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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정덕상 정치부장] 안철수가 깐 백신 그리고 바이러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서울시장 선거 불출마를 내년 대통령 선거와 연결 지어 정치공학적으로 해석할 생각은 없다. 그가 지금껏 살아온 선명한 삶의 궤적에 대한 모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황당하다. 폭발적인 지지를 받은 안철수 현상은 6일 만에 끝났다. 현실정치에 대한 피로와 불만이 응축해 폭발했던 대중의 바람도 일장춘몽으로 끝났다. 그가 던진 메시지가 소동, 또는 해프닝이 아니라 정치개혁의 동력으로 작용하기를 기대한다.
스스로 공식 출마 선언한 것도 아니고 다만 출마를 고민 중이라고 했는데, 김칫국부터 마셨으니 딱히 안 원장에게 할 말은 없다. 하지만 그는 직ㆍ간접으로 역사의 흐름과 현실정치의 개혁과 서울시장으로서의 포부를 밝혔다. 한쪽 발만 걸친 것 같지만 정치권의 영입대상 0순위인 그는 현실정치에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와 잠깐의 회동을 갖고 그는 담담하게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분의 굳은 의지를 확인했다. 자격 있는 분의 출마 의지가 강해서 저는 원래 정치를 하던 사람이 아니니 본업으로 돌아가겠다”고. 박 이사와의 오랜 우정과 신뢰에 따른 인간적 고뇌가 가슴에 와 닿는다. 도덕성이 자신들의 전유물인 양 하던 진보진영에서 후보 단일화 대가로 2억, 7억원의 뒷돈이 오가는 추악한 현실에서 아름다운 단일화, 아름다운 양보다. 안 원장의 이미지처럼 쿨하다.
그래도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민생과 동떨어진 이념 대결, 스스로 ‘봉숭아학당’이라고 비하하면서도 계파논쟁과 정치놀음으로 날을 새우는 기성 정당이 우왕좌왕하는 꼴을 관람하는 대중은 안철수의 하이킥이 통쾌했다. 다음은 어퍼컷을 고대했다.
우리 사회의 희소자원, 안철수를 지켜줄 각오도 했다. 시대를 앞서는 비전과 꾸준한 천재적 노력으로 독보적 영역을 개척하고 성과를 망설임 없이 사회와 공유했다. 지도자를 자임하는 이들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자질과 미덕을 갖췄다. 정치인들이 현실정치의 벽을 들먹이며 거품론을 제기할 때도, 대중은 안 원장만큼은 탤런트 정치가나 포퓰리스트가 아니라고 확고히 믿었다.
자연인 안철수의 선택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그의 출마 검토가 즉흥적인 게 아니었냐는 생각이 든다. 진지하고 구체적으로 더 나은 세상을 구상한 사람이라면 며칠 동안 세상을 달구었던 대안세력에 대한 갈망과 기대, 안철수 돌풍의 의미를 그렇게 쉽게 저버릴 수 있느냐는 아쉬움이다. 정치적 소신과 정책으로 심판받는 정치가, 그리고 선거가 사적 관계보다 못한 걸까. 공인의 제1 덕목인 선공후사(先公後私)를 버렸을 때 언뜻 드는 생각, ‘안철수도 결국은 강남좌파, 그것도 낭만적인 강남좌파.’ 그렇다면 안 원장은 백신을 깐 게 아니라 바이러스를 퍼뜨린 셈이다. 국민이 등을 돌리면 정치의 오염을 정화하지 못한다. 안철수 현상 이후, 정치에 대한 냉소와 혐오증은 더욱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정치의 희화화도 우려된다. 후보 선정도 미룬 채 안 원장의 입만 쳐다보며 가슴에 손을 얹고 뼈저리게 잘못을 반성하겠다던 정치권은 하루 만에 과거로 돌아갔다. 후보군은 그 나물의 그 밥이다.
안 원장은 대권 출마를 묻는 질문에 가당찮다고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정치는 살아 있는 생물이다. 변화무쌍하다. 이제부터 업그레이드된 ‘정치버전2’를 준비해 내놓을지, 아니면 해왔던 것처럼 이 시대의 멘토로 남을지는 순전히 그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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