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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게으른 진실’을 깨워내 사회를 바꾸다
공지영 작가는 소설 ‘도가니’에서 “진실이 가지는 유일한 단점은 그것이 몹시 게으르다는 것이다. 진실은 언제나 자신만이 진실이라는 교만 때문에 날 것 그대로의 몸뚱이를 내놓고 어떤 치장도 설득도 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진실은 가끔 생뚱맞고 대개 비논리적이며 자주 불편하다. 진실이 아닌 것들이 부단히 노력하며 모순된 점을 가리고 분을 바르며 부지런을 떠는 동안 진실은 그저 누워서 감이 입에 떨어지는 것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렇다면 영화의 사회적 역할이란 게으른 진실을 깨워내 세상에 드러내는 일이 아닐까. 영화 ‘도가니’의 위력이 무섭다. 개봉 첫 주만에 작품의 바탕이 된 광주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을 공론의 장으로 불러내며 영화의 사회적 영향력을 다시 한번 웅변하고 있다. 관객과 네티즌들에 의한 사건 재조사 요구가 거세고, 학교를 폐교하고 관련법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도 뜨겁다.

이처럼 영화가 잊혀졌던 사건이나 현상을 소재로 해 다시 한번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현실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로 이어진 사례는 적지 않다. 



지난 2003년 한국영화로는 처음으로 관객 1000만명을 달성한 ‘실미도’는 현대사 속에 봉인됐던 북파공작원의 존재와 실체를 드러냈다. 소재는 무려 40년전인 1971년 서울 노량진에서 있었던 실미도 부대 폭사사건이었다. 영화는 북파공작원과 희생자, 유족들의 인권에 사회적 관심을 끌어냈고, 당시 국회에선 ‘특수임무유공자보상(예우)에 관한 법률안’이 제출되기도 했다. ‘실미도’에 이어 두번째로 1000만 영화가 된 ‘태극기 휘날리며’는 한국전쟁 당시 희생자 유해 발굴 작업에 대한 전국민적 관심을 촉발시켰다.

연쇄살인, 흉악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연장 요구도 영화가 제기한 이슈 중 하나였다. 미제사건을 다룬 작품에서 특히 그랬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2004년 ‘살인의 추억’과 이형호군 납치 사건을 다룬 2007년작 ‘그놈 목소리’, 개구리 소년 납치살해사건을 그린 ‘아이들…’(2011) 등에 대표적인 예다. 개구리소년 유족과 전국미아ㆍ실종가족찾기 시민의 모임은 지난 2월 반인륜범죄 공소시효 폐지와 민간조사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과 가두서명 캠페인을 열기도 했다. 지난 2009년 발생한 이태원햄버거가게 살인사건을 담은 ‘이태원살인사건’(2009)은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에서의 범죄인 재판 및 인도 등에 관한 문제를 제기했다. 



2006년 개봉한 ‘괴물’은 2000년 일어났던 주한미군에 의한 독극물 방출 사건인 맥팔렌드 사건을 소재로 했다. 이후 주한미군 반환기지에 대한 환경 오염문제가 환경단체 등에 의해 적극적으로 제기됐다.

흥미로운 것은 ‘도가니’나 ‘살인의 추억’ 처럼 실제 사건이 이미 소설이나 연극 등으로 다뤄졌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파장은 영화로 제작됐을 때 훨씬 컸다는 점이다. 영화는 다른 매체와 달리 단기간에 대규모의 관객이 관람하는 데다 영상이 가지는 직접성과 정서적 파괴력이 이같은 영향력으로 나타났다.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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