서 홍콩 시내를 가로질렀던 자전거도. 그런가 하면 언젠가 CF에서 ‘내 여자’의 선물을 준비한다며 멋들어지게 타던 정우성의 자전거도 있다. 그 끝에선 ‘맨발의 청춘’에서 트위스트 김이 마지막 친구의 시신을 싣고 가던 ‘리어카’도. 

/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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