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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골프장의 발견] 킹스데일 골프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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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 홀의 지옥 벙커


‘한국 골프장의 발견’ 시리즈는 골프 문화의 뿌리를 깊게 하는 지속적인 골프장 탐사 작업입니다. 단편적 기사나 후기 형식을 넘어 인문적 글과 사진, 영상물을 통합하여 한국 골프코스들의 속살을 깊이 들여다봅니다. 앞 편들에서 명문 회원제 클럽과 이용료가 비싼 코스들을 톺다 보니 독자들로부터 대중적인 골프장에 대한 탐사 요청도 많았기에 이번에는 킹스데일골프클럽(GC)에 갑니다. 이 컨텐츠는 골프장 협찬 없이 직접 경험하여 작성한 것입니다.<편집자 주>

‘시대가 원하는’ 알찬 퍼블릭 코스
좋은 골프장이란 어떤 곳일까요. 누구나 가보고 싶어하지만 아무나 갈 수 없는 명문 회원제 클럽들도 물론 좋은 골프장이겠지만, 누구든 갈 수 있으면서도 골프코스의 품질 덕목을 알차게 갖춘 곳이 ‘진정 좋은 골프장’ 아닐까요.

충주에 있는 <킹스데일GC>는 여러모로 알찬 퍼블릭 골프장입니다. ‘명문 회원제’라는 허울이 화려한 골프장들, 또는 퍼블릭 코스이면서도 ‘프리미엄’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비싼 이용료를 받는 곳들에 견주어 코스의 품질이 뒤지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더 나은 점이 적지 않은 골프장이지요. 우리나라의 골퍼들에게 지금 꼭 필요하고 골프 문화의 미래에도 보탬이 되는, ‘시대가 원하는 골프장’의 모습이랄까 싶은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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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데일 골프클럽의 위성사진


가 보면 가까운 충주 땅
충주에 있다 하면 서울에서 먼 것 같지만 이곳은 여주 남쪽에 바로 붙은 땅이고 중부내륙고속도로 나들목에 가까워서 실제로 차를 타고 가 보면 여주에 있는 골프장들에 비해 이동 시간의 차이가 별로 나지 않습니다.

충주는 옛날 고구려와 백제, 신라 사이에 쟁탈전이 벌어졌던 한반도의 한가운데 자리라 합니다. 강원도 황지에서 발원한 남한강 물이 충주호에서 머물다가 여주 신륵사 앞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충주 사람들은 그 물길 목에 통일신라 때 세워진 칠층석탑을 ‘중앙탑’이라 부르며 국토의 중앙 기운이 서려있다고 자부심을 갖는다는군요.

고속도로 나들목에 인접한 ‘충주일반산업단지’ 터에서 작은 동산 하나를 넘으면 바로 <킹스데일GC>가 있습니다. 이 근처 골프장들 중에서 고속도로에 가장 가까운 자리입니다.

‘산수 좋고 족보 있는’ 자리
이곳은 산과 평야가 만나 구릉과 계곡이 빚어지는 곳입니다. 물과 산이 좋은 곳이지요. 백두대간으로 치면 속리산 천왕봉에서 갈라져 나온 ‘한남금북정맥’의 보현산(764m)에서 다시 갈라진 ‘부용지맥’의 평풍산(395m) 기슭, 해발고도 150m~230m를 오르내리는 자리입니다.

이 뒷산 골짜기들에서 흘러내린 물이 골프장 터 앞에 커다란 ‘화곡저수지’를 만들고 이 물은 가까운 남한강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산과 물의 조화가 잘 갖추어져서, 흔히 말하는 ‘산수 좋고 족보 있는 땅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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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코스의 3번 홀 뷰


‘디자이너 캐릭터’가 강한 코스
2012년 문을 연 이 골프장은 처음부터 퍼블릭 코스로 계획되고 조성되었다고 합니다. 코스를 설계한 사람은 ‘송호’ 라는 분이며, 골프장을 지어서 운영하고 있는 <킹스데일주식회사>는 ‘솔브레인’이라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기업의 계열사로 알려집니다.

