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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inter’s letter>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
<육성연 기자>유일하게 피카소와 비교되는 추상화가 바실리 칸딘스키. 그가 이제 와서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다면 그것은 아마도 그의 두 번째 여자인 가브리엘레 뮌터(Gabriele Munter)일 것이다. 그녀에게 전하는 편지를 통해 추상화에 대한 그의 신념과 사랑에 대한 스토리를 들어보자.  

To. Gabriele Munter

당신에게 이 편지를 보낸다면 나에 대한 미움이 아주 조금이라도 줄어들지 궁금하오. 아직도 당신을 ‘엘라’라는 애칭으로 여전히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의 엘라. 당신에게는 얘기 안 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난 어릴 적부터 끊임없이 뭔가를 동경했었지. 하지만, 그 대상이 무엇인지는 잘 몰랐어. 어른이 되고도 한참 후에야 내 가슴을 뛰게 한 당신과 추상화를 만나고 나서 알게 되었지.    

당신도 알다시피 난 법대 교수직을 포기하고 30세의 늦은 나이에 화가가 되기로 했어. 모스크바에서 열린 인상주의 전시회였던가? 난 클로드 모네의 <해질 무렵의 건초더미>라는 작품을 보고 비로서 내가 찾던 동경의 대상을 만났던 거야. 건초더미를 그렸는지 분간조차 안 될 정도로 불분명하던 형태. 미술의 추상성을 발견한 그 그림과의 만남이 바로 내 추상화에 대한 서곡이었지. ‘대상으로부터 이탈’하여 정신을 강조한 단순한 논리의 추상화를 간혹 난해한 그림으로 보는 이들이 있어. 자신의 느낌을 음악가가 악보로 옮기듯이, 화가는 선과 색채로 남긴 것에 불과한데 말이지. 자랑으로 하는 얘기가 아니라, 내가 제시한 새롭고 아름다운 추상성이라는 길이 현대회화의 발전에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해. 이건 나와 함께 추상화를 그렸던 화가로서 당신도 인정하는 부분일 거라 믿으오. 하지만, 선구자에게 가장 필요한 건 어떠한 욕설에도 꿈쩍거리지 않는 두꺼운 얼굴이었어. 그렇지 엘라? 추상화를 그리던 우리를 향해 쏟아진 비평들. “끔찍이 더러운 색채놀이와 더듬거리는 선, 너저분한 쓰레기들, 타고난 저능아들”까지는 그래도 참을 만한데, 나 같은 댄디남에게 “촌스런 옷을 입은 자들”이란 평은 정말 못 들어주겠더군. 

두 번째 내 동경의 만남은 분명히 당신 엘라였어. 이미 깨어진 사랑이라 해도 그 순간의 사랑은 진심이었다오. 내가 36살의 유부남 교수로 25살의 어린 제자였던 당신을 만났을 때가 생각나는군.내가 문을 연 팔랑크스 미술학교에서 엘라는 최초의 여성제자였지. 시대를 앞서 간 여성이어서 그랬을까. 매우 이례적으로 남성과 동일한 교육을 받은 엘라는 독립심과 뛰어난 재능으로 처음 내 가슴을 뛰게 했지. 

Couple Riding 말을 탄 연인, 1906
당신과 함께 있는 모든 시간은 내가 동경해오던 한 폭의 그림이었어. 기억나오 엘라? 무르나우의 시골집을 사서 우리가 동거할 때, 좋아하던 자전거를 타고 야외스케치를 그리러 자주 나가곤 했지. 난 당신을, 당신은 나의 초상화를 그리며 아름다운 숲에서 그림작업을 나누던 추억들. 그렇게 빛났던 순간들을 지나 우리는 왜 여기까지 왔을까∙∙∙.

인간이란 원래 그렇게 타고났듯 우리는 서로에게 많은 잘못을 저질렀던 것 같아. 당신의 자유로운 정신이 매력적이어서 사랑했지만, 나와의 관계에서도 너무 자유로웠던 당신이 점점 싫어졌던 건 사실이니. 하지만, 결정적인 내 잘못은 당신과 법적으로 결혼하겠다는 약속을 못 지킨 거야. 당신의 오빠마저 날 사기꾼이라고 할 만큼 첫 번째 아내와의 이혼 후에도 난, 당신이 그렇게도 원하던 결혼을 망설였어. 하지만, 내가 모스크바로 훌쩍 떠나버린 후, 젊은 러시아 여인 니나와는 만나자마자 결혼한 것을 당신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나에게 모든 것을 맞춰주는 니나를 통해, 난 당신과의 사랑에서 사라져버린 평안을 되찾으려 했던 것 같아.

알고 있었어. 내가 떠나버린 후 당신이 스톡홀롬에서 얼마나 날 기다렸는지. ‘병자’라는 제목으로 당신이 그린 그림에서, 하염없는 기다림으로 병을 얻게 된 여자가 바로 당신이라는 것도. 한 번만 만나달라는 당신의 부탁을 내가 거절하여 심각한 우울증에 빠진 일도. 그 충격으로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는 것도. 내가 잘못을 뉘우친다고 서명하면 남겨진 짐과 그림을 보내주겠다고 변호사를 통해 내게 알리기까지 그대의 상처가 얼마나 깊었는지도. 다 알고 있었어∙∙∙.

하지만,사랑을 먼저 끝난 자가 못댄 사람이 된다는 것, 그리고 여자를 침묵으로 기다리게 하는 남자는 이미 끝난 사랑이란 것도 난 알고 있었지. 그리고 ∙∙∙. 그때의 난 독일도 당신도 영원히 잊고 싶었다오. 그들에게 죽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을 정도로.

엘라. 이 그림을 봐. 유년시절에 들었던 중세기사 이야기를 상상하며 그린 그림이야. 연인들 머리 위로 황금색 잎들을 지닌 자작나무, 청색 빛 하늘의 신비로움, 무엇보다 가장 가까이에서 기대어 있는 연인들.

사실 난 ‘벌 받을 생각이 아니라면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서는 안 된다.’라는 신념을 갖고 있었어. 어릴 적 부모의 이혼, 평생 러시아∙독일∙프랑스 3국을 다니면서 맘 둘 곳 없었던 내 고향의 부재, 청기사파의 내부분열로 잇따른 동료의 비난과 배신, 그리고 엘라 당신을 통해 난 인간관계에서 가까운 사이는 그 관계를 해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 하지만, 사실 내 마음속에는 이 연인처럼 가장 가깝게 기대며 살고 싶은 맘이 간절했는지도 몰라. 자유롭게 혼자 걷겠다는 당신을 버리고, 이 그림처럼 내 인생의 말에 올라타 준 니나를 배우자로 선택한 걸 보면∙∙∙.

엘라. 그럼에도, 당신은 전 재산을 뮌헨시에 맡기며, 우리 동료가 함께한 청기사파의 그림에 대한 재단을 설립했다고 들었어. 나의 그림이 전시되고 연구되는 데 큰 역할을 한 당신에게 고맙다는 말은 꼭 전하고 싶었다오. 

엘라. 당신이 날 이해할 수 있을까. 내가 니나를 당신보다 더 사랑해서 결혼한 것은 결코 아니며, 난 오직 당신을 통해서 진정한 위대함에 이를 수 있었다는 고백을. 그래도 당신의 커다란 상처가 나에 대한 이해를 막는다면, 이것만은 알아주길. 당신과의 시절이 내 생애 최고의 시절이었고, 다시는 그 시절처럼 작업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From Wassily Kandinsky 

http://www.camhe.co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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