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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건식의 도의상마] 동남아를 알려면 시라트(Silat)를 배워라

영화 <아저씨>의 액션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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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저씨>의 한 장면.


2010년 개봉된 영화 <아저씨>에서 원빈은 목욕탕에서 인상적인 격투장면을 선보인다. 이 장면에서 원빈은 작은 단도를 가지고 현란하게 상대를 공격해 제압한다. 이를 두고 많은 사람들은 특수부대에서 사용하는 단도술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가 선보인 무예는 동남아를 중심으로 널리 보급되어 있는 ‘시라트(Silat)'라는 전통무예다. 이러한 단도술은 국내 무예인들 중에도 능한 사람들이 일부 있다. 그들은 특수부대에서 배웠거나, 옛 무예원로들로부터 전수받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동남아 교류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교역을 통해 동남아의 문화가 유입되었다고 말한다. 특히 동남아에서 무예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교역시기에 시라트와 같은 무예를 잘하는 무사들을 동행했다는 점에서 이미 동남아무예가 우리 땅에도 전해졌을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우리에게 생소한 시라트가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접어 들어서다. 매년 충주에서 개최되던 세계무술축제를 계기로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무예인들이 시라트라는 무예를 알렸다. 초기에는 공연방식으로 연무를 선보이다 최근에는 무예성이 강한 기술을 선보임으로써 시라트가 강력한 무예임을 알리고 있다.
다양한 외래문화와 만난 시라트

시라트의 전통은 처음에는 구전(口傳)으로 이어져 왔다. 그리고 인도와 중국, 그리고 중동지역의 아랍문화의 영향을 받아 지금의 시라트를 정립하였다. 중국의 무기와 무기 제조기술이 동남아로 전해지면서 특히 바다와 섬으로 이루어진 지역의 특성상 보트문화, 즉 함대문화에서도 다양한 무기를 사용하였고 동남아의 여러 섬을 이동하면서 세력을 키웠는데 이들이 시라트를 전파하는 역할을 한 것이다.

그리고 힌두교와 불교가 종교로 채택되면서 동남아시아의 사회는 조직화되었다. 다양한 불교 유적에 나타난 무기나 갑옷, 양식들은 인도불교의 영향으로 보고 있다. 특히 시라트의 의료적인 관행이나 무기 역시 인도나 중국에서 유래되었다고 볼 수 있고, 시라트의 맨손기술들은 힌두교씨름과 유사하다. 이러한 씨름의 모습은 인도네시아 사원에 예술작품으로 잘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무예 형식과 형태는 중국과 일본, 그리고 중동의 아랍문화가 영향을 미쳤다. 중국남동 쪽의 광동지역이나,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등에서 찾을 수 있는 다양한 무예 형태의 유적들에 나타난 모습들은 중국남방무예의 형태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특히 11세기에서 14세기 여러 사원의 벽화에 등장하는 무기중 칼, 방패, 활 등은 당시의 모습을 말해준다. 심지어 몽골을 상대로 동남아국가들이 협력해 방어세력을 만들어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무예교류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시라트 기술의 대부분이 동물의 동작이나 자연의 세계와 연관되어 있고, 명상의 자세와 의료적인 움직임 등은 동물을 기초로 하는 인도무예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동남아의 민속학자들은 ‘제사를 지내는 신성한 곳에서 마을의 무속인들이 무예를 연마했다’고 보고 있다. 또 치유의식과 자기방어, 그리고 영적 훈련의 수련법이 현재에도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동양무예의 변천과정에서 나타나는 의식과정이나 의료적인 영향과 많은 부분 흡사하다.

동남아의 수많은 섬을 오간 보트유목민의 무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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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문화를 접목한 시라트의 의식 장면. [사진=유네스코-세계무술연맹(WoMAU)]


동남아의 시라트는 발빠르게 세계인들 속으로 다가가고 있다. 동남아의 영화, 소설, 만화, TV에서 이미 그들의 상징문화로 알려져 있고, 유명배우들이 이 시라트를 배워 각종 국제영화제나 해외 영화시장에 진출하면서 세계에 알려지고 있다. 무엇보다 시라트의 경기화는 동남아문화를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륙에는 말을 타고 이동하며 전투력을 기른 유목민 출신의 무사들이 존재했다면, 바다에는 배를 타고 전투력을 키운 보트유목민들이 존재했다. 이러한 보트유목민들은 보트를 타고 다니며 권력투쟁의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실제 동남아의 기마병은 유럽 식민지 시대 이후에 나타난다. 중국도 한때는 시라트에 능한 무사들을 모집해 복건성 장교강 하구를 지키려는 노력을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랑(LANG)' 또는 '라눈(lanun)’이라는 말레이족의 해적들은 시라트의 무기와 무기술을 한층 발전시킬 수 있었다.

15세기경 우리나라와 교류하던 동남아는 이미 무역에 있어 일본까지 뻗어 나갔다. 특히 17세기까지 인도차이나에는 일본인들이 교역과 더불어 정착해 살게 됐다. 그리고 일본의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일본인들이 동남아로 이주하면서 일본무예가 유입됐고, 시라트는 또 다른 변화를 맞았다. 일본의 가라테뿐 아니라 일본의 무기술이 유입돼 시라트는 보다 다양한 문화와 접목하며 변화했다.

