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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상록의 월드 베스트 코스 기행 1] 올드헤드에서 바람은 즐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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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헤드는 섬으로 삐죽 튀어나온 반도에 만든 코스다.


전 세계 수많은 베스트 코스를 라운드 한 깊은 경험담을 구력 26년의 핸디캡 6인 골퍼 김상록 씨가 연재한다. 영국과 싱가포르를 번갈아 거주하는 김 씨는 쿠알라룸푸르 트로피카나 회원이다. 첫 번째는 아일랜드 남서쪽 해안에 위치한 올드헤드링크스(Old Head Golf Links)다. [편집자]


프랑스 소설가 알랭 드 보통의 글 가운데 내 심정을 묘사한 글귀가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인간의 삶도 똑같이 압도적일 수 있다. 그러나 가장 훌륭한 태도로, 가장 예의를 갖추어 우리를 넘어서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은 아마 자연의 광대한 공간일 것이다. 그런 공간에서 시간을 보낸다면, 우리 삶을 힘겹게 만드는 사건, 필연적으로 우리를 먼지로 돌려보낼 그 크고 헤아릴 수 없는 사건을 좀 더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새벽의 아이리시식 조식. 조금은 탄 느낌이 들 정도로 잘 구운 소시지 2개, 계란 후라이 2개, 노릇노릇 갓 구운 베이컨 2장, 한국의 순대와 비슷한 검은 푸딩과 옅은 브라운색 푸딩, 검은 자국이 묻어 긁어내지 않으면 먹기 힘들 것 같은 그을린 토스트, 그리고 주스와 커피 한 잔. 이 정도면 베스트 스코어를 기대해도 좋을 진수성찬 아닐까. 일행이 머문 비엔비(Bed & Breakfast : 숙박과 아침을 주는 아일랜드식 여관)의 여주인 앤이 아침에 반갑게 맞으며 준비한 아이리시 조식은 든든하다 못해 거북할 정도로 풍성하다.

킨세일의 좁은 도로를 빠져 나와 바다를 가르는 2차선 다리를 넘어 올드헤드 반도의 끝자락으로 15분 가량 차를 몰고 가면 우리는 태고적 대서양의 풍파 속에 깎여 나간 올드헤드와 마주한다. 과연 어느 골프장이 이런 장엄함과 엄숙함을 한 몸에 지녔으랴? 200m 높이의 깎아지른 절벽 위에 가지런하게 정리된 페어웨이 사이로 흔들리는 노란색 깃발을 보면서 나는 올드헤드의 품으로 들어서는 감격을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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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으로는 바다 절벽을 마주하는 4번 홀.


6개월만 여는 바다 절벽 코스
처음 방문했을 때 ‘아…’ 하는 탄성과 함께 등대를 바라보던 그 설렘이 다시 새롭다. 200m 절벽 위에 우뚝 솟은 등대는 밤마다 불빛을 비춰 올드헤드반도 앞을 지나가는 배의 길잡이가 된다. 그 당시 설레는 마음으로 펼쳤던 방명록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을 발견했다. 어느 미국인은 ‘페블비치는 항상 내 마음에 있었으나 올드헤드로 인해 더 이상 아니다’라고 적었다. 그 짧은 문장이 올드헤드의 전부가 아닐까!

나는 이 코스에서 한국인으로는 최초 멤버가 되었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낀다. 올드헤드는 여느 프라이비트 클럽과는 다르다. 세계 어느 누구에게나 문이 열려 있다. 회원이 통상 세컨드 멤버십으로 즐기는 코스다. 대부분의 회원은 홈 코스를 가지고 있고 5월부터 10월 말까지 6개월 사이에 별장처럼 와서 즐긴다.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는 강한 바람과 추위로 인해 문을 닫고 코스만 관리한다. 회원이 되기 위해서는 신청서를 받아 제출하는데 기존 회원 두 사람의 추천이 필요하다. 회원이 되면 회원 전용 티타임에 부킹 가능하며 라운드 횟수에 관계없이 그린피는 면제이고 동반자는 그린피가 할인된다.

