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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귀요미와 카리스마…두얼굴의 그녀, 박정현
가녀린 체구에서 터져나오는 폭풍성량…인생에 좌절하던 그때 ‘나가수’를 만났다
대학 졸업후 여유생겨 ‘나가수’ 참여

어딜가도 모두들 알아봐 주니

고맙긴 하지만 불편한 점도 없진 않아


최고로 꼽는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한국·미국 오가던 내 마음에 꽂혀

조용필 선배 졸라 허락 받아내


나이들어 우연히 찾아 온 인기

놓지 않으려 발버둥 치긴 싫어





요정이 찾아왔다. 박~정~현~. 박정현(35)이 광화문의 헤럴드경제 편집국을 들어서자 많은 기자들이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MBC ‘나는 가수다’ 이전만 해도 없던 현상이었다. 박정현은 원래 노래를 잘 부르는 디바였지만 ‘나가수’를 통해 21세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디바로 다시 태어났다.

30대 후반에 접어든 나이에 귀엽고 소녀 같은 매력이 발견돼 ‘국민요정’이라는 캐릭터도 얻었다. 귀엽고 작은 박정현이 노래할 때는 엄청난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반전과 대비가 박정현 효과를 증폭시켰다.

사람들이 박정현에게 악수를 나누고 난 후 던지는 질문도 한결 같다. “작은 체구에서 어떻게 그런 폭풍성량이 나오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박정현은 “나도 잘 모른다. 나도 그 답을 알고 싶다”면서 “목소리가 얇고 미성이라 광범위하게 어필하는 데 유리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은 든다”고 말했다. 어쨌든 박정현은 노래라는 무기를 사용하면 폭발적 힘이 발휘됨이 증명된 것이다.



■‘나가수’가 일으킨 변화, 비포 앤 애프터

박정현은 ‘나가수’를 통해 인생 자체가 바뀌었다고 했다. 박정현은 “나를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많아 정말 감사하다. 미장원, 식당에서 나를 알아보던 사람이 전에는 3명 정도 있었는데 이제는 전부 다 알아봐주신다. 하지만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 좋으면서도 조금 불편하기도 하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박정현은 ‘나가수’가 조금 더 일찍 시작했거나, 나중에 방송됐다면 자신은 ‘나가수’에 참가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만큼 ‘나가수’가 자신의 노래 인생에서 시의적절하게 찾아왔다는 의미다.

박정현은 “내가 음악적 활동을 줄이고 방향 설정을 하며 약간 좌절하기도 한 찰나에 ‘나가수’를 만났다”고 말했다. 1년여간 가수 활동을 중단한 채 만학도로 공부에 매진해 지난해 5월 컬럼비아대학을 졸업하고 자신의 음악 활동을 줄이고 음악인생에 대한 계획을 잡고 있을 때였다.

박정현은 “30대 후반으로 접어드는 나이대에 플랜을 짤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비교적 여유가 있어 ‘나가수’를 했다. 그런데 여기에 맞춰 모든 스케줄이 재조정되더라. 뒤통수를 맞은 셈이었다”고 밝혔다.

박정현은 계속 새로운 걸 준비하면서 힘도 들고 스트레스가 없지 않았지만 보람을 느끼는 듯했다. 그녀는 프로페셔널인 동시에 완벽주의자다. 사력을 다해 준비하면서도 자신감과 자부심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잘난 체 하는 게 아니라 열심히 한 자의 여유 같은 것이다.

박정현은 “나가수의 취지에 반대하는 가수들도 많았는데, 나는 이걸 하면서 내 음악을 생각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같은 가수가 나갈 수 없는 일요일 저녁 시간대에 나갈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고 말했다.



▶‘부활의 ‘소나기’에서 조수미의 ‘나 가거든’, 이정선의 ‘우연히’를 직접 선택해 자신만의 색채로 뽑아냈다. 이 노래들은 어떻게 선택했나?

“미션곡으로 주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순간 순간 선택한다. 새롭게 시도해볼 만했다. 같은 멜로디가 계속 반복되는 ‘우연히’는 대중이 새로운 느낌이 들게 만들어야 하는데 하면서 연기를 했다.”

▶사람들은 조용필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를 ‘나가수’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노래라고 한다.

“2001년 컬럼비아대학에 유학 가서 2002년 월드컵 가수로 다시 왔다. 그 노래는 그렇게 왔다 갔다 하는 내 마음과 심정을 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당시 음반에도 담고 싶었다. 한번 노래를 듣자마자 노래를 따라할 수 있었다. 너무 나에게 와닿았다. 그때는 조용필 선배가 리메이크 허가를 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꼭 부르고 싶었다. 그래서 조용필 선배님께 허가를 받았다.”

▶노래를 부를 때 어떤 스타일로 부르나?

“노래마다 다 다르게 부른다. 주로 가사에 맞추고 분위기와 스타일을 결정한다. ‘하비샴의 왈츠’는 뮤지컬 하듯이 했고, ‘미아’는 영화 한 편 보는 느낌이 들도록 불렀다.”

▶박정현 노래의 일관된 주제는 사랑의 상실, 짝사랑 등이다.

“맞아요, 밝은 발라드가 부르기는 더 어렵다. 슬프고 우울한 발라드를 부르기가 더 좋다. 이게 나의 음악 기조다. 나는 내 속을 드러내는 스타일이 아니라 숨는 편이다. 그래서 그런 감정을 노래로 표현하려는 잠재욕구가 있는 것 같다. 노래로 표현하고 나면 마음이 정화된다.”

