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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안미녀’…이소영이거나 당신이거나, 그런 누군가의 삶
KBS2 ‘동안미녀(극본 오선형 정도윤, 연출 이진서 이소연)’는 드라마가 전파를 타는 60분동안 무엇이든 예측가능한 드라마다.

앞일이 뻔히 보이는 이 드라마는 요즘 인기있는 트렌디 드라마답지 않은 유치함과 진부함이 골고루 섞여있다. 캐릭터도 빤하다. 두 명의 ‘백마 탄 왕자’와 그의 사랑을 받은 남루한 한 여자, 도도하고 남부러울 것 없으며 사랑 앞에 질투의 화신으로 돌변하는 악녀가 얽혀든 사각관계 스토리에 ‘비밀 사수’, ‘닳고 닳은 현실과 멀어진 꿈’ 코드가 접목됐다.

시청자들은 이러한 드라마에 기대를 갖지 않는다. 때문에 처음부터 대박을 불러올 드라마는 결단코 아니었다. 그런데 최근의 조짐은 이렇다. ‘동안미녀’는 8회 방송분을 거치는 동안 꾸준한 시청률 상승을 기록하고 있다. 꽤 정직한 상승세다. 6년만에 안방으로 돌아온 장나라는 드라마 초반 우려는 크고 기대는 적었다. 2일 첫 방송에서 6.1%(AGB닐슨미디어리서치)의 시청률로 출발을 알린 것에서 이제는 12.8%(5월24일 6회)를 기록하며 매회 기록 경신 중이다. 월화 안방에서 장나라는 또 한 명의 로맨틱코미디 퀸 윤은혜를 살며시 눌러주며 2위 자리로 올라선 것이다.

유치하고 뻔하지만 드라마는 현실과 닮아있다. 궁색하고 비루하다. 소영(34)이자 소진(25)인 그녀의 삶은 심지어 처절하기까지 하다.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정확히 16년 전에는 의상디자이너의 꿈을 키웠던 여고생이었다. 꽤 괜찮은 대학의 합격증명서를 받아들고 기분좋은 탄식도 종이 한 장으로 감춰둔 채 집으로 달려왔다. 혼자보다는 가족과 나누는 기쁨을 원했다.

이 여자의 악몽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그 악몽은 현실에 디딘 발을 절대로 뗄 수 없는 형벌이다. 시지프스(Sisyphus)가 언덕 아래로 굴러내려오는 커다란 바위를 하염없이 밀어올려야 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 가정의 비극은 ‘부도’로부터 온다. 원래 그렇다. 그 탓에 대학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삶의 최전방으로 뛰어든 이소영의 삶은 당연히 녹록치 않다. 그녀는 온몸으로 ‘나는 약자’라 한다. 그렇게 저렇게 먹고살기 위해 버티는 삶이다.

시간이 가니 나이를 먹는다. 여자나이 서른넷, 직장에서도 마다하는 나이가 된다. 다니던 직장에선 어거지로 밀려났다. 그녀 인생의 두 번째 악몽같은 순간은 여기서부터다. 이제 그녀는 25세 ‘동안미녀’가 돼 ‘참을 인(忍)’ 자를 세 번씩 새겨가며 막내 디자이너로 버티게 된다. 

얼굴 위로 선배 디자이너의 가시같은 손바닥이 날아들어도 참고, 자신을 끌어내리기 위한 억지 함정에 빠져도 참는다. 오랜 꿈이 담긴 단 한 벌의 재킷에 인생을 걸었으면서도 음모로 물거품이 되고 만 현실도 참는다. 안 되는 밸리댄스까지 춰야하니 할 말이 없다. 성인군자가 따로 없다. 라고 말한다면 좋겠지만, 억울해도 참아야 하는 현실이다. 돈보다 값진 꿈이라는 환상이 동화처럼 배경으로 칠해지고, 꿈보다 비루한 돈이라는 현실의 고단함으로 덕지덕지 얼룩진 삶이기에 참아야 한다. 이게 바로 인지상정이다, 정도로 한다.


의외의 곳에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동안미녀’를 애청하는 서울 한남동의 김모(30)씨는 “솔직히 처음에는 유치하고 진부한 드라마라고 생각했다. 왜 이렇게 뻔한 이야기를 굳이 드라마에서 보여줄까 했는데, 한 회 한 회 지나갈수록 이 여자의 삶이 어딘지 내 삶과 닮아있다는 걸 알았다. 하루에도 박차고 나오고 싶은 현실에도 참고 꿈도 잊은 채 달려가기만 하는 나를 보게 된다”고 전했다. 시청자게시판에도 비슷한 사연은 올라온다. “남의 이야기 같지 않다. 이제 서른을 넘긴 나이에 나도 언젠가 직장에서 어린 후배들에게 치이게 되지 않을까 불안해한다. 드라마는 그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다”면서 같은 마음을 전했다.

‘동안미녀’가 보여주는 것은 현실에 발을 딛고 선 비슷한 또래 여성들의 분투기와 같았다. 장나라처럼 한 쪽 구두의 굽이 부러진다고 다른 쪽의 구두굽마저 잘라내진 않을지언정 버티고 견뎌야하는 삶이란 매한가지다. 이제 겨우 6회, 18회까지 가기엔 갈 길이 너무나 멀다. 이내 비밀탄로의 순간을 앞두고 있는 ‘동안미녀’지만 짧은 3분의 1이 보여준 그림은 이소영이거나 혹은 당신이거나 한 누군가의 삶의 한 장이었다.

<고승희 기자 @seungheez>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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