설계자인 송호 님은 <송추CC>, <남촌CC>, <부산 아시아드CC>, <거제 드비치GC>, <제주 세인트포GC> 등 국내외 60여개 유명 코스들을 설계하여 유명한 분이라지요. 저는 직접 친분은 없으나 그가 설계한 골프장들에서 적잖이 라운드 해보았는데 대개의 코스가 아름다운 가운데 도전적인 재미와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더군요.

<킹스데일GC>는 아마도 그의 골프코스 디자인에 대한 생각과 역량이 집대성 된 곳 아닐까 싶을 만큼 설계자의 생각과 특색이 강하게 엿보이는 코스입니다. 이 코스는 설계자의 개성과 설계 의도 중심으로 이해해야 하는 곳이라 생각합니다.

좋은 코스의 기본 조건이란
좋은 코스가 되기 위한 조건은 수없이 많겠지만 ‘▶자연 지형과 환경을 최대한 살려, ▶골퍼가 자연에 감응하면서, ▶한 홀 한 홀 마다 다른 도전을, ▶재미와 긴장감이 들고나는 드라마 속에서, ▶골퍼 실력의 차등에 따라 14개 클럽을 모두 사용하는 가운데 ▶적절하게 안배된 난이도 속에서 경험하도록 하고, ▶골퍼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도록 개성 있고, ▶특색 있는 아름다움을 살려내야 한다......’는 것들이 우선하는 중요 덕목들이라고 저는 대략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런 우선 조건을 두루 충족시키는 일은 평평한 땅에서도 쉽지는 않겠지만 거의 대부분의 골프코스를 산중에 조성해야 하는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런 어려움 가운데서도, 우리나라에서 ‘명문 코스’라고 일컬어지는 골프장들은 이런 조건들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충족하고 있는 곳이 대부분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이 <킹스데일GC> 또한 웬만한 ‘명문’들 못지 않게 좋은 코스의 요건을 많이 갖춘 곳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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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크코스 3번 홀


자연 흐름과의 조화와 감응
이곳은 오밀조밀한 산기슭과 골짜기를 따라 조성한 코스입니다.

자연 지형을 살려서 골프코스를 만드는 일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골프장을 조성하려면 한 홀마다 축구장이 몇 개씩은 들어갈만한 운동장을 만들어 내야 하는데 산골에 그런 자리가 있을 리는 없으니까요. 특히나 <킹스데일GC>가 들어선 산기슭은 품은 분지가 그리 크지 않고 협소한 골짜기들로 좁게 주름져 있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고민을 했을 듯합니다. 산과 골의 원래 모양에 되도록 상처를 덜 내고 새로운 생태의 흐름을 주면서 사람의 놀이 길을 허락 받는 작업이 쉽지 않았을 터입니다. 그런데 이 코스가 완성된 산과 골에는 깎아낸 상처와 덮고 메꾼 자국이 두드러지지 않아서 자연스러운 흐름에 끊김이 없어 보입니다.

골프 코스를 만들어 내려는 욕심과 공사 편의 위주의 이기심에 빠져 자연에 아픈 생채기를 낸 골프장들을 우리는 너무 많이 봅니다. <킹스데일GC>는 그런 면에서 꽤나 사려 깊은 코스입니다.

전략적인 시험, 창의적인 답안지
골프는 자연과 감응하면서 도전하는 싸움이고 자신을 극복하는 과정이라고들 합니다. 자신의 신체 능력과 지적 전략 역량, 인내심과 실천 수행력, 마무리 감각과 예의, 교만을 떨쳐내는 도덕적 수양 등을 다 갖추어야 잘 할 수 있는 스포츠라고 하니, 좋은 코스란 그런 모든 요소들을 두루 테스트할 수 있는 시험지 같은 것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이 코스에서 여러 차례 라운드를 했는데, 동반자가 남자 프로선수, 보기 플레이어, 여성분 등 다양했습니다. 실력과 샷의 비거리가 저마다 다른 분들이라 각각 다른 티잉 그라운드에서 다른 스타일의 공략법으로 플레이 했던 거죠.

