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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노승의 골프 타임리프] 라이더컵, ‘없어질 뻔했던 대회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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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뮤엘 라이더(왼쪽)가 유럽팀의 캡틴, 조지 던컨에게 라이더컵을 수여하는 장면.


라이더컵은 1927년 미국에서 제1회 대회가 열렸다. 미국과 영국의 프로골퍼들이 2년에 한 번씩 만나서 친선을 나누자는 취지로 시작했고, 우승컵은 영국의 사업가이며 얼혈 골프 팬이었던 새뮤엘 라이더가 기증했다. 우승컵은 순금으로 제작되었고 높이 43cm, 너비 23cm, 무게 1.8kg에 불과한 아주 작은 트로피다.

영국을 따라잡은 미국 골프

미국에 골프가 도입된 시기는 19세기 말이었는데, 당시 골프 최강국인 영국에서 이민 간 골퍼들이 프로골프의 대세였고, US오픈과 디오픈의 우승자도 언제나 영국인이었다. 1911년 존 맥더머트가 미국 태생 최초로 US오픈에서 우승한 후 영국 선수가 다시 우승하기가 어려워졌고, 1922년에는 미국의 골프 스타였던 월터 하겐이 미국 태생 최초로 디오픈에서 우승했다.

1924년 하겐이 다시 디오픈 우승컵을 미국으로 가져갔고, 1926, 27년에 바비 존스가 연달아서 디오픈 우승컵을 들어 올리면서 골프 최강국의 지위는 미국으로 완전히 넘어갔다. 이제 영국에는 과거 챔피언의 자존심만 남아있고, 우승컵은 모두 미국이 보유하게 된 것이다.

1927년 제 1회 라이더컵

월터 하겐이나 바비 존스 같은 미국의 골프 스타들은 골프 종주국인 영국의 전통과 갤러리를 아주 좋아했다. 영국에 가려면 일주일 동안 대서양을 항해하는 고된 일정이었지만 더 많은 미국 선수들이 디오픈에 도전하기 위해서 대서양을 건넜고 영국 선수들과 친선교류의 폭이 넓어져 갔다.

‘미국 골프의 맏형’격이었던 하겐은 영국의 프로인 아베 미첼과 친선대회 개최를 의논했다. 그 소식을 들은 새뮤엘 라이더가 우승컵을 기증해 1925년 영국에서 시범대회가 열렸고, 1927년에 미국에서 공식적인 제1회 라이더컵 대회가 열리게 되었다.

대회의 취지는 친선이었지만 양국 선수들의 마음 속에는 누가 골프의 최강인지 가려 보자는 경쟁의식이 숨겨져 있었다. 그래서 선수들은 골프 최강국의 명예와 자존심을 걸고 플레이했고, 선수가 상금을 받지 않는 전통도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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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제1회 라이더컵의 미국 팀. 가운데가 캡틴 월터 하겐.


무너진 영국의 자존심

1회부터 4회까지는 서로 홈팀이 우승하며 균형이 맞았지만, 1935년 제5회 대회부터 미국의 독주가 시작되었다. 영국은 1977년까지 18회 라이더컵이 진행되는 동안 1957년에 딱 한 번 이겨봤을 뿐이었다. 1973년부터 아일랜드의 선수들이 영국팀으로 출전했지만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언제나 결과가 뻔한 대회를 골프팬이나 미디어가 외면하게 되자 라이더컵 대회의 존재에 의문을 제기하는 선수들이 생겨났다.

“영국팀의 기량 정도면 우리는 캐디를 선수로 내보내도 이길 수 있다.”
“라이더컵의 관중 숫자는 미국의 개구리 점프 대회보다도 적다.”

이런 조롱의 말들을 들으며 영국의 자존심은 회복불능 상태가 되었고, 라이더컵을 중지하자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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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대회에서 28년 만에 승리한 유럽 팀.


‘신의 한 수’ 유럽팀

1977년 영국에서 관중 없는 대회를 끝낸 후 미국팀의 잭 니클라우스가 중대한 제안을 했다. 전력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다음 대회부터 영국팀 대신에 유럽 전체에서 선발한 선수들로 유럽팀을 만들어서 경기를 하자는 아이디어였다. 영국의 PGA에서는 즉시 잭 니클라우스의 제안을 받아 들였고, 1979년 대회부터 유럽팀이 선발되었는데, 대륙에서 선발된 최초의 선수는 스페인의 세베 발레스테로스였다.

유럽팀은 1979, 81, 83년에 계속 패배했지만, 1983년 미국 대회에서 1점차로 패배하는 박빙의 승부를 펼치자 유럽의 골프팬들이 관심과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 유럽팀은 고국으로 돌아가면서 다음 대회에서는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1985년 유럽팀의 승리와 유럽 골프의 부활

1985년 라이더컵을 기다리는 유럽팀에는 동갑내기 스타 플레이어 세 명이 팀의 주축을 이루고 있었다. 1957년에 태어난 스페인의 세베 발레스테로스, 영국의 닉 팔도, 독일의 베른하드 랑거였다.

