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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로복싱] ‘황혼의 복서’ 복귀 2승... 그 속상한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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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의 복서' 최용수가 5일 WBC 유라시아 실버타이틀매치에서 승리한 후 인증서를 받고 있다. [밀레니엄힐튼호텔=채승훈 기자]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유병철 기자] 1990년 아마추어 경력 없이 프로복서로 데뷔한 최용수(45)는 1993년 3월 슈퍼페더급 한국챔피언이 됐고, 그해 12월 모두의 예상을 깨고 강타자 이은식(47)을 꺾고 동급 동양챔피언에 올랐다. 이은식은 당시 ‘1회 KO승의 사나이’로 불렸던 절정의 강타자. 이미 세계타이틀 도전이 내정돼 있었고, 최용수를 전초전의 가벼운 상대로 낙점했던 것인데 그만 3회 KO패를 당한 것이다. 지난 5일 밀레니엄서울힐튼호텔에서 열린 세계복싱평의회(WBC) 유라시아(EPBC) 라이트급(61.23kg) 실버타이틀매치에서 최용수에게 10라운드 TKO패를 당한 넬슨 티남파이는 1993년 1월 8일 생이다. 티남파이가 태어난 해에 최용수는 동양챔피언이었던 것이다.

경기 후 최용수는 오래전부터 아무 조건 없이 자신을 후원해온 한 지인(장석 사장)이 운영하는 용산의 한 음식점에서 뒷풀이 자리를 가졌다. 이런 저런 얘기가 오가던 중 누군가 대전료가 얼마나 되냐고 묻는 ‘결례를 범했다’. 돈을 받고 경기를 하는 프로인 까닭에 지극히 상식적인 질문이지만, 요즘 한국 프로복싱에서 이는 결례다. 프로복싱이 극도로 침체하면서 그 액수가 너무도 초라해 외부에는 묻지도 답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이런 사정을 잘 알고, 또 그렇기 때문에 한국복싱 중흥을 위해 선수로는 할아버지의 나이에 링으로 복귀해 경기를 계속하고 있는 최용수는 재치있게 이 상황을 정리했다. 대답 대신 자신의 퉁퉁 부은 왼손을 보여줬다. “밴디지를 잘못 맸는지 1라운드에서 상대를 가격하다가 손을 다쳤어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아플 틈도 없이 계속 펀치를 날렸죠. 내일 아침이면 더 부을 텐데 걱정이네요.” 가만히 보니 왼손뿐 아니라 오른손도 심하게 부어 있었다. 복싱은 이처럼 격한 경기다. 그리고 이 멘트에 대전료는 쑥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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퉁퉁 부은 최용수의 왼손.


프로복싱은 한때 국내 최고 인기스포츠였다. 1983년으로 가 보자. 당시 5월 미들급 동양챔피언 박종팔은 나경민과의 특급라이벌전에서 2,500만 원을 받았다. 박철순 이만수 김봉연 등 프로야구 최고의 선수들이 당시 연봉으로 2,400만 원을 받던 때였다. ‘국민영웅’이었던 전 WBA플라이급 세계챔피언 김태식은 1980년 한 해에만 1억 원 이상(당시 집 10채를 넘게 구입할 수 있었던 금액)을 벌었다고 밝힌 바 있다. 프로야구선수가 최초로 연봉 1억 원을 돌파한 것보다 훨씬 앞서 장정구, 유명우 같은 세계챔피언은 한 번의 방어전에 1억 원 이상씩을 받았다.

최용수도 예외는 아니었다. 공식적으로 한국 프로복서가 받은 역대 최고몸값은 전 WBA 슈퍼미들급챔피언 백인철이 1990년 3월 프랑스로 원정방어전을 나갈 때 받은 35만 달러다. 그리고 2위가 바로 최용수다. 1998년 9월 일본 원정에서 30만 달러를 받았다. IMF경제위기로 환율이 높아 한화로는 5억 원 이상이었고, 프로모터의 농간으로 실제로는 50만 달러였다는 후문도 있는 만큼 엄청난 금액이었다. 앞서 1996년 최용수는 3차례 방어전을 모두 성공하며 3억 원이 넘는 대전료를 받아 국내 프로스포츠 최고 수입을 기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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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경기에서 필리핀의 넬슨 티남파이는 최용수의 펀치에 얼굴이 크게 상했다. [밀레니엄힐튼호텔=채승훈 기자]


그럼 이번 대전료는?지난해 4월 당진에서 열린 13년 만의 복귀전에서 2,000만 원을 받았다. 타이틀이 걸린 이번 복귀 2차전도 나아지지 않았다고 한다. 참고로 이날 미국 UFC에서 정찬성이 3년여 만의 복귀전에서 승리했는데 KO 보너스만 5만 달러, 6,000만 원이었다(대전료가 아니다). 아무리 프로복싱의 인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고 해도, 너무 심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더 충격적인 것인 프로복싱 한국챔피언의 경우 최고 500만 원이고, 웬만한 선수는 몇 백만 원 수준이라는 사실이다.

‘삼성, 현대, 엘지 뭐합니까! 인간참피온 최용수 선수에게 물심 양면으로 지원 좀 해줍시다!’, ‘스폰서가 없다는 말이 더 안타깝네’, ‘엘지야 도와줘 인간 승리의 드라마다 니네도 스마트폰에서 드라마 좀 만들자’, ‘삼성은 정유라 x 지원금액의 10분의 1만 지워해봐라'... 내년이면 칠순인, 최용수의 트레이너 김춘석 관장이 방송 인터뷰에서 “(최)용수가 스폰서가 없어 간신히 경기를 치르고 있다”고 밝히자, 관련기사에는 이런 댓글이 쇄도했다. 21살이나 어린 선수를 체력적으로 압도하면서 얻은 45세 황혼의 복서가 거둔 승리. 우리 기업들은 이런 것에는 눈을 감아버리면서, 비선실세에게는 수십, 수백 억씩 갖다 바친다. 그래서 참 속상한 대한민국 프로복싱이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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