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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충우돌 여자야구 도전기] (10) ‘최초’가 된 그녀들, 한·미·일 여자 야구선수 열전 - 미국편
‘역대 프로야구 최고령 승리투수 배출, 커밍아웃한 투수를 로스터에 올린 최초의 프로구단.’

창단 3년차인 미국 독립리그 구단 ‘소노마 스톰퍼스’가 지난 3년간 만들어낸 이슈들이다. 그런데 올해 모두의 시선이 다시 한 번 스톰퍼스로 향했다. 2015년 팬암 게임 여자야구 금메달의 주역이었던 캘시 위트모어(17)와 스테이시 피아그노(25)와의 계약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두 여자 선수 영입으로 스톰퍼스는 1950년대 이후 최초의 혼성 프로야구 팀이 된 것은 물론 동시대 2명 이상의 여자 선수를 보유한 최초의 팀이 됐다.

단순히 관심을 끌기 위한 쇼가 아니었다. 스톰터스의 단장 테오 파이트마스터는 과의 인터뷰를 통해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다. 여자 선수들에게 팀의 일부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며, 남자 선수들에 맞서 경기할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라며 “이번 영입이 야구계에 리틀야구부터 메이저리그까지 여자 혹은 소녀들을 위한 자리가 있음을 알리는 메시지가 되길 바란다”라고 밝혔다.

외야수 겸 투수인 위트모어는 입단 후 15번째 경기였던 산 라파엘 퍼시픽 전에서 첫 안타를 신고했다. 여자선수가 프로무대에서 때려낸 첫 안타는 아니었지만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진정한 역사는 이로부터 이틀 후에 작성됐다. 피츠버그 다이아몬드 전에서 위트모어는 추가 영입된 포수 안나 킴벌리와 호흡을 맞추면서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의 여성 배터리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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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프로야구 최초의 혼성팀 '소노마 스톰퍼스'의 캘시 위트모어(좌측 2번째)와 스테이시 피아그노(좌측에서 3번째). [사진=캘시 위트모어 트위터]


사실 미국 여자야구 최초의 아이콘은 따로 있다. 앞선 9편에서 다뤘던 요시다 에리의 선배격인 좌완 일라 보더스다. 보더스는 여자 선수 중 최초로 대학 경기서 마운드에 올랐다. 왜소한 체격(178cm 68kg)에도 불구하고 완투승을 거두는 등 투수로서의 재능을 보였던 그는 1997년 세인트 폴 세인츠(St. Paul Saints)에 입단, 프로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보더스에게도, 여자야구계에도 1998년은 역사적인 해가 됐다. 데뷔 첫 해 불펜투수로 한정된 기회를 부여받았던 보더스는 이해 덜루스 슈페리어 듀크스(Duluth-Superior Dukes)로 유니폼을 바꿔 입은 뒤 비로소 꽃을 피웠다. 물론 이적 후에도 보직은 불펜투수였다. 그러던 중 갑작스레 선발 등판 기회가 찾아왔다. 보더스는 1998년 7월 7일 수 폴스 카나리(Sioux Falls Canaries)를 상대로 선발 등판하며 프로 경기에 선발투수로 나선 최초의 여자 선수가 됐다. 이어 7월 24일 같은 팀을 상대로 승리를 따내며 역사적인 여자선수 첫 선발승의 주인공이 됐다.

전성기는 1999년이었다. 시작은 암울했다. 불펜투수로 나서며 평균자책점 30.86으로 극심한 부진에 허덕이던 보더스는 구단에 트레이드를 요청했고, 매디슨 블랙 울프(Madison Black Wolf)에 세 번째 둥지를 틀게 됐다. 역시 불펜보다는 선발 체질이었다. ‘3이닝 선발투수’라는 독특한 역할을 맡으며 15경기에서 32.1이닝을 소화하며 1승 무패 평균자책점 1.67을 기록했다. 2000년 시온 파이오니어즈로 이적한 보더스는 다소 실망스러운 성적(5경기 8이닝 소화 17피안타 2탈삼진 2볼넷 평균자책점 8.31)을 남기고 시즌 5번째 선발 경기 후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리틀야구의 여자선수는 어쩌면 익숙할지도 모르겠다. 야구팬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그 이름, 바로 모네 데이비스가 그 주인공이다. 서울 리틀 리그팀이 2014 리틀야구 월드시리즈에 진출하며 데이비스의 존재도 자연스럽게 한국에 알려졌다. 최고 구속 110km의 시원시원한 볼을 던지던 모네 데이비스는 미국 리틀야구서 여자선수로는 역사상 최초로 월드시리즈 승리 및 완봉승을 기록했다.

공교롭게도 세 명의 선수들은 현재 모두 야구를 떠났다. 위트모어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에 진학, 칼 스테이트 풀러튼 타이탄 소프트볼 팀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현대 여자야구의 역사나 다름없는 일라 보더스는 소방관으로 인생 2막을 살아가고 있다. 많은 이들의 관심과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모네 데이비스도 마운드가 아닌 농구 코트를 누비고 있다. 한국과 일본보다 저변이 넓은 미국임에도 불구하고 여자선수들이 설 자리는 여전히 좁은 듯싶다.

*정아름 기자는 눈으로 보고, 글로만 쓰던 야구를 좀 더 심도 깊게 알고 싶어 여자야구단을 물색했다. 지난 5월부터 서울 W다이노스 여자야구단의 팀원으로 활동 중이다. 조금 큰 키를 제외하고 내세울 것이 없는 몸으로 직접 부딪히며 야구와 친해지려고 고군분투 중이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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