1985년 영국의 벨프리에서 열린 라이더컵 첫 날 세계 골프계는 깜짝 놀랐다. 입장하는 관중의 숫자가 끝없이 늘어났고, 첫 매치가 시작되기 한 시간 전에 벌써 1번홀이 꽉 찼다. 가장 놀란 사람은 양 팀의 선수들이었다. 유럽, 유럽을 외치는 관중의 함성이 라커룸까지 생생하게 들렸다. 1번홀로 나가기가 두렵다는 선수들도 있었다.

드디어 유럽팀은 16.5 대 11.5로 미국을 격파하면서 28년 만에 라이더컵을 가져갔고, 미국은 과거 50년 동안 딱 한번밖에 진 적이 없었는데 이제 질 수도 있다는 현실을 알게 되었다. 유럽팀의 선수들과 골프팬들은 미국에 대한 열등감에서 벗어나기 시작했고, 미국의 골프팬들은 익숙하지 않은 그 상황을 들여다 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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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0년 만에 미국에서 처음 승리한 유럽 팀.


1987년 홈에서 패배한 미국의 충격


미국팀은 1985년의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서 와신상담하며 1987년 라이더컵을 기다렸다. 1985년의 패배는 우연일 뿐이라며 홈에서의 승리를 장담했다. 미국의 골프팬들도 이제는 관심이 커졌고 응원을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1987년 라이더컵의 미국팀 캡틴은 잭 니클라우스였고, 대회장소도 니클라우스의 골프장인 오하이오 주 뮤어필드 빌리지였다. 1985년 승리로 기세가 오른 유럽팀은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를 전세 내어 미국에 도착했고, 니클라우스는 공항까지 나와서 영접했다.

유럽팀은 세계 랭킹 1위 베른하르트 랑거 등 1957년생 삼총사에 올라자발, 우스남, 샌디 라일 등이 가세하여 최강의 전력을 갖췄지만, 팀 선수들의 메이저 우승횟수나 전체 세계랭킹 등을 객관적으로 비교하면 미국에 비해 열세였다. 다수의 미디어도 언더독인 유럽팀이 원정경기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상상을 하지 못했다.

대회가 시작되자 놀란 사람들은 미국의 갤러리였다. 유럽에서 원정 온 응원단의 숫자가 상상을 초월했고 그들이 불러대는 응원가 소리와 함성은 미국 관중을 자극했다. 대회 결과는 유럽팀이 첫 날부터 앞서나가더니 15 대 13으로 홈팀인 미국을 제압했다. 라이더컵 60년 만에 처음으로 홈에서 패배한 미국의 충격은 컸고, 유럽은 진정한 맞수로 떠올랐다.

패배한 미국팀의 캡틴 잭 니클라우스는 품위를 잃지 않고 웃으며 기자회견을 했다.

“오늘 미국의 패배는 마음 아프지만 라이더컵 대회의 장래를 위해서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팀은 잘 싸웠지만 우리에게는 세베 발레스테로스가 없었습니다.”

이 말은 세베가 잘 치기도 하지만 미국팀에는 그와 같은 승부근성이 없었다는 뜻이었다.

1985, 87년 대회를 거치면서 라이더컵 대회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변했다. 라이더컵의 매출규모는 어떤 메이저 대회보다도 크게 성장했고, 대회 개최권을 가지고 있는 미국의 PGA와 유러피언 투어는 기대치 않았던 큰 수익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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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8일부터 2018 라이더컵이 열리는 파리의 더 골프 나쇼날 코스.


미국의 무너진 자존심

우연이라고 생각했던 1985년의 패배는 우연이 아니었다. 미국은 1985년의 패배 이후 16번의 매치에서 5승 10패 1무승부로 밀리고 있고, 1995년 이후에는 3승 8패로 크게 뒤졌다. 홈 경기에서도 네 번이나 패배했다. 개인별 통계상의 전력으로는 언제나 미국이 우위에 있는데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결과가 나오는 이유는 유럽팀의 팀웍과 단결력이 미국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은 자존심 회복을 위해서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선수들에게 역사를 교육하고 애국심을 고취시키면서 라이더컵을 가져오라고 요구한다. 선수들은 라이더컵이 고국을 위해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고 있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 싸운다는 말이 생겼다. 또, 캡틴의 와일드카드 선발 권한을 4명으로 늘리면서 최강의 팀을 구성하려고 애쓰고 있다.

미국과 유럽, 두 팀은 오는 9월 28~30일 사이에 파리에서 다시 맞붙는다. 세계 골프팬들은 이번에는 미국이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을지 지켜보고 있다.

* 박노승 : 건국대 산업대학원 골프산업학과 겸임교수, 대한골프협회 경기위원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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