그런 경험을 통해 보건대, 이 코스는 전략적으로 플레이 해야 하는 편이고 샷 마다 선택할 수 있는 공략법이 골퍼의 수행 능력과 상상력에 따라 다양합니다. 위협과 기회를 선택해야 하는 몇 개 홀에서는 보상과 징벌이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코스의 전체 길이도 7,332야드가 되니 다양한 실력의 골퍼가 코스 세팅의 변화에 따라 자신의 모든 클럽을 사용하면서, 그 모든 답안지를 매번 다채롭고 창의적으로 적어낼 수 있겠습니다.

설계자가 골프장 홈페이지에 각 홀마다의 ‘코스 레이팅’을 계산해서 공개해 놓은 것을 참고하면, 이런 면에서 설계자의 분명한 지향 의도를 느끼며 자기 실력에 맞게 플레이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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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크코스 6번 홀의 티잉그라운드 뷰


명문 골프장 급 ‘샷 밸류’
티샷을 잘 쳐서 원하는 곳에 보냈다 싶었는데 그곳이 예상하지 못한 불편함이 있는 자리인 경우, 티샷을 명백히 잘못 친 사람의 공이 레귤러 온을 시키기에 어렵지 않은 곳에 있는 경우, 도전적인 공략의 샷을 성공시켰는데 평범한 샷으로 공략한 이보다 이득이 없는 경우…… 이런 ‘불공정’한 경우가 많은 코스를 좋다고 할 수는 없겠죠.

<킹스데일GC>는 잘 친 샷에는 명확한 보상이 따르는, 이른바 ‘샷 밸류’가 높은 코스이며 공정한 코스라고 할 만합니다.

이 코스에는 여러 가지 위협과 함정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벙커들이지요. 특히 인, 아웃 코스 각 7번 홀의 군집 벙커들은 코스 설계자가 “절대로 들어가면 안될 곳”이라고 하는 경고인 동시에 한편으로는 “이곳을 넘어가면 천국이 있다”고 하는 유혹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크고 작은 경고와 유혹들이 리드미컬하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자연과 설계자, 그리고 골퍼가 함께 감응하고 즐기는 게임으로서의 골프의 매력이 흥미진진하게 발휘되는 코스라 생각합니다.

18홀 게임의 리드미컬한 드라마
플레이를 시작하는 홀에서부터 기승전결의 드라마 또한 완성도 높은 음악처럼 짜임새 있게 변주됩니다. 홀마다 생김새가 달라 시각적인 변화의 맛이 있고, 긴 홀과 짧은 홀, 어려운 홀과 쉬운 홀이 리듬감 있게 배치되어 플레이어의 심리가 이완과 수축을 반복하게 됩니다. 평지와 오르막, 내리막의 배치가 적절하고, 드로우 스타일과 페이드 스타일 골퍼 어느 한 쪽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지 않게 안배되어 있습니다.

레이크 코스와 힐 코스의 분위기 흐름이 극명하게 다르지 않아서 일관성 있는 호흡으로 플레이 할 수 있는 반면, 또 적당하게 다른 면도 있어서 한 교향곡 안에서 악장이 넘어가듯 조화롭게 느껴집니다. 이런 조화와 조합은 이용료가 비교적 저렴한 퍼블릭 골프장에서는 쉽게 경험할 수 없던 수준이라 생각합니다. 값비싼 명문 골프장들에서도 그리 흔하게 볼 수 있는 짜임새는 아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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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데일 제원


우아하고 정직한 그린
그린은 크고 우아한 모양입니다. 최근에 조성한 골프장들이 코스의 전장은 짧은 반면 그린의 난도를 지나치게 높인 곳이 많은데, 이곳은 코스 길이도 충분하고 그린의 경사와 난이도의 안배도 조화롭습니다. 그린을 공략하는 데 있어서도 한쪽에 위협요소가 있다면 반대편 한쪽으로는 그린 주변 어프로치가 쉽도록 배려해 놓았으며, 잘 쳐서 올린 공이 우연한 불행으로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받아 세워 주는 모양새입니다.

