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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같은 법정서 태어난 ‘도가니’와 ‘의뢰인’, 관객을 정의의 심판자로 세우다
“증인은 가해자가 누구인지 지목할 수 있습니까?”

판사의 추상같은 질문앞에 성폭력 피해자인 어린 소녀가 가해자들 앞에 선다. 수년간 청각 장애 학생들을 상대로 집요하고 상습적인 성폭행을 저지른 교장과 행정실장이 피고석에 앉아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외모가 똑같은 쌍둥이다. 가해자측에 불리하게 진행되는 재판의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피고측 변호사가 새롭게 제기한 문제. 소녀의 손가락은 누구를 향할 것인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한국영화 ‘도가니’의 한 장면이다. 이 영화의 후반부를 채우는 법정장면은 전체 영화의 메시지를 함축하면서도 극적인 흥미를 배가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이어 29일 개봉하는 ‘의뢰인’은 아예 재판을 전면에 내세운 법정스릴러를 표방했다. ‘도가니’는 지난 22일 개봉해 첫 주 압도적인 기세로 흥행 1위를 달성했고, ‘의뢰인’은 언론 및 유료 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후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두 작품은 한국영화에서 보기 드물게 반전을 거듭하는 법정공방을 빼어나게 묘사한 사례로 꼽힌다. 공교롭게도 두 영화는 같은 법정 세트에서 촬영됐다. 



‘도가니’의 배정민 프로듀서는 “원래 법정을 재현하는 세트 제작비가 비싸 고민하던 차에 ‘의뢰인’의 촬영이 기획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두 영화의 제작진이 논의해 공동으로 사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법정 세트는 파주에 마련됐고 개봉순서와는 역으로 ‘의뢰인’의 촬영이 먼저, 이후 ‘도가니’가 나중이었다. 

같은 장소에서 촬영됐지만 관객들은 어지간해서 이를 알아차리기 어렵다. 영화의 주제와 내용, 형식에 따라 두 영화의 세트는 달리 배치되고 구성됐기 때문이다.

‘도가니’는 성폭력 피해학생과 가해자측의 법적 공방을 다루면서 국내 법체계의 모순이나 ‘전관예우’, 법조계의 비리 등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원칙보다는 돈과 권력에 따라 차별적인 법의 부당한 권위를 고발한다. 이를 위해 실제보다 판사석을 높이는 영화적 ‘연출’도 보탰다. 



‘의뢰인’은 법정의 사실적인 재현에 노력을 쏟았다. 이 영화에선 시신이 없어진 살인사건을 두고 희생자의 남편이 용의자로 지목된 가운데 의뢰인의 혐의를 부정하는 변호사와 유죄를 입증하려는 검사간의 공방이 치열하게 벌어진다. 이 영화를 가장 돋보이게 하는 장치는 지난 2008년 국내에 도입된 국민참여재판이다. 미국의 시민 배심원제도와 비슷한 것으로 마치 관객이 법정에 있는 듯한 생생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제작진은 정확한 법정 재현을 위해 법률자문과 범죄자문을 위해 변호사, 학자, 경찰, 수사관, 문서감정사등 전문가 8명의 자문을 받았다.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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