나는 2004년 처음 올드헤드에서 라운드를 했다. 너무 강한 바람이 불어 숨쉬기조차 힘든 속에 라운드를 마쳤지만 아름다운 경치에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을 받았다. 라운드 후에도 감동으로 인해 와인 잔을 비우며 코스 이야기로 밤이 깊은 것도 잊었다. 처음에는 입회비가 다소 높아 회원 가입에 엄두를 낼 수 없었다. 더구나 세컨드 코스에 거금을 투자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2010년 아일랜드 경제의 버블이 꺼지면서 골프장 경영의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다소 낮은 입회비에 한시적으로 회원을 모집했다. 그것도 내가 회원이 되면 가족은 당연히 회원이 되는 조건이었다. 아울러 전 세계 350여 명의 회원과 유대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점이 내겐 더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전 세계 유명 코스의 회원으로부터 초청을 받아 비지터(Visitor)가 아닌 게스트(Guest)로 가면 그린피가 아주 저렴하다. 전 세계 100대 코스 모두를 탐방하는 목표를 가진 내겐 더 없는 좋은 인적 네트워킹의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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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을 가리키는 필자.


하늘과 바다와 자연과 골퍼
올드헤드 클럽하우스는 한국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화강암과 비슷한 느낌이 드는 검은 돌로 만든 소박하면서도 우아한 건물이다. 남자 라커룸으로 들어서다 마주하는 등대 사진은 마치 신이 인간에게 올드헤드라는 선물을 준 것을 후회나 하듯 등대를 집어삼킬 것 같이 넘쳐 오르는 파도가 인상적인 것을 넘어 충격적이다. 자연이 사람보다 위대하다는 가르침을 주는 사진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1번 홀 티잉 그라운드에 오른다. 마치 제주의 돌하르방과 같은 느낌이 드는 올드헤드의 상징석이 우리를 맞는다. 가운데 원이 뚫려있는 검은색 비석이 이채롭다. 화강암과 비슷한 돌 가운데 구멍 사이로 아침 햇살이 낮게 통과하고 있는 모습은 마치 영화관의 필름이 돌아가며 어두움을 뚫고 화면으로 직사되는 광경과도 같다. ‘그 구멍을 통해 악수를 하면 서로 화해와 우정이 넘친다’는 얘기를 진행요원이 귀띔한다.

올드헤드의 진가는 2번 홀에서부터 시작된다. 경탄과 함께 이어지는 스펙터클한 광경은 어느 코스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장대함이다. 가슴을 열어젖히고 크게 숨을 쉬면 그 자연과 나는 하나가 되는 느낌을 받는다. 아침의 맑은 공기에 200m 높이의 깎아지른 절벽 위에서 바라보는 더 넓은 대서양의 푸른 바다는 이곳이 골프장이 아니라 세상 최고 높은 곳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가슴 뻥 뚫리는 전경이 아닐 수 없다.

3번(파3) 홀에 이르면 ‘오 신이시여, 이런 축복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탄성이 나온다. 그 탄성은 4번 홀에 이르러 ‘아멘…. 내 볼이 절벽 밑으로 굴러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지켜주소서’ 하는 애절한 기도로 바뀐다. 따라서 샷은 자연스레 절벽을 피해 오른쪽으로 흐르는데 그런 비겁한 골퍼를 응징하기 위함인지 그곳엔 넓은 러프가 자리하고 그린 오른쪽 성곽으로 오르는 길은 볼을 찾을 수 없을 만큼 깊은 러프가 자리한다.

7번(파3) 홀은 블루 티에서 179야드다. 동쪽 바람이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세차게 불어온다. 캐디는 ‘바다를 보고 샷을 하라’지만 누가 감히 그 절벽으로 샷을 할 수 있을까. 오른쪽에서 세차게 불어오는 맞바람에 서 있기조차 힘들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바다를 향해 샷을 날릴 용기를 주소서.’