또한 숨어있거나 안 보이는 경사가 거의 없이 눈에 보이는 대로 굴러가는 ‘정직한 그린’인 것도 마음에 듭니다. 그린의 관리 상태는 기후의 변화에 따라 때마다 다소 다르겠으나 이용객을 많이 받는 퍼블릭 코스임을 감안하면 전반적으로 양호한 편입니다.(한동안 그린 관리상태에 대한 원성도 들렸는데 지난해엔 정상으로 돌아왔더군요)

조경보다는 코스 자체의 완결성
이 코스에는 특별히 비싼 나무를 심었다거나 하는 인위적 조경의 노력은 많이 보이지 않습니다. 골짜기에 코스를 내며 자연 풍경을 그대로 끌어들인 차경(借景)이 주로 도입되었다 할까요. 특히 레이크 코스 3번 홀은 그러한 조경 방식의 심미성이 잘 드러납니다. 깊이 파인 말발굽 모양의 아늑한 골짜기에 들어선 파3홀 티잉 그라운드에 서면, 그린 뒤의 그윽한 스카이라인과 그 아래 서늘한 숲에서 신화 속의 요정이 걸어 나올 듯한 느낌이 찾아옵니다. 그런 기묘한 아름다움은 자연을 끌어들이지 않으면 만들 수 없는 것이지요.(이 홀은 세 면이 숲에 둘러싸인 특성 때문에 응달이 오래 질 수 밖에 없을 것 같은데, 그린 관리에 각별히 더 노력하는 수고를 감수하고 이렇게 조경 연출 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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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 코스 5번 홀 전경


모든 홀에 뚜렷한 개성
매 홀들의 느낌이 각각 다르다는 점도 눈 여겨 볼 만합니다. 레이크와 힐 코스 각 7번 홀의 군집 벙커 모양이 서로 비슷한 것은 코스의 개성을 거듭 강조해 드러내기 위한 의도적인 설계 기술로 보이니 오히려 인상적이라 할 수 있고, 나머지 홀들은 각각의 개성이 뚜렷해서 선명한 기억으로 남습니다. 다만 레이크, 힐 코스 각 9번 홀이 둘 다 오르막이라서 각각의 코스를 마무리하는 기분의 음과 양 조화가 살짝 덜한 느낌입니다. 힐 코스 9번 홀은 은근히 드라마틱한 편인데 레이크 코스 9번 홀은 마지막 홀로서의 서사성과 심미성에 약간 아쉬운 점이 있어서 그런 느낌이 남는 듯합니다.(물론 이것은 ‘옥의 티’ 정도이고 제 개인적인 취향의 소견이지요)

퍼블릭 코스의 ‘은혜로움’
이렇듯 잘 짜인 코스임에도 이곳은 이용료도 저렴하고 예약하기도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잘 만들어준 골프장 소유주는 아마도 눈썰미와 경영의 통찰력이 예사롭지 않은 분인 듯합니다. 설계자와 의뢰자의 안목과 비전이 상당 부분 일치한 결과물이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최근에 새로 개장한 골프장들 가운데 ‘프리미엄 퍼블릭’이라 해서 회원제 명문 골프장 버금가는 수준으로 조성해 놓고 이용료를 비싸게 받는 곳이 제법 있는데, 이곳은 그런 편도 아니지요. 이 골프장 바로 이웃에 있는 <금강센테리움CC>가 최근에 대중제 퍼블릭 골프장으로 전환하고도 충주라는 지역적 핸디캡을 극복하고 상대적으로 높은 이용료로 마케팅하고 있는 것에 견주면 이곳은 상당히 소비자 친화적이고 ‘가성비’ 높은 코스임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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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소한 클럽하우스