▶어린 시절 얘기 해달라

“아버지의 사업이 잘돼 부유하게 자랐다. 초등학교시절 간호사였던 어머니가 무려 1년간 병원에 입원했다. 엄마가 다니는 교회 사람들이 극진히 엄마를 간호했다. 이걸 보고 교회에 나가지 않았던 아버지는 사업을 접고 목자가 되기로 하고 신학교 진학해 내가 중학교 시절부터 목사가 됐다. 그때부터 수입은 많이 떨어졌다. 노래는 어릴 때 엄마가 가르쳐주었다. 엄마가 노래를 잘하셨는데, 나와 함께 동요를 자주 불렀다.”

박정현은 평범해보이지만 질리지 않고 아티스트적인 삶을 추구하면서도 튀지 않는다. 박정현의 사생활은 그 자체로 모범이다. 거창한 모범도 아니다. 그는 ‘무릎팍도사’에게 36년간의 인생 중 최고의 일탈이 어릴 때 답답한 집을 나가 쇼핑몰에 갔던 경험이라고 밝혔다.

▶지나치게 모범생이 아닌가?

“쇼핑몰 간 이야기를 했다가 친구들한테 비웃음을 들었다. 너무 모범생이면 재미없다는 것도 안다. 내 생활은 재미 없다. 하지만 꾸미고 싶지는 않다. 연기하면 얼굴에 다 드러난다. 그런데 이상하다. 나의 재미없는 것들을 그대로 말해주는 것을 대중은 좋아해주시는 것 같다.”

▶한국에 처음 와서 가수를 시작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한국말을 잘 못해 고생을 좀 했다. 고시원 같은 곳에서도 생활했다. 가수가 되기 전 지도를 갖고 다니면서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다녔다. 1집을 내고서는 지하철을 타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 물정을 잘 몰랐던 당시 생활은 힘들었지만 좋은 경험이었다. 부모, 가족과 떨어져 왔는데 사력을 다해야 했다.”

▶음반시절에는 좋았나?

“나는 데뷔앨범 ‘Piece’가 1998년에 나와 IMF 시기와 겹쳐 판매 욕심을 낼 수 없었다. 그래서 다음 음반들도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4집 ‘꿈에’로 데뷔 4년 만에 정점을 찍었다. 너무 일찍 찾아온 것 아닌가?

“당시 정석원 씨의 노래를 안하고 싶었다. 감정상 변화가 많은 이 노래가 이해가 잘 안됐는데, 정석원 씨가 믿어달라고 했다. 가사를 보면서 믿기로 했는데, 기대 이상의 반응이 나왔다. 나는 이 노래를 너무 많이 불러 지루해졌는데 대중은 이 노래를 지겨워하지 않는 것 같다.” 


▶싱어송라이터, 뮤지션 역량도 키워가고 있다.

“작곡가 황성제 씨의 노래를 3개만 받고 내가 가는 방향을 생각하면서 음반을 내기도 했다. 프로듀싱에 간여하고 있다. 꼭 부르고 싶은 노래들이 있다. 드라마 ‘그바보’ OST도 그런 곡이다. ‘눈의 꽃’의 작곡가이기도 한 마츠모토 료키에게 찾아가 매달렸다. 원래 작곡가에게 매달리는 성격은 아닌데, 만나서 좋다고 말하고, 영어로 가사를 썼다.”

▶가수는 트렌드, 대중이 좋아하는 것 잘 알아야 하는데 그런 감각이 있나?

“그런 감각이 약하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CF, 영화, 드라마 명대사를 듣는다. 친구들은 대학에서 영어 가르치는 등 주로 교포다.”

▶연예계에 친구가 별로 없을 것 같은데.

“김조한 오빠 정도밖에 없다. 요즘은 오빠가 나보다 한국 문화를 더 모르는 것 같다. 가족도 있고 멘티들도 많고 사회생활이 많아 그런 것 같다.”

▶컬럼비아대학 동문인 우타다 히카루를 만난 적이 있나.

“만난 적이 없다. 그녀가 휴학할 때 나는 다니고 해서 나와는 안 맞았다. 우타다 히카루는 졸업은 못한 걸로 알고 있다. 나를 우타다 히카루로 아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어나더 아시아 가수라고 했다. 그런데 위키피디아를 보다 컬럼비아대 동문 이름 끝에 ‘리나 박’이 있어 살짝 떨렸다.”

▶당신은 노력형인가,천재형인가.

“둘 다 적당히 가진 것 같다. 대충대충 하는 것은 용납 못한다. 프로페셔널리즘과 완벽주의다.”

▶현재 인기를 어떻게 받아들이나?

“좋다. 나이가 들어 온 인기라 조금 어른스러워질 수 있다. 인기는 결국 떨어진다. 자연스럽게 내려와야 하는데 안 내려오려는 전략을 쓰는 경우를 보곤 했다. 자연스럽게 내려가 다음 행보를 잡는 게 더 중요하다.”

▶예술성과 대중성 사이에서 고민하나?

“대중가수니까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신경을 안 쓸 수는 없다. 완성도와 깊이도 고민한다.”

▶7집 가수인데 다음 음반은?

“8집은 연기한 상태다.”

▶박정현 음악의 고향은?

“CCM(복음성가)이다.”

▶노래 외의 취미는?

“독서다. 소설 읽기. 그동안 못 읽은 책이 집에 쌓여있다.”

▶결혼 계획은?

“음악과 대학공부 두 가지를 양립하며 포기한 것들이 많다. 지금은 결혼보다는 연애부터 하고 싶다. 남자친구를 사귈 수 있을 것 같다.”

▶몇살까지 노래 부를 것 같은가?

“평생 불렀으면 좋겠다. 조글조글해져도 스페셜 무대를 갖는 그런 가수였으며 좋겠다.”

박정현의 인터뷰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를 나에게 뽑아내라면 솔직함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서병기 기자/wp@heraldcorp.com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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