올드헤드의 묘미는 바람이다. 세찬 바람이 부담스럽지만 그 바람과 싸우며 때로는 바람을 이용해 샷을 날리는 순간 우리는 하나의 자연이 되고 만다. 모든 홀에서 눈부신 햇살, 그 햇살을 하늘로 다시 돌려보내려는 출렁이는 바다가 어우러지면서 눈을 뜨기 어려울 정도다. 홀마다 바다가 보이며 코스는 대서양의 정기를 받아서인지 웅장함을 더 한다. 그 절정은 좌측으로 흐르듯 누워 있는 도그레그 12번 홀(파5, 564야드)에서 꽃핀다. 어딜 봐도 페어웨이는 없다. 다만 멀리 좌측 절벽 위에 펄럭이는 깃발만이 홀을 짐작케 한다. 좌측 절벽 밑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현기증이 난다. 티에서 언덕으로 날리는 샷은 방향성을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한 발만 뛰면 갈매기와 함께 날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17번 홀(파5, 623야드)은 오른쪽 대서양을 끼고 등대를 향해 뻗어 있어 바람이라도 불면 서 있기조차 힘들지만 그 어려움을 뚫고 샷을 한다. 버디는 생각할 수도 없다. 그린은 자세를 낮추고 낮추어야 받아들일만큼 작다. 마지막 홀은 등대까지 등산을 하다시피 올라가야 티 박스가 나온다. 오른쪽 성벽은 18번 홀과 5번 홀을 나누고서 등대로 향하는 도로다. 오른쪽 성벽 밖은 OB, 좌측은 깊은 러프와 벙커가 자리한 왼쪽으로 흐르는 도그레그 홀이다. 좌측 벙커와 러프는 순리를 무시하고 빨리만 가려는 우리를 질타하는 듯 입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다. 거리를 줄이겠다고 좌측을 공략한 골퍼는 여지없이 두세 타를 더 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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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하우스에서 툭 트인 바다와 기네스 한 잔이면 천국이 따로 없다.


바람마저도 즐겨야 할 요소
아멘과 탄성을 지르며 지나온 18개 홀이 모두 머리에 남는다. 수많은 바람과 절벽의 위용 그리고 파도소리에 압도되어 홀이 기억나지 않을 것만 같은데, 마치고나면 18홀이 또렷하게 머리에 남는다. 마치 지난 밤 꿈을 꾸고 선명하게 머리에 각인되어 있는 듯하다.

전 세계에는 많은 골프장이 있지만 나는 그 중에 최고라고 꼽는다. ‘어제 나는 여기에 있었고, 오늘 나는 여기에 있고 내일 나는 다시 여기에 있고 싶다’라고 방명록에 썼다. 무엇인가 남기지 않으면 내가 올드헤드를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질까 두려웠다.

바람이 없는 날 올드헤드면 좋은 스코어를 얻을 수 있지만 세찬 바람이 부는 날은 스코어 관리가 무척 어렵다. 심지어 서 있기조차 어려운 강풍이 분다. 그러나 그 강풍마저도 골퍼가 즐겨야 할 하나의 자연이다. 좋은 골프장의 조건은 스코어에 관계없이 즐거움을 주고 18홀이 끝나는 순간 아쉬움이 남는 그런 코스일 것이다. 굳이 말이 더 필요 없다.

라운드를 마치고 나면 한 잔의 화이트 와인과 그곳 최고의 명품이라 자랑하는 오이스터 헤븐에서 생산되는 자연산 생굴이 기다라고 있다. 저녁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위치 : 아일랜드, 콕, 킨세일 카운티, 콕국제공항에서 약 37km, 자동차로 40분
문의 : +353-(0)-21-477-8444
코스 : 18홀(파72, 7200야드). 1997년 개장
설계 : 조 커, 패디 마리간, 론 커비, 에디 하켓, 리암 히긴스 훌리 오세라.
특이 사항 : 5~10월까지 6개월만 개장, 골프텔 18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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