클럽하우스와 식음 등……
이곳 클럽하우스는 퍼블릭 코스답게 간소합니다. 디자인도 실용적이고 깔끔하며 군더더기를 모두 덜어낸 느낌으로 흠잡을 데 없어 보이는 건물입니다. 코스는 시원치 않으면서 벼락부자 형으로 지어놓은 몇몇 회원제 골프장 클럽하우스보다 나은 건축물로 느껴집니다. 클럽하우스 음식 값도 저렴한 편이라 실속 있는 골프를 즐기려는 이용자들이 좋아하는 듯합니다.

그런 한편 저는 이 클럽하우스에서 좀 더 부드럽고 정겨운 느낌이 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이곳에선 왠지 건조하고 차가운 느낌이 살짝 듭니다. 어차피 간소한 컨셉의 퍼블릭 클럽하우스라면 지금처럼 가장 높은 곳에 군림하는 모습으로 짓는 것보다는 좀더 낮은 곳에서 올려다보는 느낌이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전반 끝나고 2층까지 올라가서 간식을 먹어야 하는 것도 골프라운드의 낭만을 반감하는 구조라고 느낍니다. 좀 '닫혀있는' 느낌이라 할까요.

클럽하우스 음식에 있어서도 가격이 저렴한 것에 더하여 좀 더 지역 특성이나 이벤트 지향의 특색을 반영하면 골퍼들도 좋아하겠다 싶습니다.

코스가 주는 다채로운 만족감에 비해서 클럽하우스의 문화는 상대적으로 약간 무미(無味)한 느낌입니다. 골프를 한다는 것은 골퍼들에게 작은 축제인데 이곳에 오는 분들은 골프만 치고 바로 고속도로를 타고 귀가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물론 그런 패턴이 요즘 골퍼들의 일반적인 추세라 할 수도 있고 이곳은 코스 자체로 승부하는 컨셉의 골프장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도 저는 이곳 클럽하우스에서 좀 더 향기로운 문화가 있다면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훨씬 더 많이 들 것 같습니다.

몇 가지 소소한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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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코스 7번 홀


7번 홀들의 ‘아름다운 지옥’

레이크 코스 7번홀, 힐 코스 7번 홀은 모양이 비슷하게 보입니다. 오르막 어프로치 샷을 해야 하는 곳으로 그린 앞 경사지에는 크고 깊은 여러 개의 벙커들이 위협적으로 입을 벌리고 있습니다. 아마도 각 코스의 7번 홀에 일부러 이렇게 비슷한 벙커를 조성해서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기려 한 설계 의도인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곳에 빠지면 반드시 한 번에 빠져 나와야 합니다. 아니면 벙커에서 벙커로 여러 번 헤맬 수도 있지요. 특히 힐 코스 7번홀은 전체에서 두 번째로 어려운 홀이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빠지면 악마 같고 지옥 같은 벙커이지만 멀리서 보기에는 참 아름답습니다. 코스 장애물 자체로 조경을 하는 설계 기법으로 보이는데 이 골프장은 특히 벙커들이 그 아름다운 조경 장애물의 역할을 많이 합니다.

