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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타타라타] 승마 마장마술에 대한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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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셰퍼의 전설적인 희곡 '에쿠우스' 단행본 표지.


# ‘브로드웨이의 플리머드 극장에서 <에쿠우스>의 역사적인 공연이 열렸다. 눈이 멀어버린 말들의 고통스런 신음소리에 이어 타가닥타가닥 하는 말발굽 소리가 사라지자마자 무대를 응시하고 있던 관객들은 자리에서 일제히 일어나 무려 5분 동안이나 박수와 환호를 아낌없이 보냈다. 1949년에 상연되었던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 이후 실로 25년만의 자발적인 시위의 열광이었으며 충격적인 감동이었다.’ 1974년 10월 <타임>지가 연극 <에쿠우스>의 초연을 보도한 기사의 일부다. 영국 극작가 피터 셰퍼가 쓴 <에쿠우스>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다(셰퍼는 지난 6월 타계했다). 한국에서도 초연 때의 강태기를 비롯해 송승환, 최재성, 최민식, 조재현 등 <에쿠우스> 주연은 스타로 발돋움하는 등 에쿠우스 신드롬을 낳았다.

# 승마(horse riding)는 올림픽 종목 중 유일하게 동물과 함께 참여하는 스포츠다. 역사도 오래됐다. 승마를 시작한 것은 그리스인이며, B.C. 680년 제25회 고대올림픽에 등장한 4두 마차경주가 스포츠 승마의 최초라고 한다. 승마는 지금도 그렇지만 시작부터 귀족스포츠였다. 말[馬]이라는 것이 개[犬]와는 달리 누구나 소유할 수 없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폭군으로 악명이 높은 네로 황제의 황당한 올림픽 출전도 이와 관련이 있다. 네로는 기원후 67년 열린 고대올림픽의 2륜마차 경기에 출전했다. 네로는 경기 도중 낙마해 꼴찌를 들어왔지만 심판을 매수해 우승자가 됐다. 네로가 죽은 후 이 대회는 아예 무효가 됐다. 1200년 동안 293회가 열린 고대 올림픽 중 유일한 일이다. 확실한 것은 승마는 예나 지금이나 ‘가진 사람들’의 스포츠라는 점이다.

# 마술(馬術)이라고 불리는 스포츠 승마는 크게 (1)장애물비월, (2)마장마술, (3)종합마술 등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1)은 객관적이다. 시간을 측정하고, 떨어진 장애물의 숫자를 정확히 파악하기 때문이다. (2)는 가장 말[言]이 많은 종목이다. 말을 얼마나 잘 다루느냐를 평가하는데 심판의 주관적 평가가 강하게 작용한다. (3)은 (1)과 (2)를 섞은 것이라고 보면 된다. 당연히 승마에서 ‘귀족성’이 가장 강하게 작용하는 것은 마장마술이다. 사람의 말[言]을 잘 듣는 비싼 말[馬]을 쓰고, 비싼 코치를 써 말의 능력치를 높인다. 여차하면 실제로 뛰지 않고도 성적을 낼 수 있는 단체전의 리저브 멤버가 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네로 황제처럼 심판을 매수하면 입상은 식은 죽 먹기다. 비인기종목인 까닭에 언론이 크게 다루지도 않아 조용히 해먹기가 아주 쉽다. 그래 승마는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재벌 2, 3세나 공주·왕자들이 많이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 요즘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는 정유라 씨는 2014 아시안게임 승마, ‘마장마술’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땄다. 중학교 3학년까지 성악을 하다가 갑자기 승마로 바꿔 체육특기자로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이어 국가대표 발탁 및 명문대학 진학 등 그 놀라운 스포츠재능의 비결이 바로 마장마술이라는 종목의 ‘귀족성’에 기인한다. 최근 명실상부 삼성그룹의 지배자가 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서울대를 다니면서 아시아선수권 승마대회에 국가대표로 나가 2위를 한 것, 정몽준 현대중공업 최대주주가 역시 서울대 시절 전국체전에 나가 은메달을 딴 것 모두 ‘마장마술’의 비밀에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조카가 100kg이 훌쩍 넘었는데 승마특기자로 넘는 고려대에 입학한 것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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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승마 마장마술 단체전의 시상식 모습. 붉은 색 원이 정유라다. [사진=대한승마협회]


# 외국처럼 돈많은 사람들이 뽐내기에 딱 좋은 스포츠가 승마라고 하는 것까지는 ‘그래 너희 돈 많다’라고 받아들여주겠다. 문제는 이런 승마가 편법대학입학의 그늘진 통로로 이용된다는 것이다. 체육특기자 전형은 그렇지 않아도 ‘무혈입성’이 많다. 경쟁률이 1:1 이하가 67.5%로 사실상 내정된 경우들이다. 이는 2012~14년 62개 대학의 입학 결과를 분석해 한선교(새누리당) 의원이 2014년 국감에서 밝힌 것이다. 전체 체육특기자 전형이 이러니 승마는 정말 쉽다. 워낙에 많은 돈이 들어가는 까닭에 아무나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말 돈 많고, 권력이 있는 사람들이 한다. 정유라는 그 중에서도 ‘돈도 실력’이라고 큰소리를 쳤다고 하니 ‘갑(甲) 중에 갑’이다.

# 한 20년 전 취재의 경험이다. 한 스포츠일간지의 막내기자였는데, 데스크(부장)이 경기도 어느 승마장으로 가 여고생승마선수를 취재해서 기사로 잘 쓰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때는 정확히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아마도 대학진학에 필요해서 돈많은 승마선수 부모가 신문사에 이 따위 민원을 넣었던 것 같다. 승마선수의 어머니와 얘기를 하는 도중, 황당한 질문을 받고 싸울 번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런 거(필자가 근무하던 스포츠신문사를 뜻함) 인수하려면 얼마나 들어요?”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몰랐고, 이해한 다음에는 그 불쾌함과 모욕감에 서둘러 인터뷰를 마쳤다. 싸웠다가는 회사로 돌아가 윗사람들과 마찰을 빚을 것이 귀찮아 소극적인 저항에 그치고 말았다. 나이가 들고, 스포츠기자를 20년 정도 하면서 승마라는 종목을 이해하니, 그들은 원래 그런 사람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여고생도 마장마술이 주종목이었다.

# 고급자동차 브랜드로도 유명한 에쿠우스(Equus)는 라틴어로 말(馬)이라는 뜻이다. 모두에 언급한 연극 <에쿠우스>도 자신이 사랑하던 ‘말’들의 눈을 찌르고 법정에 선 17세 소년 알런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괴기적인 사건을 소재로 하는 이 작품의 주제는 많은 평론이 다뤘듯이 ‘정상과 비정상의 모호한 그 경계’라고 한다. 정말이지 요즘은 정치도, 스포츠도 정상과 비정상이 한데 섞여서 그 비릿하고 역겨운 냄세를 세상천지에 내뿜고 있다. 권력자들은 바꾸면 된다. 하지만 승마 마장마술이 지금처럼 계속되면서, 돈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로 국내에 대회 입상을 뽐내고, 심지어 부정하게 명문대에 진학하는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도 막아햐 한다. 승마 마장마술은 주요 종합대회 종목에서 제외해야 한다. 외국이 안 된다면 한국에서라도 그렇게 하자. 그까짓 금메달 몇 개 없어도 우리네가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다. 그게 힘들다면 최소한 체육특기자에서는 승마 마장마술은 빼자. 명문대 정원이 이런 식으로 채워지는 것은 정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순실의 시대’ 사건도 이화여대의 시위가 기폭제가 되지 않았는가?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유병철 기자]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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