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은 제 2의심장이라고도 한다. 맨발달리기는 심장의 기능을 돕는 기능이 있다.
흔히들 발이 제2의 심장이라고 한다. 그러나 발이 아니라 종아리가 제2의 심장이다. 발은 종아리라는 보조 펌프를 움직이는 레버다.
심혈관계의 작동과 종아리의 역할과 관련해 기본 원리를 먼저 알아보자. 우리는 헌혈할 때 ‘주먹을 쥐었다 펴라’는 말을 듣는다. 왜 그럴까? 채혈 바늘은 정맥에 꽂는다. 주먹을 쥐면 팔뚝 근육이 수축하면서 정맥을 압박해 피가 팔뚝 위쪽으로 밀려 올라온다. 주먹을 펴면 혈압이 낮아진 팔뚝 정맥에 피가 흘러들어가고, 다시 주먹을 쥐면 앞의 과정이 반복된다.
근육 수축으로 눌린 정맥이 피를 심장 쪽으로 보내는 것은 판막이 있어서다. 동맥과 달리 팔?다리 정맥 안쪽에는 판막이 있다. 판막은 혈액이 심장 쪽으로 흐르도록, 역류하지 않도록 돕는다.
맨발로 달리면 헌혈할 때 주먹을 쥐었다 펴는 것과 같은 동작이 이뤄진다. 주먹을 쥐었다 펴면 팔뚝 근육이 수축됐다가 이완되는 것처럼, 맨발로 착지했다가 땅에서 발을 떼면 종아리 근육이 강하게 뭉쳤다가 풀린다. 맨발로 달리면 발 앞부분으로 착지하게 된다. 그렇게 바닥을 디디면 종아리 근육이 수축한다. 뭉친 종아리 근육은 정맥을 압박해 피를 위로 밀어 올린다. 발을 떼면 종아리 근육이 긴장에서 풀려난다. 이때 피가 혈압이 낮아진 종아리 정맥을 채우며 올라온다.
발은 레버, 종아리는 펌프 역할
‘맨발이 레버이고 종아리가 보조 펌프라고 하더라도, 맨발과 종아리가 전체 혈액순환에 무슨 큰 도움이 되겠어.’ 이런 의문을 품을 수 있다. 이 의문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첫째, 종아리라는 보조 심장에서 보낸 피가 심장까지 도달하나? 둘째, 피돌기는 심장에 혈액이 돌아오는 것보다 심장에 이른 피가 신체 구석구석 공급되는 다음 단계가 더 중요한 게 아닌가?
종아리 정맥을 압박하는 일이 피돌기를 다리 부위에서만 원활하게 하는 데 그치지 않음은 치약 튜브를 눌렀을 때 나타나는 현상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피로 가득 찬 정상적인 정맥은 새 치약 튜브와 비슷하다. 새 치약 튜브를 쥐고 끝을 눌러보자. 압력이 그 끝과 가까운 부위에만 머무는 게 아니라 반대편 꼭지에까지 미친다. 마찬가지로 근육으로 눌린 종아리 정맥의 피는 넓적다리 정맥으로 올라가고, 넓적다리 정맥의 피는 그 위로 밀려 올라간다. 그렇게 차례로 압박된 혈액은 심장으로 들어온다. 종아리 보조 심장을 가동하면 심장으로 돌아오는 피돌기가 활발해지는 것이다.
심장으로 돌아오는 혈액이 많아지면, 심장의 출력이 같더라도 박출량이 많아진다. 심장 박출량은 자동차 배기량에 해당한다. 배기량이 큰 자동차가 힘이 좋은 것처럼 인체의 운동 능력은 심장 박출량에 비례한다. 박출량이 크면 심장이 한 번 수축할 때 더 많은 혈액을 통해 더 많은 산소를 온몸에 공급해준다. 선천적으로 심장이 강하거나 훈련으로 심장을 단련해, 심장에서 한 번에 뿜어주는 혈액의 양을 키운 사람은 평균에 비해 심장이 천천히 뛴다. 일반인의 심박수는 1분에 60~70인데, 엘리트 마라토너의 심박수는 40회 전후에 불과하다.
심장 박출량이 크더라도 심장에 피가 충분히 돌아오지 않으면 혈액이 그 박출량대로 내보내지지 않는다. 종아리 보조심장을 가동해 다리 정맥의 피를 심장에 충분히 공급하면 심장을 박출량만큼 가동할 수 있다.
혈액순환의 품질이 달라진다
이제 둘째 의문을 생각해보자. 심장으로 돌아온 피는 바로 온몸에 가지 않고 폐로 운반돼 산소를 공급받는다. 따라서 심장에 피가 많이 돌아온다고 해서 몸으로 가는 혈류가 활발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산소가 없는 피는 아무 역할을 하지 못한다. 피는 허파에서 산소를 듬뿍 흡수함으로써 제 역할을 한다. 따라서 정맥을 통해 들어온 피가 많을수록, 그래서 폐로 이어지는 혈액순환이 원활해질수록 혈액이 산소 운반 기능을 활발하게 한다. 폐에서 산소를 공급받은 피는 다시 심장으로 돌아온 뒤 전신으로 뿜어진다.