시라트의 상징은 무기인 ‘칼’

인도가 동남아시아를 오가며 아랍에서 만든 칼들을 소개했다. 그래서 현대 시라트에서 사용하는 단도의 대부분이 아랍형에 가까운 것들이 많다. 이 무기들은 19세기 서말레이시아 등지로 보급되며 ‘무술림 무기’로 알려졌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이슬람운동이 펼쳐지면서 이슬람의 이념과 행동철학을 시라트에 부여하려는 움직임이 많았다. 하지만 말레이시아의 일부 시라트 도장들은 무슬림을 가르치지 않았고, 무슬림 방식의 결혼식도 거부해 사실상 시라트의 종교적인 배경인 힌두교, 불교 등과 그들의 전통적인 정령숭배(Animism, 호흡, 정신, 생명)의 뿌리를 지켜냈다. 도제 형태이고 학교였던 시라트 도장은 현재 오랜 역사와 더불어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통적인 모습으로 회귀하고 있다. 전통적인 명상이나 수련 전의 마사지, 그리고 주술적인 기도와 흡사한 암송도 하는데 이러한 전통은 도장을 중심으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수련과정을 보면, 사범은 맨손무예를 우선 수련하고 맨손무예가 숙련된 수련생에게만 무기술을 지도한다. 시라트의 고수들은 무기를 든 상대를 맨손무예로 제압하는 수련을 하기도 한다. 전통시라트에서는 무기에 대한 규정이 없기 때문에 무기는 수백 가지가 넘는다.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폭이 넓고 큰 무기는 로프나 낫, 심지어 체인과 같은 주무기를 사용하지만, 주무기를 잃었을 때 사용하는 최후의 무기인 단도사용에 매진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 현대 시라트에서도 대부분 단도를 사용한다.

시라트를 처음 배우는 입문생에게는 며칠 동안 금식을 하거나 허브차를 마시는 등 마음을 수련하는 간단한 의식을 한다. 또 수련생들은 사범과 수련동급생들과 존경의 표시로 예(禮)를 취한다. 이것은 대부분의 동양무예가 가지고 있는 예법과 다를 바 없다. 특히 상대에게 예를 표할 때는 힌두교나 불교에서 예를 표하듯이 손바닥을 가슴에 대고 머리를 숙이는 동작을 한다. 이러한 예법을 배운뒤 시라트의 자세와 발놀림과 같은 기초수련, 그 뒤 형(形)을 배우고 상대와 겨루기도 학습한다. 재미있는 것은 고수들이 극한 상황을 이겨내는 인내를 배우기 위해 물리적, 심리적, 영적 지구력을 테스트한다는 점. 이 테스트방법으로는 끓는 기름을 몸에 바르고, 폭포 수련을 하며, 묘지에 가서 명상을 하고, 밤낮으로 물에 몸을 담그는 수련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수련법은 종교적인 영향력도 있지만, 시라트의 영향을 준 인도와 중국의 수련문화로 볼 수 있다.

겨루기는 시라트의 형태나 수련도장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인도네시아시라트연맹(IPSI)이 생기면서 경기화가 이루어졌다. 상대의 어깨에서 허리 사이가 공격부위가 되며, 얼굴이나 허리 아래를 공격했을 경우에는 반칙이다. 또 시라트에서도 기(氣)를 중요시한다. 시라트의 기수련법은 대각선을 따라 바깥쪽으로 회전하는 것으로 나쁜 기운을 몸의 측면으로부터 내측으로 이동하면서 중심선으로부터 외부로 방출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것은 몸의 힘을 효율적으로 증가하고, 기술동작에서 조화를 이루는 효과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특히 최근에는 상대에게 위험할 수 있는 급소부위 공격이나 살생기술 등을 기수련법으로 대신한다고 한다.

시라트 수련이나 연무에는 음악이 따른다. 음악이 움직임의 리듬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결혼식이나 축제 기간에 시라트와 함께 음악을 접할 수 있다. 대부분 동남아 지역의 전통악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오래전부터 제례 때 함께 사용해 오던 것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시라트의 명맥을 유지하고 그 전통을 가르치는 곳은 말레이시아가 대표적이다. 이미 말레이시아에는 4대 시라트학교가 있다. 세니 가용(Seni Gayong), 리안 파두칸(Lian Padukan), 케리스 록-9(Keris Lok-9), 그라고 시라트 하리마우(Harimau)가 그것이다.

