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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영화 ‘트리 오브 라이프’
당신이 2011년 오늘 그곳에 있기까지는 태초부터 얼마나 많은 관계와 운동, 진화가 작용했을까. 당신의 마음속에 깃든 다양한 감정은 얼마나 많은 힘과 사건의 작용-반작용에 의한 결과물일까. 테렌스 맬릭 감독, 브래드 피트, 숀 펜 주연의 ‘트리 오브 라이프’는 존재의 기원을 가깝게는 아버지, 멀게는 우주와 생명 탄생의 태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과학저널리스트 빌 브라이슨의 저서 제목을 인용하자면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보여주고자 한 영화적 야심이 이 작품에 담겨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트리 오브 라이프’에서 철학자 출신으로 약 40년간 단 5편만을 만들어온 게으른 거장 테렌스 맬릭 감독은 야심에 걸맞은 이미지와 사운드의 향연을 펼쳤다.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한 가족 두 세대의 이야기 속에 삶과 죽음, 개인과 우주,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는 ‘생명과 존재의 교향악’을 빚어냈다.

영화는 1960년대 미국 텍사스 주에 사는 중산층의 오브라이언 부부가 열아홉 살 된 둘째아들의 전사 소식을 통보받으며 시작한다. 이후 영화의 카메라는 건축가로 성장한 40대 중년 남자 잭(숀 펜 분)의 ‘오늘’과 아버지 오브라이언(브래드 피트 분)과 보냈던 어린 시절의 ‘과거’를 교차시킨다. 



오브라이언은 항공사에서 일하는 성공한 엔지니어로, 아내(제시카 차스테인 분)와 어린 세 아들과 함께 단란하고 평화로운 가정을 이룬다. 하지만 자식들이 성장해갈수록 아버지는 더욱 엄격하고 권위적이며 폭력적으로 변해간다. 그는 늘 경쟁과 성취, 성공을 강조하고 맏아들인 잭은 폭압적인 아버지에 반발한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미움과 분노가 자리 잡게 된다. 이제 40대의 성공한 건축가가 된 잭은 때론 꿈에서 죽은 동생의 어릴 적 모습을 만나고, 이제는 늙어버린 아버지와 통화를 하며 자신의 상처와 성장기를 뒤돌아본다. 

영화의 첫 머리에서 관객은 “내가 땅에 기초를 놓을 때 너는 어디 있었느냐? 그때에 새벽 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쁘게 소리하였느니라”(욥기 38장 4~7절)라는 성경의 한 구절을 만난다. 아들의 부고를 받은 어머니는 “신이여, 왜인가요? 당신은 어디에 있었나요? 우리는 당신에게 무엇인가요?”라고 물음을 던진다. 이후 등장인물의 목소리를 통해 영화는 삶의 두 가지 길에 대해서 말한다.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지만 자신은 물론 수많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세속적인 길’과 때로 고통스럽지만 다른 이를 행복하게 하는 ‘자비와 은총의 삶’이다.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 만큼 강하게 커야 한다며 성공을 최고의 덕목으로 강조하는 아버지 오브라이언이 세속적인 삶을 상징한다면, 묵묵히 자식들을 사랑과 자애로 감싸 안는 어머니이자 아내는 은총의 길을 보여준다. 아버지와 아들의 세대,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가운데 중간 중간 삽입된 우주의 빅뱅과 세포의 분열, 선사시대, 화산의 분출, 바닷속의 비경 등 경이로운 이미지들은 가족이라는 운명이 얼마나 많은 우연과 필연이 태초부터 집적돼 이뤄진 결과물인지를 말하는 듯하다.

강렬하고 아름다운 영상에 바흐, 말러, 브람스, 스메타나 등의 음악이 어울렸다. 올해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다. 27일 개봉.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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