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스포츠 타타라타] ‘악의 평범성’과 골든벨 게이트
이미지중앙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한나 아렌트의 명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기념비적인 책이다. 부제에 적힌 ‘악의 평범성’이라는 표현은 강렬하기만 하다. 내용은 이렇다. 독일 나치스의 아돌프 아이히만은 유대인 600만 명 학살에 핵심적으로 관여했다. 종전 후 이스라엘이 숨어 살던 그를 잡아 재판(1961년 12월)을 하고, 교수형(1962년 6월)에 처했다. 그 과정을 취재해 한나 아렌트라는 작가가 책으로 펴낸 것이다. 핵심은 이 사악한 행동을 저지른 인물이 평범한 옆집 아저씨 같았다는 것. 아니,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근면함은 평균을 크게 웃돌았다. 그래서 그 끔찍한 일을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다.

# ‘혜실게이트’는 역사적 사건이다. 역사의 현장을 지켜야한다는 생각에 가족 단위로, 자녀 교육 차원에서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국민들도 많다고 한다. 그리고 박근혜 정권 내내 풀리지 않았던 각종 퍼즐들이 최순실의 등장과 함께 ‘아, 그래서 그랬구나’라며 풀리고 있다. 그런데 이는 체육계도 마찬가지다. 얼마나 그 권세가 대단했으면 ‘골드벨(금종)’으로 불리기도 한 김종 전 문체부차관이 마지막 퍼즐조각이 되고 있다. 국회의원 출신인 한 체육계 고위인사는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그동안 김종에게 당했던 체육계 사람들이 그에 대한 비위를 날마다 제보하고 있다”고 전했다.

# 실제로 그렇다. 까도 까도 끝이 안 보일 정도다. 최순실이든 뭐든 권력을 등에 업은 김종 전 차관은 정유라 등 최순실 일가를 노골적으로 도운 것은 물론이고, 잘 정착한 체육인재재단을 없애고,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을 비롯해 스포츠개발원장, 대한체육회 사무총장 등 수많은 인사횡포를 저지르고, 자신의 모교인 한양대에 정부지원사업을 몰아주고, 박태환 등 스포츠스타를 겁박하고, 말을 듣지 않은 수영계과 유도계는 체육비리 척결이라는 명분으로 초토화했다. 그 실체가 밝혀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체육계의 김종 의혹은 수십 가지가 넘는다. 최근에는 체육복권(스포츠토토) 사업과 관련해 선정단계부터 특정업체를 밀었고, 최근에는 임원비리를 이유로 현 사업체를 ‘계약해지’할 수도 있다고 국정감사에서 분위기를 주도했다. 뒤로는 그 사업체에 자기 지인들의 인사청탁을 강제하면서 말이다. 좀 비열하기까지 하다.

이미지중앙

직권남용과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구속된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사진=뉴시스]


# 김종은 프로야구단 직원과 대학교수(수원대-한양대)를 거치면서 스포츠계에서 나름 호평을 받았다. 한 언론사 간부는 “표현이 직설적이기는 하지만 스포츠산업에 대한 소신이 있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현장경험을 가진 소장파 학자에게 쏠리는 기대도 제법 컸다. 하지만 ‘실세 차관’, ‘체육 대통령’이 된 그는 공보다는 과가 많았다. 미안한 얘기지만 ‘오만하다’는 인물평까지 들린다. 이쯤이면 반전이다. 큰 기대와 함께 한국스포츠의 중책을 맡은 사람이 무소불위의 권력에 취해 ‘혜실게이트의 체육계 공범’으로 전락한 것이다.

# 김종의 ‘골든벨 게이트’는 권력이 한곳에 집중되면 좋을 게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운다. 그런데 확실한 것이 하나 있다. 영어(囹圄)의 몸이 된 지금이야 모르겠지만, 한창 권력을 휘두를 때 김종 전 차관이 자기가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오히려 자기 소신이 옳고, 자기가 이 정도는 누릴 수 있다고 합리화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체육계의 이 많은 의혹을 혼자 해내기도 쉽지 않은 법이다. 악은 평범하다. 그리고 그 능력치가 뛰어나면 피해는 더 큰 법이다. 그래서 한나 아렌트의 말처럼 인간(권력자는 특히 그렇다)은 노상 ‘사유(思惟)’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비리척결을 외치던 사람이 순식간에 비리의 주범이 되고 만다. 즉, 사유(私有)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는 것이다.
sports@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
          연재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