시라트가 동남아의 전통무예로 오랜 역사를 가진 만큼 이 시라트를 표현한 서사시가 있다. 13세기경부터 전설적인 영웅이나 시라트무사를 기리는 소설이 전해지고, 중국의 무협과 같은 시라트의 영웅소설도 있다. 1960년대부터는 만화소재로 쓰였고, 1990년대에는 TV 드라마 소재로 등장하면서 우리나라와 공동작품을 만들면서 시라트가 일부 국내에 소개되기도 했다. 영화로는 1950~60년대도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등에서 40여 편의 영화에 시라트가 등장했다. 확실한 것은 동남아의 시라트는 현재 발빠르게 세계인들 속으로 다가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시라트의 경기화는 동남아문화를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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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트의 다양한 무기류. [유네스코-세계무술연맹(WoMAU)]


펜칵시라트의 세계화, 올림픽 정식종목을 꿈꾼다


인도네시아에서는 ‘펜칵시라트(Pencak Silat)’라 한다. 펜칵시라트는 인도네시아의 무예에 대한 통일된 용어로 1948년에 제정되었다. 'pencak'은 산스크리트어로 ‘pancha'라 하여 ‘다섯’을 의미하고, 중국어로는 ‘pungcha'라 하여 무기로 막아내거나 상대를 누른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긴칼, 단검 또는 나무‘를 의미하는 'mancak' 등 유사용어들이 많이 있다. 현재는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 이와 유사한 용어들이 많다는 점에서 자카르타의 무예체계를 통합해 'pencak'으로 통칭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시라트 중 유일하게 경기화가 이루어져 세계에 보급하고 있는 종목이 펜칵 시라트다. 2년 혹은 3년마다 개최되는 세계선수권대회는 1982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7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대회가 시작되어 2015년 세계선수권대회에는 37개국이 참가하는 국제대회로 성장하고 있다. 그동안 세계선수권대회의 강국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싱가포르 등 동남아국가들이었다.

펜칵시라트는 2008년 아시아비치게임과 2009년 실내무도아시안게임의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어 있다. 그리고 오는 2018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에서 무예종목 부문(Martial Arts Event)에 주짓수, 크라쉬, 삼보, 우슈와 함께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 펜칵시라트는 올림픽 정식종목의 꿈도 꾸고 있다. 우선 2019 세계무예마스터십의 정식종목 채택을 위해 지난 9월 개최된 청주마스터십에 연무경기에 출전하였으며, 유도와 태권도처럼 IOC의 하계올림픽 정식종목 채택을 위한 꿈을 꾸고 있다.

이처럼 최근 동남아의 여러 국가들이 자국의 무예를 세계화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경기화를 통한 세계화는 문화를 빨리 전파할 수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경기화된 스포츠문화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동양의 무예가 세계화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육체적인 단련뿐 아니라, 오랜 전통에서 비롯된 수행법이 함께 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서양인들에게 또 다른 경쟁스포츠의 묘미를 갖게 한 것이다. 시라트가 오랜 역사와 더불어, 그들의 다양한 문화와 함께 명맥을 이어왔기에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국내에서도 충주세계무술축제에서 선보인 시라트, 그리고 2016청주세계무예마스터십에서 연무경기에 출전해 시라트를 홍보하기 위해 땀 흘리며 뛰던 시라트 사범들의 모습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단순히 시라트의 보급이 아니라 세계에 동남아 자국을 알리려는 노력이 깃들여 있었던 것이다.

동남아를 진출하려면, 시라트를 배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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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게임 정식종목이 된 펜칵 시라트. [사진=유네스코-세계무술연맹(WoMAU)]


동남아 무예인들의 노력에 비하면 아직도 시라트라는 무예는 생소하다. 직접 현지를 찾아가 경험하지 못하면 더욱 그렇다. 실제로 국내 지방 도시에서 다음과 같은 일을 경험했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왜 무예를 소재로 하는 국제행사에는 중국, 동남아, 중앙아시아와 같이 저개발 국가 사람들만 오느냐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이 사석이든 공식 석상이든 아주 당당하게 우쭐대며 이야기한다. 이는 스포츠나 무예, 그리고 문화를 모르는 무지이며, 서구문화를 갈망하는 묘한 열등감의 표출로 보인다.

1950년대부터 해외에 진출해 대한민국을 알린 사람들이 누구냐라고 묻는다면, 단연 태권도인들이고 무예인들이다. 그들은 유럽과 미국에 진출해 이미 시장을 점유하고 있던 일본의 가라테를 대신해 ‘코리안 가라테’라는 이름으로 가라테시장을 점령했고, 그뒤 ‘태권도’라는 이름으로 당당하게 세계 208개 국에 진출한 주역이다. 과연 그들이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 유럽이나 미주지역에 진출해 그들에게 푸대접을 받았을까? 그들은 ‘마스터(master)’라는 최고의 칭호를 받았다. 요즘에는 아예 ‘사부님’이나 ‘스승님’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시라트도 한국에 상륙했다. 몇 년 전 협회가 만들어지고 도장이 생겨 서서히 보급되고 있다. 동남아 진출을 꿈꾼다면 기업인이든 학생이든 개인사업가든 시라트를 배워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시라트에는 그들의 문화가 가득 차 있고,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최고의 교재다.

* 허건식 박사는 용인대에서 체육학박사(무도학)을 취득했고, 현재 유네스코-세계무술여맹(UNESCO-WoMAU) 이사, 세계무예마스터십위원회(WMC) 위원, 국립태권도원 운영위원, 대한무도학회 상임이사, 예원예술대학교 특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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