우리 몸에서 산소를 가장 많이 쓰는 부위가 뇌다. 뇌는 우리 몸무게의 2%만 차지하지만 우리 몸이 쓰는 산소의 20%를 활용한다. 뇌는 산소에 흠뻑 적셔줌으로써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다. 유산소운동이 뇌 건강에 좋은 이유다.
유산소 운동에는 여러 종류가 있고 달리기가 대표적인 유산소운동이다. 그러나 신발 신고 달리는 것과 맨발 달리기에는 큰 차이가 있다. 맨발로 뛰면 종아리라는 보조 심장을 함께 가동해 피돌기의 품질을 훨씬 높일 수 있다. 신발 신고 달릴 때에 비해 뇌와 몸에 산소를 더 제공할 수 있다.
종아리 펌프가 주는 숙면 효과
이론적으로 뒷받침되지는 않았지만, 맨발 달리기는 잠을 잘 자는 데 도움이 된다. 맨발로 뛰면 뇌를 산소에 흠뻑 적셔 상쾌한 디폴트 상태로 돌려놓아서 그런 게 아닐까 추정한다. 맨발 달리기의 숙면 효과를 체험한 사례는 많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다. 나는 전에 신발을 신고 달릴 때에는 가벼운 수면장애에 시달렸다. 누워서 기다려도 잠이 들지 않아 계속 뒤척였다. 맨발 달리기를 시작한 뒤에는 잠 걱정이 사라졌다. 졸음이 싸르륵 쏟아지는 경험도 수십 년 만에 했다. 신발 신고 풀코스 마라톤을 뛰고 난 뒤에도 나타나지 않은 ‘증상’이다.
잠을 잘 자려면, 혈액순환을 좋게 하려면 오로지 맨발로 뛰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달리는 것도 아니요, 달리는 사람들 중에서도 신발을 선뜻 벗어던질 사람이 많지 않다. 나는 맨발로 달리기 어렵거나 꺼리는 분들에게 그에 버금가는 간단한 운동을 권한다. 줄넘기나 제자리 뜀뛰기, 또는 카프 레이즈(Calf raise)다.
세 가지 운동 모두 종아리 근육을 강하게 뭉치게 했다가 풀어주는 동작을 반복한다. 줄넘기를 할 때에는 주의할 점이 있다. 밑창이 두껍고 탄력이 큰 운동화 대신 얇고 비교적 딱딱한 신발을 신고 줄을 넘으라는 것이다. 그래야 발이 레버의 역할을 하게 되고, 그래야 종아리 펌프가 강하게 작동한다.
카프 레이즈는 서서 까치발을 들었다 내리는 아주 간단한 동작이다. 이 간단한 동작이 무슨 운동이 되겠어 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간단함에 비해 효과는 아주 강력하다. 이를테면 가성비가 매우 뛰어난 운동이다. 예를 들어 카프 레이즈 100회를 한 세트로 정해 저녁에 3세트를 하면 잠을 쉽고 깊게 잘 수 있다.
맨발로 달리거나 줄넘기를 하거나 카프 레이즈를 통해 종아리 보조 펌프를 가동한 뒤 자는 잠은 깊어지고 짧아진다. 길게 늘어지지 않고 깔끔하게 잠에서 깨어날 수 있다.
하지 정맥류를 예방하는 카프레이즈 운동.
하지정맥류를 예방하는 간단한 운동
여기까지는 종아리 근육을 제대로 씀으로써 누릴 수 있는 효과를 소개했다. 이제 종아리 근육을 가동하지 않을 경우 나타나는 증상을 알아보자. 심장으로 돌아오기 가장 힘들어하는 피가 발로 내려간 혈액이다. 발의 피는 심장에서 가장 멀리 간 데다 중력을 거슬러 올라와야 한다. 이 혈류가 원활하지 않아 생기는 증상이 하지정맥류다. 하지정맥류는 발의 피가 올라오다가 다리에 고이고, 그러다보니 정맥이 부풀어서 피부 밖으로 돌출된 상태를 가리킨다. 주로 종아리에 나타난다.
하지정맥류는 오래 서 있거나 운동이 부족해, 피가 다리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정맥에 고여 나타난다. 하지정맥류는 증상이 가벼율 경우 압박스타킹을 착용해 개선할 수 있다. 종아리 근육을 압박스타킹으로 눌러 정맥의 혈류를 돕는 것이다.
맨발 달리기를 비롯한 운동으로 종아리를 쓰는 사람에게는 하지정맥류가 생길 수 없다. 서 있을 때 가끔 까치발을 들었다 내리는 동작만으로도 하지정맥류를 예방할 수 있다.
종아리 근육은 우리가 선천적으로 받은 보조 심장이다. 이 보조 심장은 쉽게 가동할 수 있다. 보조 심장을 가동하면 많은 것이 달라진다. 혈액순환이 좋아져 몸이 거뜬해지고, 잠이 깔끔해져 정신도 맑아진다. 이 보조 심장을 충실히 가동하는 데에는 맨발 상태가 가장 좋다.
글 백우진(한화투자증권 편집위원), 글쓴 이는 <동아일보>기자, <이코노미스트>,<포브스>편집장을 거쳐 현재 한화투자증권 편집위원이다. <나는 달린다, 맨발로>의 저자이기도 하다. 이 글은 젊은 골프 패션 브랜드 왁에서 운영하는 와키진에 연재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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