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휴먼다큐>‘야망의 전설’ 김영진 PD “존재감 없는 장애인, 아직도 힘들어”
“드라마가 하고 싶어서 삼수를 해서 PD가 됐죠. 그런데 입사하니 바로 라디오로 보내더라고요. 너무 잘해도 안되고, 못해도 안되겠구나 싶었어요. 어중간하게 일을 해야 내보낼 것 같아서 대충 3년 반을 하고 나왔어요. 그런데 미니시리즈도 하다가 망했고, 일일극도 망했어요. 고개를 못 들고 다녔죠. 작품 두 개를 망하고 나서 ‘야망의 전설’로 우뚝 섰어요. 그런데 이제부터 시작이다 싶을 때 곧바로 사고가 나더라고요.”

지난해 방송된 KBS1 크리스마스 특집 드라마 ‘고마워, 웃게 해줘서’의 제작기를 담은 다큐 영화 ‘꿍따리 유랑단’을 만든 김영진(51) 감독은 1987년 KBS 공채 PD로 입사했다. 드라마를 만들겠다는 꿈을 지녔던 김 감독은 1998년 ‘야망의 전설’로 그 명성을 처음 인정받았다. 최수종ㆍ채시라ㆍ유동근 등이 출연한 ‘야망의 전설’은 당시 50%가 넘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최고의 드라마로 회자된 바 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2000년 불의의 사고로 1급 장애인 판정을 받고 연출가로서의 꿈을 사실상 접어야 했다.

“미국 시카고에서 유학간 아내를 만나러 갔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넉 달간 뇌사상태였어요. 차가 굴렀는데, 같이 타고 있던 6명 중 유독 저만 많이 다쳤어요. 4개월 뒤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1년간은 가족 얼굴도 못 알아봤어요.”


2년이나 병원에 입원해 있던 김 감독은 “내가 일을 못하게 될 것이라고는 꿈도 못꿨다. 하루 아침에 장애인이 됐다는 것도 그렇지만, 회사에 복직하고 나니 존재감이 없다는 것이 확실히 느껴져 더 서러웠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복직 후 제작도 아니고, 행정도 아닌 직책을 맡아 시간을 보냈다. KBS 별관 앞에 서 있는 대형버스를 보면 항상 가슴이 미어질 듯했다. “나도 타고 가고 싶은데…”하는 생각에 눈물이 났고, 자신을 보지도 않고 지나가는 스태프가 자신을 외면한다는 생각에 서러웠던 시절이다.

그런 그를 버티게 한 유일한 희망은 “몇 달 뒤면 영화를 제작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었다. 그는 영화를 제작하겠다고 끊임없이 연구를 하면서 하루하루를 버텼다. 김 감독은 특히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최수종이 한 말이 참 고맙게 느껴진다고 했다.

‘야망의 전설’에 출연했던 최수종은 김 감독에게 “형, 나 상품가치 있을 때 써먹어. 나 인기 없어지면 소용없어”라며 힘이 돼주려고 애썼다.

최수종뿐만 아니라 이번 영화에 무료로 출연해준 조재현ㆍ정애리ㆍ김규철ㆍ권해효ㆍ손현주ㆍ조양자 등에게 그는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했다. 도움을 준 배우와 장애인의 힘이 어우러져서인지 ‘고마워, 웃게 해줘서’는 지난해 제2회 대한민국 서울문화예술대상 특별대상을 수상했다.


김 감독은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으로 선정돼 받은 상금으로 식사라도 대접하려고 하는데, 모여지지가 않는다”며 아직도 상금을 못 쓰고 있다고 했다.

장애에 관한 한 김 감독도 강원래와 비슷한 생각을 지니고 있다.

“장애인 영화를 극복이나 재활로 가면 안됩니다. 장애인 100만명 중 극복이나 재활을 하는 사람은 1~2명 뿐이에요. 나머지는 절망하고 좌절하게 돼 있는데, 장애인 영화를 극복기로 만들게 되면 결국 장애인을 두 번 죽이는 거나 마찬가지가 됩니다.”

다큐멘터리 영화는 처음 만들었다는 그는 “드라마를 연출에 의해 찍는다면, 다큐는 발견해서 찍으니 또 다른 기쁨을 주더라. 디토라는 3인조 아이돌 그룹 멤버 중 오세준이란 친구가 삼척에 가서 공연을 했는데, 이런 옹색한 무대에서 공연을 하는 게 행복할까 싶었는데 행복하다고 하더라. 그 이유가 예전에는 잘 못할까봐 무대에 서는 게 두려웠는데, 지금은 잘하면 안되니까 오히려 마음껏 부를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그런다. 장애의 치유법은 딱 한 가지,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면 되는 것인데, 세준이에게서 이런 걸 발견했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는 “나 같은 사람을 위로하고 싶다. 다음에는 탈북자 이야기를 하고 싶다. 우리나라에 와서 적응을 못하는 것 같다. 다문화 가족 얘기도 만들고 싶고. 매끄럽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요즘 주4회 휠체어 배드민턴을 치는 것인 낙이라는 그는 “나뿐만 아니라 많은 장애인이 상처를 입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아직도 힘들다는 거다. ‘나 극복했다’고 말하기 싫다. 나도 죽고 싶은데, 죽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장연주 기자/yeonjoo7@heraldcorp.com
사진=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