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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혼수 가전 보던 예비 부부 “진짜 가격이 뭡니까”
[헤럴드경제=도현정ㆍ서지혜ㆍ원호연 기자]“저희가 워낙 싸게 드리는 거라, 개별 가격을 공개하면 다른 판매처에서 항의가 들어오기 때문에 개별가는 말씀드릴 수 없어요”

바쁘게 계산기를 두드리던 직원이 제품별 할인가를 묻는 질문에 멈칫 하더니 이내 종이에 가전 가격을 적어 내려갔다. 제품 가격 총합에서 ‘이만큼을 빼 주겠다’고 강조하는 동안 계산기와 견적서를 오가는 현란한 손놀림에 정신이 혼미할 정도다. 분명 다른 판매처와 가격이 다른데, 왜 이 가격이 나오는지는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개별 제품 가격이나 할인금액이 어떻게 결정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손에 쥔 정보가 없으니 질문을 하려 해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얼떨떨한 기분으로 들고 나온 견적서에는 직원이 뭉뚱그려 적어놓은 할인 가격만 덩그러니 적혀있었다.

윤달이 지나면서 유통가마다 혼수 수요를 겨냥한 마케팅이 한창이지만, 업체별 할인 정책이나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정보가 달라 예비 부부들이 혼선을 겪고 있다.
지난 20일 한 가전제품 매장에서 직원이 소비자에게 혼수 가전 가격을 설명하고 있는 모습

본지가 지난 20일 TV, 냉장고, 세탁기, 청소기, 에어컨 등 5가지 가전제품의 가격을 조사한 결과 백화점과 대형마트, 양판점에서의 가격이 천차만별인 것으로 나타났다.

롯데백화점 본점에서는 LG의 제품들로 혼수를 구성했을 경우 총합이 951만원이었다. 이내 직원이 제시한 최종 금액은 713만원9000원으로 내려갔다. 현재 백화점과 제조업체에서 혼수 수요를 고려해 대대적인 할인행사를 진행하는데다 130만원 상당의 백화점 상품권, 임직원 할인까지 보탠 결과다.

삼성 제품들은 상품권 증정 등의 행사까지 고려하면 최종 가격은 669만원으로 내려갔다. 판매 직원은 “삼성이 이렇게 큰 폭의 가격 할인을 제공한 적이 없었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그러나 제품 개별 가격은 공개를 거부했다. 워낙 할인을 크게 하다 보니 다른 판매처에서 항의가 들어오기 때문에 입장이 곤란해진다는 논리에서다.

이마트로 자리를 옮겨보니 동일 제품으로 가격 비교를 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백화점 직원이 “신혼 부부들에게 가장 잘 나간다”고 강력하게 추천했던 제품이 정작 이마트에는 없었다. 비슷한 사양의 LG 제품으로 가격을 뽑아보니 이마트에서는 877만7000원이 나왔다. 직원은 77만원 상당의 신세계상품권을 내세워 800만7000원을 최종가로 제시했다. 삼성 제품은 70만원의 상품권 할인까지 고려하면 704만4000원이 최종가격이었다.

하이마트는 LG와 삼성, 모든 제품에 대해 개별 가격을 공개하지 않았다. 직원은 “제품을 사기 전까지는 개별 가격은 알려줄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가격 할인 정책도 ‘캐시백’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우선 신용카드로 제품을 결제하면 카드사의 포인트 결제로 금액 일부를 갈음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뽑아본 최종 가격은 LG제품이 804만원, 삼성이 502만원. 직원은 “삼성 제품의 이 가격은 오늘까지만 특가로 진행하는 것”이라며 선택을 재촉했다.

3곳을 발품 판 끝에 혼수 가격은 800만원대에서 최종 500만원대까지 300만원 상당이 뚝 떨어졌다. 그러나 같은 제품, 내지는 비슷한 사양의 제품 가격이 300만원까지 차이가 나는 배경에 대한 명확한 설명은 없었다.

제품별 가격이나 할인률, 할인 정책 등에 대한 질문에는 어느 곳도 속 시원한 답을 주지 못했다. 결국 내가 마련한 혼수 가격이 적정 가격인지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지난 20일 혼수 장만을 위해 가전제품 매장을 찾은 예비 부부들이 세탁기와 TV 등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유통 업체를 거칠 때마다 본래 고려했던 취재 품목의 크기가 커지는 ‘기현상’도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본래 취재 품목은 79㎡ 상당의 신혼집에서 첫 출발을 하는 예비 부부들이 고를만한 제품들로 정했으나 점포에 들어온 물건 사정과 직원들의 제안을 고려하다 보니, 700ℓ로 생각했던 냉장고는 800ℓ로 커졌다. TV는 42인치를 보여달라 했지만 “신혼 부부들이 가장 많이 찾는 것은 47인치”라는 말에 46인치, 47인치로 점점 커졌다.



kate01@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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