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남화영의 골프장 인문학 15] 제네시스오픈 개최지 리비에라(하)
캘리포니아 해안에 면한 리비에라컨트리클럽이 메이저 대회를 비롯해 PGA투어 대회를 꾸준히 개최하는 무대가 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코스 세팅이 선수의 미세한 기량을 가릴 정도로 공정하며, 홀 레이아웃이 다양한 전략과 도전의 묘미가 있어 멋진 샷을 갤러리에게 선보이기 때문이다.

샘 스니드는 리비에라를 이렇게 평가했다. “골프의 가장 좋은 테스트 무대다. 트릭이 통하지 않고, 라운드가 즐거우며, 좋은 샷에는 당연한 보상을 준다. 내가 아는 한 이런 게 좋은 코스의 조건이다.”

이미지중앙

6번 그린 한가운데에 벙커가 놓여 있어 핀 위치에 따라 공략 법이 다채롭게 변한다.


조지 토마스가 만든 토너먼트 코스
모든 홀이 제각각 특징적일 뿐만 아니라 후대 설계가들이 베끼는 클래식으로 존재한다. 당대의 최고 설계가로 백지수표를 받아 나온 조지 토마스의 애초 설계로 돌아가보자. 1번 홀(파5 503야드)은 70피트 높은 언덕에서 평평한 페어웨이로 내리꽂는 시원한 티샷의 명소로 알려져 있다. 2번 홀(파4 471야드)은 핸디캡 1번 홀로 설계가 조지 토마스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서 4타만에 홀아웃 하면 아주 잘한 거다.”

벤 호건은 1948년 US오픈에서 우승한 뒤 LA타임즈 인터뷰에서 4번(파3, 236야드) 홀에 대해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파3 홀”이라고 상찬했다. 과감하고 힘 있는 골퍼는 바로 그린을 노리지만 힘 조절이 약간만 잘못되면 벙커에 빠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아마추어들은 대부분 그린 앞 60야드까지만 보내 거기서 세컨드 샷을 어떻게 올릴까 고민하게 만든다.

6번 홀(199야드) 역시 파3임에도 수많은 변수가 있다. 그린 중앙에 벙커가 덩그러니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일명 ‘도너츠홀’, ‘애꾸눈 홀’이라 불리는데 핀이 어디에 꽂히느냐에 따라 볼을 어떻게 굴려 붙이는지의 해법이 변화무쌍하다. 국내 여주의 해슬리나인브릿지, 고성의 파인리즈, 제주도의 더클래식 등에서 있는 도너츠홀의 원조는 바로 리비에라 6번 홀이다.

8번 홀(파4 433야드)은 갈라지는 두 개의 스플릿(split) 페어웨이를 가졌다. 가운데는 도랑이 흐르는 해저드이고 왼쪽 페어웨이를 택하면 폭은 좁지만 그린까지 가깝고, 오른쪽 페어웨이를 택하면 넓지만 길이 멀어 선택을 하도록 한다.

이미지중앙

10번 홀은 드라이버로 공략가능한 315야드의 파4 홀이다. 하지만 그린 주변 벙커로 원온을 시도하는 선수는 드물다.


오늘날 리비에라에서 가장 유명한 홀은 10번으로 ‘드라이버블 파4 홀’의 정수로 꼽힌다. 315야드로 거리는 짧지만 세로로 길게 앉혀진 그린 양 옆의 움푹 파인 벙커로 인해 한 끗 차이로 버디와 더블 보기가 오간다. 잭 니클라우스는 “나는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는 홀을 좋아하는데 이 홀은 내가 아는 어떤 짧은 파4 홀보다도 다채롭다”고 평했다. 거리가 짧다고 우습게보면 가차없는 징벌이 돌아온다. 지난해까지 노던트러스트오픈 내내 베테랑들은 우드나 하이브리드로 티샷을 해 페어웨이를 지킨 뒤에 그린이 최대한 길어지는 방향에서 핀을 공략했다. 물론 드라이버를 잡고 300야드 이상 뻥뻥 날린 혈기방장한 선수도 있었다.

11번 홀(파5 583야드)은 높이 30m가 넘는 쭉 뻗은 유칼립투스 나무들이 페어웨이 양 옆으로 긴 열주(列柱)를 이룬다. 똑바로 쏘는 정확성 있는 샷의 중요성을 느끼는 홀이다. 13번 홀(파4 459야드)은 퍼팅의 귀재 벤 크렌쇼가 “설계자가 골프를 체력 뿐만 아니라 생각하는 게임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린 앞의 작은 협곡이 위협적이어서 투온을 노리는 골퍼에겐 모험에 따른 보상의 원칙을 확실하게 심어준다. 달리 말하면 만용에 따른 보복의 원칙에도 철저하다. 선수가 고민할수록 갤러리는 고소해한다.

15번 홀(파4 487야드)은 오후엔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방향을 알 수 없는 예측 불가능한 해풍에 맞서는 홀이다. 하지만 이 홀의 진정한 승부는 그린에서 펼쳐진다. 넓은 그린이 더 어려운 그린이란 말이 여기에 딱 적합하다. 앞 벙커는 턱이 높아 위협적이고 옆으로 돌아가려면 오르막 내리막 굴곡이 크다. 잘 붙인 퍼팅 스트로크 하나가 잘 맞은 드라이버샷 하나 이상의 가치가 있는 홀이다.