멋지고 아쉬운 힐 코스 5번 홀
힐 코스 5번 홀은 높은 언덕 위의 티잉 그라운드에서 커다란 워터 해저드를 건너 넓은 페어웨이로 내려치는 티샷을 하는 홀입니다. 레귤러티 기준으로 340미터 정도 길이이고 심한 내리막이라 장타자들은 그린으로 직접 공략하고 싶은 욕망을 감추기 어려운 곳입니다. 워터 해저드가 비스듬한 사선으로 놓여 있어 골퍼가 자신의 비거리를 감안하여 티샷 방향을 선택해야 합니다. 참으로 전략적이고 멋진 홀이며 이 골프장의 시그니처 홀이라 할 만한데……

아쉬운 점은 그린 너머로 커다란 변전소가 한눈에 보인다는 것이죠. 이런 기능 시설이 있으니 우리가 문명 생활을 하는 것이지만 골프코스의 심미성과 낭만을 탐하는 입장에서는 많이 안타깝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이 홀에서 골퍼들의 시선이 변전소 쪽을 향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무언가 찾아낸다면 이 골프장 전체의 가치가 훨씬 높아지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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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크코스 6번 홀의 비치 벙커


레이크 코스 6번 홀의 ‘비치벙커’
레이크 코스 6번 홀은 오른쪽으로 휘어지는 도그렉 파5홀입니다. 장타자들은 세컨샷에서 투 온의 유혹을 느낄 수 있지만 오른쪽 숲은 그린 옆 끝까지 OB(Out of Bounds) 구역이고 왼쪽은 길다란 해저드 연못입니다. 그린으로 향하는 길목이 좁아 위협적인데 왼쪽 워터해저드 라인을 따라 길다란 모래사장 형태의 벙커를 ‘비치벙커’ 느낌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OB를 피해 약간 왼쪽으로 쳐도 해저드에 공이 굴러들어가 빠지지 않도록 잡아주는 ‘세이빙 벙커’ 기능을 준 거죠. 지형의 핸디캡을 오히려 이용해서 기능성과 심미성을 부여한 모습이 우아하게 보입니다.

사족(蛇足) ? 저평가와 가성비 사이
코스가 잘 빚어진 것에 비해 이 골프장은 저평가되어 있는 느낌입니다. 개장 시점에 즈음해서 ‘신설 골프장 중 10대 코스’인가 하는 상을 받은 적도 있다지만 그 뒤로는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인근의 골프장들에 비해 그린피도 저렴한 편입니다.

이용 요금이 저렴한 것이야 골퍼들에게는 고마운 일이지만 이 코스에는 지금보다 좀더 높은 가치가 매겨져야 마땅하다고 봅니다.

저평가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만, 코스 자체의 완결성에만 기댄 나머지 골프장 안에 이야기와 문화를 불어넣은 데 소홀한 것이 가장 아쉬운 점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골프장에서 정규 프로대회가 치러지는 것이 코스에 이야기를 부여하고 지명도를 올리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겠으나 꼭 그런 게 아니더라도, 레이크 코스 3번 홀, 힐 코스 5번 홀과 8번 홀, 각 코스 7번 홀 등에서는 뭔가 흥미롭고 풍성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만 더…… 이름이 왜 ‘킹스데일’인지 궁금합니다. ‘왕의 계곡’이라는 뜻인가 본데 골프장에 킹, 로얄... 이런 이름 붙이는 게 시대에 어울리지는 않아 보입니다(퍼블릭 코스에 어울리는 이름도 아닌 듯 하고요). 이 좁은 산골짜기에 왕기가 느껴지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자연과 인간에 친한 이름이나 한글 이름을 지어 붙이면 더 값진 느낌이 나지 않을까요.

이 코스를 사랑하여 아쉬운 마음에 덧붙이는, 그야말로 사족(蛇足)입니다

글 류석무
글쓴이는 기업 경영자입니다. 하는 일이 골프에도 다소 관계를 맺고 있어서 골프 상식에 밝고 업무상 골프장을 많이 다니다 보니, 좀더 생각과 목적이 있는 골프를 하겠다는 생각에서 ‘도화도주’라는 필명으로 골프에세이를 쓰고 있습니다. 이 탐사기에 대한 의견은 글쓴이에게 이메일(smyou21@naver.com) 보내 주셔도 감사히 받아 반영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편집자 주)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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