이미지중앙

갤러리가 스태디움처럼 빽빽하게 메우는 18번 홀 그린 주변.


마지막 세 개 홀은 개성이 강하다. 16번 홀(파3 166야드)은 고색창연하다. 번개에 맞아 쪼개진 사이로 생명력을 이어가 몇 백 년 묵은 나무줄기 사이로 잔디가 뿌리를 내렸다. 그린이 좁고 주변에 벙커로 둘러싸인 이 홀은 ‘올 오어 낫씽(All or Nothing)’이라 불린다.

17번 홀은 이 코스에서 가장 긴 590야드 오르막 파5 홀이다. 설계가는 “장타자보다는 정확성 높은 단타자에게 유리한 홀”이라고 설명을 붙였다. 힘만 가지고 덤비지 말라는 뜻이다.

18번 홀(파4 475야드)은 PGA투어에서 유명한 마지막 홀이다. 티 샷은 저 너머 보이지 않는 언덕으로 보내야 하고 세컨드 샷은 길고도 좁고 정확한 그린 공략이 요구된다. 그린은 클럽하우스 바로 밑으로 고대 로마의 원형경기장처럼 둥그렇게 조성돼 있다. 가급적이면 많은 갤러리들이 선수들의 마지막 승부를 지켜보도록 조성했다. 최고의 경기장다운 훌륭한 마무리다.

리비에라는 잘못 판단하면 반드시 처벌이 내려지고 전략을 짜고 생각하게 만드는 코스다. 오래 라운드해도 질리지 않고 장타자라고 무조건 유리하지 않다. 다른 대회장에서도 어디선가 많이 봐온 듯한 홀이 있다면 아마 이곳이 모델이 되었을 확률이 높다. 리비에라가 명문인 건 골프 대회 코스의 클래식이기 때문이다.

이미지중앙

노보루 리비에라 골프장 회장


노보루 회장의 캘리포니안 드림
리비에라는 역사와 전통의 골프 코스 뿐만 아니라 테니스클럽과 결혼식 등 행사를 치를 수 있는 시설을 갖춰 LA의 상류사회와 통하는 통로 역할도 하고 있다. 할리우드 스타를 포함해 소수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친밀한 유대로 맺어져 있다.

1989년 리비에라를 인수한 와타나베 노보루 회장은 점잖은 백발 신사다. 대학 시절 이 코스에서 라운드하고는 ‘멤버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졌고, 나중에 웨딩사업과 부동산업으로 큰 돈을 벌어 40대 초반에 이 골프장을 인수하면서 그의 캘리포니아 드림을 이뤘다. “제가 해온 일은 설계자가 만든 좋은 코스를 잘 보존하는 것, 그리고 이제 할 일은 골프장을 잘 가꾸어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것이죠.”

VIP응접실에는 골프장 초기 설계도와 클럽하우스 도면까지 액자에 걸어두고 있었다. 리비에라는 38년 대홍수를 맞아 한 귀퉁이가 쓸려나가 대대적으로 리노베이션을 했고, 그가 인수한 후에도 코스를 손봤지만 그건 트렌드에 맞춘 변용이었다. 몇 년 전에 만난 와타나베 회장은 미국인과 소수 일본인에 국한되던 멤버십을 아시아로 넓히고 싶어했다. “리비에라는 미국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교류하는 곳입니다. 한국, 중국, 싱가포르 등 아시아를 포함하는 글로벌 멤버십으로 확대하려 합니다.” 한국에서도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재벌 회장들이 회원으로 속해 있지만 이를 넓히려는 계획이다.

이미지중앙

클럽하우스에는 91년 역사의 이 골프장에서 개최한 각종 대회 기념품과 소품이 박물관처럼 전시되고 있다.


회원으로 가입하려면 어느 정도의 회원 가입비가 필요할까? “우리 골프장은 단지 돈만으로 가입할 수 있는 클럽은 아닙니다. 회원 가입 신청이 들어오면 여러 측면에서 회원 심사를 거치게 될 겁니다. 아시아를 포함한 글로벌 멤버십으로 보다 많은 아시아 리더들이 참여한 클럽을 만드는 게 목적이니까요.”

와타나베 회장은 리비에라의 미래상을 글로벌에 두었다. LA에 기반을 둔 골프장으로 골프, 테니스, 문화를 통해 미국과 아시아가 긴밀하게 연결되는 가교 역할을 하고 싶은 것이 그의 새로운 드림이었다. 한국기업 현대자동차가 스폰서가 되는 제네시스오픈이 열리는 것 역시 그가 바라는 한 모습일 수 있다.

리비에라 클럽하우스에는 30실의 객실이 있다. 거기에는 벤 호건 실이 있고, 월트 디즈니 실도 있다. 그들이 직접 자고 머물던 곳이다. 91년 전의 골조와 뼈대는 유지하면서도 최신 시설과 기기가 합쳐지면서 고아(古雅)한 느낌마저 준다. 오크통에 오래 숙성된 위스키가 주는 매력이 있다. 리비에라이기에 가능한 캘리포니아 드림이다.
sports@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
          연재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